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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메이컴의 수수께끼 3.

Joyfule 2008. 11. 20. 01:03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메이컴의 수수께끼 3.  
    우리도 그 아이가 먼저 말을 걸어올 때까지 그저 마주보고만 있었다.
      " 안녕? "
      " 그래 안녕? "
       오빠가 쾌활하게 인사를 받았다.
       "난 찰스 베이커 해리스야. 난 글을 읽을 줄도 알아.
       그래서 어쨌다는 거니?" 
      내가 물었다.
     " 응, 그냥 ,,, 읽을 수 있는지 너희들이 궁금해 할 것 같아서. 
      뭐든지 읽을 게 있는데 못 읽는다면 내가 대신 읽어줄게 ,,, . "
       "너 몇 살이니? 네 살, 다섯 살?'
      오빠가 물었다.
      " 여덟 살이야."
      " 어휴, 정말? 그래 보이진 않는데."
      오빠는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흔들어보이며 말했다.
       "여기 있는 스카웃은 태어나면서부터 읽었는걸. 
      학교 입학도 아직 안했는데 말이야. 넌 여덟 살 치곤 좀 작다, 안 그래? "
       "작아도 할 건 다 할 수 있어. "
      오빠는 앞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훨씬 잘생겨보였다.
       "이쪽으로 넘어오는 게 어때? 찰스 베이커 해리스야. 맙소사, 이름도 기네."
       "그래도 형 이름보다는 짧은 걸 뭐.
      라이첼 이모가 형 이름은 제레미 애티커스 핀치라고 하시던데." 
      오빠는 콧등을 찡그리며 맞장구쳤다.
      "그래도 난 이름에 걸맞게 키가 크잖아. 
      네 이름은 키에 비해 너무 길어. 일 피트는 더 길 거다." 
      " 그냥 딜이라 불러. "
      딜이 철책 아래서 안간힘을 썼다.
      " 위쪽으로 넘어오는 게 쉬울 거야. 너 어디에서 왔니?"   내가 물었다.
    딜은 이모인 라이첼 아줌마 집에서 여름을 보내러 미시시피 주 메리디안에서 왔다고 했다. 
    원래 딜의 가족은 메이컴 출신으로 엄마는 메리디안에서 사진사로 일했는데 
    예쁜 아기 컨테스트에 딜의 사진을 출품하여 상금 오 달러를 받았다고 했다. 
    딜의 엄마는 상금을 딜에게 주었고, 그는 그것으로 영화를 오십 편도 넘게 보았다고 했다.
    "군청에서 가끔 예수님에 관한 영화를 상영하는 것 말고는 
      여기선 영화상영을 거의 안 해."   오빠가 말했다. 
     "네가 본 것 중에 재미있던 게 뭐니? "
    딜은  드라큘라 를 보았다고 했다. 
    뜻밖의 영화이야기로 오빠는 딜에게 강한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다.
      "얘기해봐. "
    딜은 남다른 아이였다. 
    리넨으로 된 파란색 바지와 셔츠는 단추가 있는 곳은 모두 채워져 있었다. 
    그애는 나보다 한 살 위였지만, 난 그 아이의 머리 위로 탑처럼 솟아 있었다. 
    머리칼은 눈같이 희어 마치 오리털을 머리에 얹어놓은 듯했다. 
    이야기를 할 땐 푸른 눈이 흐려졌다 짙어졌다 했고, 갑자기 폭발적으로 웃곤 했다. 
    그밖에도 이마 한가운데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자주 잡아당기는 습관이 있었다.
    오빠는 딜의 얘기가 드라큘라가 재로 변하는 장면에 이르자 
    영화가 책보다 재미있겠다면서 군침을 삼켰다. 
    나는 딜에게 아버지는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  넌 아버지 얘긴 하나도 안 했어. "
     " 난 아빠가 없어. "
     "  돌아가셨니? "
     "  아니 ,,, . "
     " 돌아가신 게 아니라면 아버지가 있는 거잖아, 그렇지?"
      딜은 그 순간 얼굴을 붉혔다. 
    젬 오빠는 나에게 조용히 하라고 다그쳤다. 
    오빠의 그러한 태도는 딜을 살펴본 결과 마음에 들었다는 확실한 신호였다.
    그날 이후 우리들의 여름은 매일매일 만족스럽게 흘러갔다. 
    뒷마당의 우람한 쌍둥이 멀구슬나무 사이에 있는 나무집을 고쳤던 일, 
    괜히 법석을 떨며 돌아다니던 일, 
    올리버 옵틱, 빅터 애플톤과 에드가의 작품으로 꾸민 연극놀이에 열중했던 일들이었다.
    이 연극놀이에 관한 한 딜이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전엔 나에게 떠맡겨진 (타잔)의 원숭이 역이나 (해적선)의 
    크랩트리 역, (톰 스위프트)의 악당 역을 딜이 맡았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딜에 대해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게 되었다. 
    그의 머릿속은 괴벽스런 계획과 이상한 열망, 별스런 공상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여름의 막바지인 팔월 말쯤 되자 
    레퍼토리는 셀 수 없는 반복으로 김빠진 듯 지루해져 있었다. 
    그때 딜은 부 래들리를 집 밖으로 나오게 하자는 제안을 했다.
    래들리 집은 딜의 충분한 관심거리가 되었다. 
    우리의 경고와 소문에 대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마치 달이 물을 끌어당기듯 그 집은 딜을 끌어당겼다. 
    하지만 딜 역시 래들리 집으로부터의 안전거리인 전신주에서 더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그저 전신주에 팔을 두른 채 래들리 집을 바라보며 호기심만을 키워나갔다.
    래들리 집은 우리집에서 조금 떨어진 제법 정리된 커브길 가운데쯤 자리잡고 있었다. 
    남쪽으로 걷다보면 그집 현관이 나오고 보도를 돌아가면 마당이 나왔다. 
    래들리 집은 으스스했다.
    나지막한 지붕, 과연 하얀색이긴 하얀색이었을까 의심가는 현관, 
    이미 오래 전에 거뭇하게 변해버려 우울하게 가라앉은 녹색 덧문, 
    비에 썩어 베란다 처마 위까지 늘어져 있는 지붕 위의 판자, 
    그나마 새어드는 빛을 차단하고 있는 떡갈나무, 
    술취한 듯 후줄근하게 서서 앞마당을 지키고 있는 말뚝, 
    엉겅퀴와 존슨풀이 우성해서 결코 한 번도 쓸어본 적이 없는 듯한 마당 ,,, 
    집 안에는 무시무시한 악령이 도사리고 있는 듯했다.
    마을사람들은 래들리가 살아 있다고들 했지만 오빠와 나는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달이 높다랗게 뜨는 밤이면 이집 저집 창문을 몰래 훔쳐본다고도 했고,
     갑작스런 강추위로 철쭉이 얼어버리는 이유는 그가 입김을 불어넣은 탓이라고 했다. 
    그래서 메이컴에서 벌어지는 소소하고 은밀한 범죄는 모두 그가 저지른 일로 간주되었다.
    언젠가 한 번은 계속되는 이상한 사건들로 마을이 온통 공포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마을사람들의 애완동물이 여기저기 잘린 채 발견되었던 것이다. 
    결국 그 범인은 베이커스에디 강에서 자살한 미친 애디 짓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처음의 혐의를 털어버리지 못한 채 래들리 집을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밤에는 흑인들도 래들리 집 앞 보도를 피해 반대편 보도로 휘파람이라도 부르며 지나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