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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메이컴의 수수께끼 5.

Joyfule 2008. 11. 22. 01:39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메이컴의 수수께끼 5.  
    또한 래들리 씨는 그의 아들 부를 수용소에는 보내지 않겠다고 했으며, 
    이웃들이 투스카루사 요양소의 기후가 부에게 많은 도움을 줄 거라고 권유했지만 
    부는 미치광이가 절대 아니며 다만 이따금 
    극도의 긴장상태에 빠지는 일밖에는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래들리 씨는 부를 가두어두는 것엔 수긍을 하면서도
     부에겐 어떠한 책임도 넘기지 않으려고 했다. 
    그가 범죄성이 없는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보안관도 부를 차마 흑인과 함께 감옥에 넣을 수 없어 법원 지하실에 가두어두었다.
    부가 법원 지하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의 상황은 젬 오빠도 희미하게나마 기억하고 있었다. 
    마을협회 사람들은 래들리 씨에게 부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축축한 지하실에서 죽게 될 거라고 말해주었던 것이다.
    래들리 씨가 부를 어떤 협박으로 묶어두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오빠는 침대에 묶어놨을 거라고 추측했으나 그것에 대해 아버지는 
    그건 그런 종류의 일이 아니며 인간을 허깨비로 만드는 일은 
    또다른 것이 있는 거라며 일축해버렸다.
    가끔 래들리 부인이 앞문을 열고 현관 쪽으로 걸어가 
    칸나에 물을 주던 모습이 내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젬 오빠와 나는 매일 래들리 씨가 읍내에서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눈은 움푹 패인 눈꺼풀에 초점이 흐린 눈동자였고, 
    그 눈빛이 너무나 희미해 아무 것도 반사하지 않는 듯했다. 
    광대뼈는 튀어나와 있었고, 커다란 입은 윗입술이 얇고 아랫입술은 두꺼웠다.
     스테파니 아줌마는 그가 하나님 말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때문이라 했다. 
    우리는 래들리 씨의 걸음걸이가 흔들림이 없는 일직선과 같았으므로 그 말을 믿어버렸다.
    래들리 씨는 한 번도 우리에게 말을 건넨 적이 없었다. 
    그가 지나갈 때 우리가 고개를 땅으로 처박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아저씨!" 하고 인사를 하면 그는 마른기침만으로 그만이었다. 
    래들리 씨의 큰아들은 펜사콜라에 살았다. 
    그는 성탄절이면 이곳을 찾아왔는데, 래들리 집을 드나드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마을사람들은 래들리 씨가 아서를 집으로 데려온 그날부터 
    죽은 집이나 다름없이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마당에서 시끄럽게 떠들어서는 안 된다는 엄명을 내렸고 
    외출하면서도 칼퍼니아에게 우리가 조용히 지내도록 위임했다. 
    래들리 씨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나무로 된 굄틀이 래들리 집 양쪽 끝을 막고 보도 위에는 마른 짚단이 놓여졌다. 
    차는 뒷길로 돌아갔고 레이놀드 의사선생님은 왕진을 올 때마다 
    우리집 앞에 차를 세워놓고 래들리 집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러나 결국은 굄틀이 치워지고 우리는 현관에 서서 
    집 앞으로 지나는 래들리 씨의 마지막 여정을 지켜보아야 했다.
    신이 숨을 불어넣어주신 인간 중 가장 불쌍한 사람이 가는구나.
    칼퍼니아 아줌마가 중얼거렸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아줌마는 마당에 침을 뱉았다. 
    그녀가 백인의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우리는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마을사람들은 래들리 씨가 땅속에 묻히는 순간이라도 
    부가 밖으로 나오리라 추측했지만 그건 그야말로 추측에 지나지 않았다. 
    부의 형인 나단이 펜사콜라에서 돌아와 그 집에 살게 되었다. 
    그와 그의 아버지 래들리 씨가 다른 점은 오직 나이뿐이었다. 
    젬 오빠는 나단 래들리 씨 역시  단추구입상 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인사에 답례를 해주었고 가끔은 손에 잡지가 들려 있었다.
    우리가 딜에게 래들리 집안에 관해 들려줄 때마다 그는 더 많이 알고 싶어 안달을 했고, 
    전신주에 팔을 두르고 서서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에 사로잡히곤 했다.
    " 집 안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을까? 저길 봐, 얼굴을 밖으로 내미는 것 같아."
    딜이 말했다.
    " 물론 밖에 나오기도 하지. 캄캄한 밤에 ,,, 
    스테파니 크로포드 아줌마가 그러는데 어느 날 한밤중에 깨어보니 
    창문에서 그가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는 거야. 
    마치 해골 같은 얼굴을 하고 말이야.
     딜, 너 밤에 무슨 소리 못 들었니? 그 사람은 이렇게 걷는다."
      오빠가 모래땅 위를 미끄러지듯 걷는 시늉을 했다.
    " 라이첼 아줌마가 밤이면 문을 왜 그렇게 잠그시겠니? 
    우리도 뒷마당에서 여러 번 그의 발자국을 봤지. 
    또 그때는 미닫이문을 긁는 소리도 들었거든. 
    그런데 아빠가 다가가자 그 소리는 사라져버렸어. "
    "그는 어떻게 생겼을까?" 딜이 궁금해 했다.
    오빠는 부의 생김새를 그럴듯하게 설명했다. 
    그의 발은 발자국으로 봤을 때 육하고 반 피트 정도. 
    식사는 다람쥐나 고양이 등 손에 잡히는 대로. 
    그래서 손은 언제나 핏자국으로 물들어 있다. 
    동물을 날것으로 먹는다면 누구도 핏자국을 말끔히 없앨 수는 없으니까. 
    얼굴엔 지그재그식 흉터가 있고 이빨은 누렇게 썩어 있다. 
    눈은 빼꼽하고 언제나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린다 등등.
    " 그를 밖으로 끌어내보자.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만 본다면 소원이 없겠어. "
      딜이 말했다.
      오빠는 죽고 싶다면 래들리 집으로 가서 앞문을 두드리기만 하면 된다고 엄포를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