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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전 - 박지원 2.

Joyfule 2010. 4. 12. 08:13

  허생전 - 박지원 2.  
“천 명이 천 냥을 빼앗아 와서 나누면 하나 앞에 얼마씩 돌아가지요?”
“일 인당 한 냥이지요.”
“모두 아내가 있소?”
“없소.”
“논밭은 있소?”
군도들이 어이없어 웃었다.
“땅이 있고 처자식이 있는 놈이 무엇 때문에 괴롭게 도둑이 된단 말이오?”
“정말 그렇다면, 왜 아내를 얻고, 집을 짓고, 
소를 사서 논밭을 갈고 지내려 하지 않는가? 
그럼 도둑놈 소리도 안 듣고 살면서, 집에는 부부의 낙(樂)이 있을 것이요, 
돌아다녀도 잡힐까 걱정을 않고 길이 의식의 요족을 누릴 텐데.”
“아니, 왜 바라지 않겠소? 
다만 돈이 없어 못 할 뿐이지요.”
허생은 웃으며 말했다.
“도둑질을 하면서 어찌 돈을 걱정할까? 
내가 능히 당신들을 위해서 마련할 수 있소. 내일 바다에 나와 보오. 
붉은 깃발을 단 것이 모두 돈을 싫은 배이니, 마음대로 가져가구려.”
허생이 군도와 언약하고 내려가자, 군도들은 모두 그를 미친 놈이라고 비웃었다. 
이튿날, 군도들이 바닷가에 나가 보았더니, 
과연 허생이 삼십만 냥의 돈을 싣도 온 것이었다. 
모두들 대경(大驚)해서 허생 앞에 줄지어 절했다. 
“오직 장군의 명령을 따르겠소이다.”
“너희들, 힘껏 짊어지고 가거라.”
이에, 군도들이 다투어 돈을 짊어졌으나, 한 사람이 백 냥 이상을 지지 못했다.  
“너희들, 힘이 한껏 백 냥도 못 지면서 무슨 도둑질을 하겠느냐? 
인제 너희들이 양민(良民)이 되려고 해도, 
이름이 두둑의 장부에 올랐으니, 갈 곳이 없다.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니, 
한 사람이 백 냥씩 가지고 가서 여자 하나, 소 한필을 거느리고 오너라.”
허생의 말에 군도들은 모두 좋다고 흩어져 갔다.
허생은 몸소 이천 명이 1년 먹을 양식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군도들이 빠짐없이 모두 돌아왔다. 
드디어 다들 배에 싣고 그 빈 섬으로 들어갔다. 
허생이 도둑을 몽땅 쓸어 가서나라 안에 시끄러운 일이 없었다.
그들은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대[竹]를 엮어울을 만들었다.  
땅기운이 온전하기 때문에 백곡이 잘 자라서, 
한 해나 세 해만큼 걸러 짓지 않아도 한 줄기에 아홉 이삭이 달렸다. 
3년 동안의 양식을 비축해 두고, 나머지를 모두 배에 싣고 
장기도(長崎島)로 가져가서 팔았다. 
장기라는 곳은 삼십만여 호나 되는 일본(日本)의 속주(屬州)이다. 
그 지방이 한참 흉년이 들어서 구휼하고 은백만 냥을 얻게 되었다.  
허생이 탄식하면서,
“이제 나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구나.”
하고, 이에 남녀 이천 명을 모아 놓고 말했다.
“내가 처음에 너희들과 이 섬에 들어올 때엔 먼저 부(富)하게 한 연후에 
따로 문자를 만들고 의관(衣冠)을 새로 정하려 하였더니라. 
그런데 땅이 좁고 덕이 엷으니, 나는 이제 여기를 떠나련다.  
다만, 아이들을 낳거들랑 오른손에 숟가락을 쥐고, 
하루라도 먼저 난 사람이 먼저 먹도록 양보케 하여라.”
다른 배들을 모조리 불사르면서,
“가지 안으면 오는 이도 없으렸다.”
하고 돈 오십만 냥을 바다 가운데 던지며,
“바다가 마르면 주워 갈 사람이 있겠지. 
백만 냥은 우리 나라에도 용납할 곳이 없거늘, 
하물며 이런 작은 섬에서랴!”했다. 
그리고 글을 아는 자들을 골라 모조리 함께 배에 태우면서, 
“이 섬에 화근을 없애야 되지.”했다.
허생은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난하고 의지 없는 사람들을 구제했다. 
그러고도 은이 십만 냥이 남았다.
“이건 변씨에게 갚을 것이다.”
허생이 가서 변씨를 보고
“나를 알아보시겠소?”
하고 묻자, 변씨는 놀라 말했다.
“그대의 안색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니, 
혹시 만 냥을 실패 보지 않았소?”
허생이 웃으며,
“재물에 의해서 얼굴에 기름이 도는 것은 당신들 일이오. 
만 냥이 어찌 도(道)를 살찌게 하겠소?”
하고, 십만 냥을 변씨에게 내놓았다.
“내가 하루 아침이 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글읽기를 중도에 폐하고 말았으니, 
당신에게 만 냥을 빌렸던 것이 부끄럽소.”
변씨는 대경해서 일어나 절하여 사양하고, 
십분의 일로 이자를 쳐서 받겠노라 했다. 
허생이 잔뜩 역정을 내어,
“당신은 나를 장사치로 보는가?”
하고는 소매를 뿌리치고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