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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6. 부 래들리 훔쳐보기 4.

Joyfule 2008. 12. 14. 00:59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6. 부 래들리 훔쳐보기 4.  
    우린 오빠의 바지를 되찾기 전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날 밤 뒷현관에서 나는 소리는 세 배나 크게 들리는 듯했다. 
    자갈밭을 스치는 모든 소리는 
    부 래들리가 앙갚음을 하려고 헤매는 소리 같았고 
    지나가는 흑인들의 웃음소리도 
    부 래들리로부터 풀려나 우리를 따라오는 소리로 들렸다. 
    덧문에서 퍼덕대는 곤충들의 소리도 
    부 래들리가 손가락으로 미친 듯 철사를 끊어내는 소리 같았다. 
    멀구슬나무는 악의를 품은 듯 살아서 꿈틀거렸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가 오빠의 부스럭대는 소리에 잠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어서 더 자, 꼬마 세눈박이야. 
    돌았어? 
    쉬잇, 아빠 방에 불이 켜졌어. 
    이울어진 달빛 속으로 오빠의 후들거리는 다리가 보였다.
    찾으러 가야겠어.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러지마, 안 돼. 
    오빠는 옷을 주섬주섬 입고 있었다.
    가야 돼. 
    그럼 아빠를 깨울 거야. 
    그러기만 해봐, 가만두나. 
    나는 오빠를 내 침대로 끌어 앉히곤 이치를 설명하려고 애썼다.
    오빠, 나랑 래들리 씨가 그걸 발견하면 오빠옷인 줄 알 거야. 
    아빠께 보인다면 좀 곤란하겠지만,
    그것으로 끝이잖아. 침대로 가서 자. 
    그게 바로 내가 염려하는 거야. 그래서 찾으러 가려는 거구. 
    가슴이 아팠다. 혼자 그곳으로 가다니 ,,, . 
    나는 스테파니 아줌마 말이 떠올랐다. 
    나단 씨는 다음을 위해 총알을 장정해뒀다는 것, 
    흑인이거나, 개거나 ,,, 오빠는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나는 결사적이었다.
    그건 그럴 가치가 없어. 오빠, 
    조금은 속상하겠지만 오래 가지 않을 거야. 
    그러다가 총알이 머리를 날리면 어쩔래? 제발 ,,, . 
    오빠는 끈기있게 숨을 내쉬었다.
    스카웃, 저, 그건 있지, 스카웃. 
    오빠가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날 한 번도 때리지 않으셨어. 난 그걸 계속 지키고 싶어. 
    이건 좀 생각해볼 여지가 있었다. 
    아버지는 하루 걸러 한 번쯤은 우리에게 으름장을 놓으신 걸로 난 알고 있었는데 ,,,
    그럼 오빠 말은 아빠가 아무 것도 알아채지 못하셨다는 거야? 
    그럴 거야, 그래서 난 그걸 지켜나가고 싶다는 거지. 
    스카웃, 오늘밤 그곳에 가지 말았어야 했어. 
    그때 난 처음으로 오빠와 동료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가끔 오빠의 행동엔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었지만 길게 가진 않았다. 
    이건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제발. 
    나는 애원했다.
    잠깐만이라도 생각해봐. ,,, 저기 좀 앉아서. 
    입 다물어! 
    아빠가 다시는 아무 말도 안 하실 것 같지는 않아. 
    나 아빠 깨울래. 정말이야. 오빠는 나의 잠옷깃을 움켜쥐어 비틀었다.
    그럼 나도 갈래. 
    나는 숨이 막혀왔다.
    안 돼, 더 성가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그저 뒷문 빗장을 벗기고 오빠가 계단을 내려가는 걸 지켜보았다. 
    새벽 두 시쯤 되었을까. 
    달도 지고 격자무늬의 그림자가 보풀 같은 희미한 공간 속으로 흐릿해져갔다. 
    오빠의 하얀 옷자락이 밝아오는 새벽에 놀라 깜박거리며 달아나는 유령 같았다. 
    실날같은 미풍이 내 옆구리에 흘러내린 땀에 닿아 서늘하게 느껴졌다.
    지금쯤은 사슴목장 뒤쪽으로 해서 학교마당을 건너고 있겠지. 
    지금은 울타리를 돌고 있을 거야. 
    보나마나 아까 가던 대로 가겠지. 시간은 더 많이 걸릴지도 몰라. 
    아직 걱정할 필요는 없어. 래들리 씨의 엽총소리가 날 때까진 걱정하지 않을래. 
    그때 나는 뒷울타리가 삐걱대는 소릴 들은 듯했지만, 그건 나의 착각일 뿐이었다.
    아버지의 기침소리에 나는 다시 숨을 죽였다. 
    우린 가끔 한밤중 화장실로 순례를 할 때, 책을 읽고 있는 아버지를 보곤 했다. 
    아빠는 때때로 밤에 일어나서 우리를 한 번 돌아보고 잠자리에 든다고 했다. 
    나는 불빛이 켜 있는 복도를 응시하느라 눈이 아팠다. 
    불이 꺼지고 나는 숨을 내 쉴 수 있었다.
    밤짐승들도 모두 돌아가고 바람에 잘 익은 물수레나무 열매가 
    지붕 위로 내리굴러서 마치 북을 치는 듯했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는 어둠을 더욱 황량하게 했다.
    저기 돌아오고 있었다. 
    오빠의 하얀 셔츠가 뒷울타리 위로 쑥 올라오더니 점점 크게 다가왔다. 
    계단을 올라 문을 닫고 침대에 앉아 말없이 바지를 들어보였다. 
    오빠는 누웠고, 잠시 침대가 움직이곤 곧 잠잠해졌다. 
    그리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