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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56과)5.

Joyfule 2010. 11. 29. 00:41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56과)5.

스가랴(3):  전쟁과 평화의 왕 (9-11장)

 

3. 선한 목자(11장)


3-1. 그 땅에 임한 심판(1-3)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1). 너 잣나무여 곡할찌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가 훼멸되었도다. 바산의 상수리나무여 곡할찌어다. 무성한 삼림이 엎드러졌도다(2). 목자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 영화로운 것이 훼멸되었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황무하였음이로다(3)."

 

  스가랴 11장의 예언은 스룹바벨의 성전이 완성된 지 오랜 후에 선포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언급된 사건들은 먼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다. 11장은 이스라엘의 역사 중에 가장 어두운 시대를 묘사하고 있다. 11:1-3에 기록된 황무함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제시되어 왔다. 첫째 견해는 이 구절이 주전 586년에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사건을 의미한다는 견해이다. 이 견해가 맞다면 본문은 미래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이미 지난 과거의 일을 언급하고 있는 셈이 된다. 둘째 견해는 이 구절이 스가랴 4장에 기록된 예언, 즉 장래에 다른 민족들에 의해 이루어질 팔레스타인의 침략을 의미한다는 견해이다. 셋째 견해는 여기에 언급된 침략이 메시아를 거부한 이스라엘이 70년에 로마에 의해 멸망할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이 중에서 어떤 의견이 옳은가? 먼저  문맥을 보면 이 구절은 이미 과거의 일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 구절은 장차 일어날 여러 민족들의 예루살렘에 대해 보편적인 음모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70년에 일어날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 사건을 가리킬 수도 있다. 실제로 슥 14장은 70년에 일어날 멸망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을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 멸망으로 보는 경우에도,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상징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 구절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본분에 언급된 레바논이 성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레바논의 백향목들이 성전을 짓는 목재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고대 랍비들의 주장이다.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백향목, 잣나무, 상수리 나무들이 힘과 위엄을 상징하거나, 중요한 사람들이나 이스라엘을 괴롭힌 교만한 민족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이 구절은 70년에 일어날 하나님의 심판, 즉 북방부터 남방까지 모든 나라들에 임했던 하나님의 심판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1장 서두에 나오는 명령은 앞으로 선포될 일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때에 레바논 숲은 하나님의 숲에 의해 타버리게 될 것이다. 장차 레바논에서 일어날 일은 다른 지역에서도 일어나게 될 것이다.

스가랴의 환상에서 언급된 레바논, 바산, 요단은 온 땅을 포함하고 있다. 가장 높은 것이 용서 받지 못한다면, 자연히 낮은 것도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에 이 심판으로 인해 여러 곳에서 통곡하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에 목장이 파괴되고 양떼들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양을 치던 목자들도 통곡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 어린 사자가 부르짖는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는 요단의 자랑, 즉 사자들의 잠자리인 요단강 둑에 있는 수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 이러한 심판이 임한 것은 바로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않은 그들의 죄때문이었다. 이 세상에서 인간에게 가장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게 만드는 것은 역시 죄이다.
 

3-2. 잡힐 양떼(4-6)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는 잡힐 양떼를 먹이라(4). 산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케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5).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거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찌라도 내가 그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6)..."

  히브리 문체의 표현 방법은 결과가 먼저 제시된 후에 원인이 제시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도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거절했다는 심판의 원인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하신 명령이 먼저 등장하고 있다. 그는 장차 메시아께서 하실 일을 상징적으로 대신 수행하고 있다. 이것은 성부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주신 사명이었다. 메시아는 양떼를 먹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 분은 장차 잡힐 운명에 처한 양떼들의 목자 역할을 담당해야 했다.

 이 양떼는 자기 죄로 인해 로마에 잡혀 먹힐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약 150만명의 유대인이 로마와의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이 민족은 아주 비참한 상태에 있었으나, 그들의 운명은 더욱 더 비참해지게 되어 있었다. 그들은 시장에서 아무 감정이 없이 사고 팔리는 양과 같았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이 이방의 지배, 특히 로마의 지배하에서 겪은 모든 압제 수단들을 언급하고 있다. 이방의 억압자들은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일에 대해서 조그만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그들은 이러한 일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계속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양떼를 혹사함으로 얻을 이익을 생각하고 거짓으로 신을 믿는 척 했다.

 

  이러한 일만으로도 그들의 죄는 명백했다. 그러나 그들의 억압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방종한 지도자와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을 아끼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의 억울함을 신원해 주거나 슬픈 처지를 해결해 줄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더욱 더 슬픈 일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데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이 전쟁과 내란에 휩싸여 고생하도록 내버려 두실 것이다. 메시아께서 지상에서 활동하셨을 때에 이스라엘에는 수많은 파당들이 존재해 있었다. 그들은 장차 한 임금의 손에 붙여지게 될 것이다.

 여기에 언급된 임금은 그들 스스로 왕으로 삼은 로마 황제를 의미한다. 그때에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던 민족이 이스라엘을 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서 이스라엘을 억압할 것이며,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복종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죄를 섬겼기 때문에, 장차 가혹한 왕을 섬기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사로잡힐 양떼"라고 부르신 것은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3-3. 목자의 사역(7-9)

  "내가 이 잡힐 양떼를 먹이리니 참으로 가련한 양이라. 내가 이에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락이라 하고 양떼를 먹일쌔(7),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끊었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8). 내가 가로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고 죽는 자는 죽는대로, 망할 자는 망할대로, 그 나머지는 피차 살을 먹는대로 두리라 하고(9)..."

 

  메시아는 이스라엘을 위해 자신이 한 사역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메시아는 그들의 목자로서의 사역을 맡으셨다. 11:7에는 그 분이 양을 먹인다는 표현이 두 번이나 나타난다. 스가랴는 장차 메시아께서 오셔서 하실 일을 상징적으로 대행하고 있었다. 그 분은 장차 오셔서 가련하고 비참한 양떼를 진실하게 먹이실 것이다. 그 분은 그들 중에 있는 남은 자들을 위해서 그 양떼 모두를 먹이셨다.이 구절에서 남은 자들이 다른 많은 백성들과 구별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맹수들과 싸워 양들을 보호하기 위한 지팡이와, 양들을 어렵고 위험한 곳에서 구해내기 위한 지팡이를 가지고 다녔다.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메시야 역시 이러한 지팡이를 소유하실 것이다.

 

 11:7에는 이 지팡이에 붙여진 이름이 소개되고 있다. 이 이름은 메시아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하실 사역의 목적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메이아께서 소유하신 첫 번째 지팡이의 이름은 미덕, 호의, 또는 은총이라고 불렀으며, 두 번째 지팡이는 띠, 유대, 또는 연락 등으로 불리어졌다. 은총의 지팡이는 열방이 이스라엘을 파멸시키기지 못하도록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나타낸다. 그리고 연락의 지팡이는 이스라엘 백성들 간에 있을 형제로서의 유대관계를 나타낸다. 하나님은 메시아를 통해서 열방의 백성들이 자기 백성을 해치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애로우신 돌보심으로 인해 그들의 형제애가 더욱 더 견고하게 될 것이다.

 

  목자의 사역의 결과가 곧 밝혀진다. 비교적 짧은 기간인 한 달 동안에 목자는 그 민족들을 다스리던 세 목자들을 제거해야 될 필요를 느꼈다. 그는 이 세 목자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은 이 목자를 미워하였다. 11:8에 대해서는 약 40여 가지나 되는 해석들이 제시되어 왔다.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 나오는 세 목자를 메시아 밑에 있는 하위 목자들로 보고 있다. 그들은 이 세 목자가 메시아의 생활과 사역을 통해서 백성들을 돕고 감독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해석은 이 세 목자들을 이스라엘의 세 지도자 계급, 즉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으로 보는 것이다. 그들은 메시아를 거부하고 서로 미워했다. 11:9에서 그 분은 마침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민족 지도자들이 메시아를 통해 주어진 모든 은혜의 수단들을 거부하게 되자, 메시아는 그 민족이 죄악된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신다. 이로 인해 양들은 전염병과 기근으로 죽고, 전쟁에 살인에 의해 멸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재난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도 계속해서 서로 싸우게 될 것이다. 그들은 빛을 거부한 결과 어두운 밤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