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관 자료 ━━/인터넷성경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56과)6.

Joyfule 2010. 11. 30. 06:39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56과)6.

스가랴(3):  전쟁과 평화의 왕 (9-11장)

  

3. 선한 목자(11장)

 

3-4. 잘리어진 은총의 막대기(10-11)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잘랐으니 이는 모든 백성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10). 당일에 곧 폐하매 내게 청종하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줄 안지라(11)."

 

  메시아는 어떤 관계를 끊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은총이라고 부르는 지팡이를 잘라버리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백성들과 맺었던 은총의 언약을 파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백성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모든 백성들"이라고 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한 만일 이것이 이스라엘을 의미한다면 이러한 행동은 이스라엘 내부 문제와 관계된 연락의 지팡이를 부러뜨리는 행위와 중복이 되게 된다.

 스가랴는 여기에서 지상의 열방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스가랴의 언급은 매우 중요한 진리를 보여주고 있다.하나님은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과 관계가 있는 지상의 백성들과 언약을 세우셨다. 하나님은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해를 끼치거나 악하게 대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속박하셨다. 이 속박이 없어질 때에 로마가 그드의 성읍과 경제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

 

  알렉산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폼페이 등은 이스라엘 국가의 존립을 해칠 수 있다는 허락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메시아께서 그 지팡이를 부러뜨리게 되자, 티투스와 그의 장군들은 성전을 와전히 파괴하고 말았다. 스가랴는 예언의 성취를 예상하면서 그 지팡이가 당일에 부러졌다고 말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메시지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가련한 양, 즉 그 백성들 중에 있는 경건한 사람들이었다. 과거나 지금이나 오직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이 자기 종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가 있다.
 

3-5. 은 30(12-14)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13), 내가 또 연락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잘랐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14)."

 

  백성들의 영적인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메시아의 사역과 봉사에 대한 그들의 감사를 시험하기 위해서 메시아는 자신이 그들 중에서 일한 대가로 임금을 달라고 민족들에게 요구한다. 그가기대한 대가는 당연히 하나님과 그 목자들에 대한 사랑, 순종, 그리고 헌신이었다. 그러나 메시아는 그들에게 이러한 것을 강요하지는 않으셨다. 만일 그들이 이러한 일을 꺼린다면 그들은 메시아의 사역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꺼이 메시아와 그 사역을 평가하여 은 30을 메시아께 주었다. 출 21:33을 보면 이것은 돌에 받힌 한 사람의 값이었다. 자유인 한 사람의 값은 이것의 두 배였다. 이것은 얼마나 모욕적인 일인가? 그들은 메시아를 하잘 것 없는 종의 수준으로 평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찌 이처럼 천하고 배은망덕한 대접을 받으시겠는가? 스가랴는 그것을 하나님의 전에 있는 토기장이에게 던져 버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민족의 지도자들이 메시아, 즉 하나님의 아들을 평가한 데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었다.

  

이 일은 하나님의 전에서 행해짐으로써 더욱 엄숙하고 공개적인 일이 되었다. 메시아에게 매겨진 가격은 적고 모욕적인 것이었으며, 결국 이 돈은 토기장이에게 던져지고 말았다. 토기장이에게 물건을 던지는 것은 쓸데 없는 것을 버리는 것에 대한 격언적인 표현으로 보인다. 스가랴는 비꼬는 투로 이 값을 "준가"라고 불렀으며,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 값을 던져버렸다. (마 27:7-10)에서 복음서 기자는 가룟 유다가 그리스도를 배반한 일과, 그 결과를 인용하면서 이 구절을 인용했다. 그러나 마태복음 기자는 이 구절을 스가랴가 아닌 예레미야의 예언이라고 기록했다.

 이러한 마태복음 기자의 기록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이 제시되어 왔다. 어떤 사람은 이 구절이 원래 스가랴에 기록된 것이 아니었다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받아들일 수 없다. 마태복음 기자가 살던 당시에 이 구절이 스가랴서에 포함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헬라어 구약 성경은 신약 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것인데, 이 성경에서도 이 예언이 스가랴서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마태복음의 기자가 (막 1:2)처럼 (말라기와 이사야처럼) 유명한 선지자의 이름을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가복음의 경우는 마태복음과 유사한 경우로 볼 수는 없다. 아마도 이 문제의 해결점은 예레미야의 이름이 선지자 집단의 첫 머리에 놓인 것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예언서는 예언서 중에서 첫 번째로 놓였으며, 이러한 주장을 증거해주는 유대교의 문서들도 발견할 수 있다. 11:4에서 스가랴는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최종적으로 끊으려는 목자의 이야기를 실제로 연출하고 있다.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가 단절된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연락이라는 지팡이를 잘라버렸다. 슬프게도 이것은 로마의 장군 티투스가 이끈 로마인들이 예루살렘을 침략했을 때에 성취되었다. 그때에 유대 백성의 사회 조직은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이때에 내란과 내부적 갈등이 빈번이 일어났으며, 이러한 일은 결국 유대의 멸망을 초래하고 말았다.
 

3-6. 미련한 목자(15-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또 우매한 목자의 기구들을 취할찌니라(15).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찐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16). 화 있을찐저 양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 팔에, 우편 눈에 임하리니 그 팔이 아주 마르고 그 우편 눈이 아주 어두우리라(17)."

 

  메시아를 거부하는 슬픈 사건은 성취되었다. 그러면 앞으로의 전망은 어떠한가? 하나님은 그 당시 자기 백성을 온 세계로 흩으셨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다시 교제하시는 것은 11:5-17에 언급된 일들이 일어난 후일 것이다. 그들에게 선한 목자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미련한 목자를 세우게 될 것이다. 미련한 목자는 스가랴의 시대로부터 유대 민족 멸망의 시기에 등장하는 모든 사악한 통치자들을 마타낸다. 예를 들면 헤롯, 또는 프톨레미 4세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이는 (단 11:36-39, 요 5:43, 살후 2:1-12, 계 13:11-18)에 등장하는 적그리스도들을 의미한다.

 

  스가랴는 11:7의 지팡이와 관련하여 미련한 목자의 기구들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는다.그것들은 참 목자의 지팡이와 같지만, 사용자의 마음가짐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선한 목자는 이것을 선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지만, 악한 목자는 이것을 악한 일을 위해 사용했다. 성경에서 미련한 모습은 사악함을 상징한다. 구약 성경에서는 미련함이 도덕의 결핍과, 타락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하나님은 미련한 목자가 마음대로 행하도록 내버려 두셨다.

그는 양들을 소홀하게 취급하고 그들을 잔인하게 학대했다. 그는 양을 위하는 마음이 없었으며, 그 마음에는

탐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심판에 그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양을 돌보지 않은 그의 팔(힘의 기구)은 마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양들을 보살피지 않았던 그의 눈(지성의 기구)은 어둡게 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분명히, 그리고 신속하게 그에게 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