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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6. 부 래들리 훔쳐보기 2

Joyfule 2008. 12. 12. 04:38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6. 부 래들리 훔쳐보기 2  
    이리하여 난 선택의 여지없이 그들을 따라나서게 되었다. 
    우리는 될 수 있는 한 들키지 않으려고 
    래들리 집 뒷마당 높은 철사 울타리를 생각해냈다. 
    그 울타리는 정원과 옥외변소에 둘러쳐져 있었다.
    오빠가 맨 아랫단 철사를 들어주어 딜이 들어갔고 이어서 나도 들어갔다. 
    그런 다음 우리는 오빠를 위해 철사를 들어주었다. 
    그 공간은 오빠에게 너무 좁았다.
    아무 소리도 내지 마. 
    오빠가 속삭였다.
    케일밭으로 걸어가지 마. 소리가 굉장할 거야. 
    이런 요구들 때문에 한 발자국 걷는 데 일 분은 걸렸다. 
    오빠가 멀리 달빛 아래서 손짓을 해서 조금 빨리 움직였다. 
    우리는 뒷마당 사잇문에 다다랐다. 
    조금 밀어보니 삐걱 소리가 났다.
    침 뱉아. 
    딜이 속삭였다.
    오빠 때문이야, 우린 갇혔어. 어떻게 나가? 
    내가 중얼거렸다.
    쉿, 빨리 침이나 뱉아, 스카웃. 
    우리는 입이 마르도록 침을 뱉았다. 
    그런 다음 오빠가 천천히 문을 들어 옆으로 밀어 울타리에 기대놓았다. 
    그제야 뒷마당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그곳은 더욱 조용했다. 
    삐딱한 현관 위에 두 개의 문과 창문이 있었고 
    기둥을 대신하여 거친 버팀대가 지붕끝에 서 있었다. 
    고물 난로가 구석에 놓여 있고, 
    모자걸이에 달려 있는 거울엔 달이 으스스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 
    오빠가 발을 들으며 조그만 소음을 냈다.
    왜 그래? 
    닭똥이야. 
    그가 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어떤 방향이든 캄캄한 곳을 헤쳐나가야 했기에 
    딜이 앞장서가며 하느님 이라고 조그맣게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확인하며 나아갔다. 
    그리곤 집 옆을 돌아 살금살금 기어 덧문이 있는 창문으로 갔다. 
    창문턱이 오빠보다도 몇 인치 높았다.
    손을 올려봐, 딜. 아니, 기다려봐. 
    우리는 손으로 깍지 껴서 가마를 만들고 
    딜을 우리 손에 올라타게 하곤 그를 창문턱으로 올렸다.
    빨리 해. 
    오빠가 속삭이듯 말했다.
    더이상 못 버티겠어. 
    딜이 내 어깨를 치고 우린 그를 땅 위에 내려놓았다.
    뭐가 보이니? 
    커튼만 보여. 흐린 불빛이 조금 움직였어. 
    자, 여기서 빨리 나가자. 
    그리곤 오빠가 숨을 내쉬며 말했다.
    뒤쪽으로 다시 가보자. 
    나는 반대를 하려 했지만, 오빠는 쉬잇 하면서 조용히 하라고만 했다.
    뒤쪽 창문에서 다시 해보자, 형. 
    하지만, 딜. 
    딜은 멈춰서서 오빠를 앞장세웠다. 
    오빠가 계단 아래 발을 디디자, 나무판자가 삐그덕거렸다. 
    다시 꼼짝 않고 서 있다가 천천히 몸무게를 실었다. 조용했다. 
    두 계단씩 올라 현관 위에 서서 앞뒤로 움직여보고 
    창문으로 가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때였다.
    나는 그림자를 하나 보았다. 
    모자를 쓴 남자의 그림자. 
    처음엔 나무인 줄 알았지만 바람 한점 없었고 나무가 걸을 리는 만무했다. 
    뒷현관은 달빛으로 가득찼고, 
    그 그림자는 갓 구워낸 토스트처럼 바삭거리며 오빠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 다음 딜이 보았다. 얼굴을 가렸다. 
    그림자가 오빠에게 닿았을 때에야 비로소 오빠도 보았다. 
    그는 팔로 머리를 감싼 채 빳빳하게 굳어버렸다.
    그 그림자는 오빠 바로 앞에서 멈추더니 
    팔이 나왔다가는 다시 내려져 그대로 있었다. 
    그리곤 돌아서서 현관을 따라 사라져버렸다.
    현관 아래로 젬 오빠라 뛰어내려 미친 듯 달려왔다. 
    우리는 케일밭 이랑 사이를 나는 듯이 뛰었다. 
    케일밭 중간쯤 와서 내가 걸려 넘어졌다. 
    이웃집에서 들리는 커다란 엽총소리 때문이었다.
    딜과 오빠가 내게로 뛰어들었다.
    스카웃! 
    오빠의 숨소리는 흐느낌으로 변했다.
    학교 마당 울타리로, 빨리! 
    오빠가 철조망을 들었다. 
    딜과 내가 기어들어 학교 마당의 유일한 떡갈나무를 향해 
    반쯤 뛰었을 때야 오빠가 없음을 알아챘다. 
    그리곤 다시 울타리로 뛰어갔다. 
    오빠가 버둥거리며 철사에 걸린 바지를 벗어 던지고 있었다. 
    그리곤 속바지 바람으로 떡갈나무를 향해 마구 뛰었다.
    안전지대에 도착하고 나니, 무감각이 엄습했다. 
    그러나 오빠의 마음은 아직도 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집으로 가자, 아빠가 찾으실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