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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28. 오빠의 비명소리

Joyfule 2009. 3. 29. 01:26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28. 오빠의 비명소리  
    시월의 마지막 날은 유난히 따뜻했다. 재킷조차 필요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할로윈에 참석하러 갈 때쯤엔 바람이 점점 강하게 불고 있었다. 
    오빠는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비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날따라 달도 보이지 않았다. 길모퉁이의 가로등은 
    래들리 집 위로 뾰족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오빠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오늘밤엔 아무도 저 사람들을 귀찮게 하지 않을 거야. 
    오빠는 나의 햄 의상을 어설프게 들고 있었는데, 
    그런 모습이 남자다워보였다.
    정말 으스스한 곳이야, 그렇지? 
    부는 누군가를 해칠 만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빠가 같이 가줘서 다행이야. 
    아버지는 절대로 널 혼자 보내시진 않아.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어. 
    바로 저 모퉁이를 돌아서 운동장만 건너면 되는데. 
    자 운동장은 밤중에 너처럼 조그만 여자아이가 혼자서 가기엔 꽤 긴거리거든. 
    오빠가 나를 쿡쿡 찌르며 장난쳤다.
    너 유령이 겁나지 않니? 
    우린 웃었다. 유령, 달걀귀신, 몽당귀신,마귀 따위는 
    태양이 떠오르면서 안개가 걷히듯이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이었다.
    그 옛날 일들 말이야 ,,, . 
    오빠는 일부러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사의 빛이여, 삶과 죽음의 길에서 사라져라. 
    내 숨을 빨아들이지 말아다오 ,,, . 
    그만해. 
    어느덧 우리는 래들리 집 앞에 있었던 것이다.
    부는 집에 없을 거야. 잠깐, 저 소릴 들어봐. 
    오빠가 말했다.
    어둠 속 저편에서 외로운 앵무새가 나무에 앉아 행복을 모르는지 목청껏 노래하고 있었고, 
    해바라기새의 날카로운 키키 소리와 어치새의 성미 급한 쿠아악소리가 
    푸윌푸윌 하며 우는 푸어윌 새의 슬픈 애도에 답하고 있었다.
    모퉁이를 돌다가 나는 땅 위로 뻗어 있는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오빠는 나를 잡아주느라 햄 의상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우리는 길 옆으로 돌아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그날은 칠흑같이 캄캄한 날이었다.
    오빠, 여기가 어디야? 
    몇 발자국 떼어놓고 나서 내가 물었다.
    떡갈나무 아래야. 다른 곳보다 시원하잖아. 조심해, 또 넘어지지 않게. 
    우리는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나무는 짝이 없는 오래된 떡갈나무였다. 
    두 아이가 마주보고, 양팔로 나무를 끌어안아도 서로 손이 닿지 않을 만큼 우람했다. 
    그 나무는 선생님, 탐정꾼들, 호기심 많은 이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물론 래들리 집과는 가까이 있었지만, 래들리는 그 나무에 아무런 호기심이 없었다. 
    땅속으로 뻗은 가는 뿌리들은 온갖 싸움과 열매 감추기 놀이 등으로 단련되어 있었다. 
    멀리 고등학교 강당에서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불빛이 눈앞을 더욱 캄캄하게 만들었다.
    앞을 보지마, 스카웃. 
    오빠가 말했다.
    땅을 보고 걸어야 안 넘어져. 
    손전등을 가져올 걸 그랬어, 오빠. 
    이렇게 어두울 줄은 몰랐는데 초저녁에 이렇게 어두운 건 처음 봤어. 
    구름이 너무 많이 꼈나
    봐. 그래서 그런 거야. 좀더 가보자. 
    그때 누군가 우리 앞에 뛰어들었다.
    어휴, 맙소사! 
    오빠가 소리쳤다. 불빛이 우리의 얼굴 위로 부서졌다. 
    세실 제이콤이 신바람이 나서 뛰어나왔다.
    하하, 잡았다! 이 길로 올 거라고 생각했지. 
    세실은 키득거리며 소리쳤다.
    여기서 너희들끼리 뭘 하는 거니? 
    부 래들리가 겁나지 않니? 
    세실은 부모님과 함께 자동차로 강당까지 안전하게 갔다가, 
    우리를 찾느라 이 멀리까지 모험을 하며 내려온 것이었다. 
    그는 우리가 이 길로 온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는데, 
    아버지와 함께일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쳇, 저쪽 모퉁이만 돌면 되는데 뭐. 누가 저런 걸 겁낼 줄 아니? 
    오빠가 큰소리치듯 말했다. 
    세실이 우리를 놀래키기는 했지만 그가 있어서 훨씬 좋았다. 
    그의 손전등으로 학교건물을 알아볼 수 있었는데, 그건 세실의 특권이었다.
    너 오늘 암소 할 거지? 옷은 어디다 뒀니? 
    내가 물었다.
    무대 뒤쪽에. 
    세실이 대답했다.
    메리웨더 아줌마가 그러시는데 지금 당장 시작하지는 않을 거래. 
    네 옷도 내것하고 같이 놔둬, 
    스카웃. 이제 다른 애들한테 가보자. 
    이것은 오빠에게도 아주 근사한 제안이었다. 
    오빠 역시 세실과 내가 함께 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으로 오빠는 자기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