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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下.

Joyfule 2010. 4. 9. 09:30

 무라카미 하루키 -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下.

나와 그는 우연찮게도 루카라는 중부 이탈리아의 한 마을에서 만났다. 
중부 이탈리아다. 
나는 그 무렵 로마에 아파트를 빌려 살고 있었다. 
마침 아내가 일이 있어 일본으로 돌아간 터라, 
나는 그 동안 혼자서 느긋하게 철도 여행을 즐겼다. 
베네치아에서 베로나 만투바 모데나를 거쳐,루카에 들렀던 것이다. 
루카에는 두 번째 방문이었다. 조용하고 좋은 마을이다. 
그리고 맛있는 버섯요리를 파는 레스토랑이 마을어귀에 있다. 
그는 사업차 루카에 와 있었다. 
우연하게도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이 같았다. 
세상은 참 좁다. 
그날 밤,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를 하였다.
우리는 양쪽 다 혼자서 여행을 하고 있었고, 양쪽 다 따분해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나 홀로 여행은 따분한 것이 된다. 젊은 시절은 다르다. 
혼자든 둘이든, 어디를 가든 마음껏 여행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 그렇지가 않다. 
나 홀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어음 이틀이나 한 사흘뿐이다. 
점점 풍경이 시큰둥해지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성가셔진다. 
눈을 감으면, 옛날에 있었던 기분 나쁜 일이 떠오르고 만다.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기가 귀찮아진다. 열차를 가다리는 시간이 무한정 길게 느껴진다. 
몇 번이나 시계를 힐끗거리게 된다. 외국어로 말해야 하는 것이 싫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상대방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어쩌면 천만다행이다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는 레스토랑의 난로 앞 테이블에 앉아, 붉은색 고급 포도주를 주문하고, 
버섯 전채를 먹고, 버섯 파스타를 먹고, 버섯 로스트를 먹었다. 
그는 가구를 사들이러 루카까지 온 것이었다. 
그는 유럽 가구 전문 수입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그는 물론 그 사업에 성공하였다. 
딱히 자랑을 하지도 않고, 그럴싸한 냄새를 풍기지도 않았지만
(그는 내게 명함 한 장 주고는, 조그만 회사를 하나 경영하고 있어, 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가 현세적 성공을 수중에 넣었다는 것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이며, 말투며, 표정이며, 몸짓이며, 두르고 다니는 공기로 금방 알 수 있었다. 
성공은, 그라는 인간에게, 착 배어 있었다. 아주 상큼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는 내 소설을 전부 읽었다고 했다. 
「나와 자네와는 필경 생각하는 방식도 다를 것이고, 지향하는 것도 다를 거야. 
하지만 타인에게 뭐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 
지당한 의견이었다. 
「제대로 잘 할 수 있다면 밀이지.」라고 나는 말했다. 
우리는 처음에는 이탈리아라는 나라에 대해 얘기했다. 
열차의 발착 시간이 제멋대로라는 듯, 식사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등. 
그런데 어쩌다 얘기가 그쪽으로 흘렀는지 기억하고 있지 않지만, 
두 병째 캔티 와인이 테이블에 놓여졌을 때, 그는 이미 그 이야기를 시작한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이따금 응,응,하고 맞장구를 치면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이야기를 누구에 겐가 하고 싶었던것 같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장소가 중부 이탕리아의 조그만 마을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 아니었더라면, 
그리고 포도주가 향긋한 83년도 산 콜티브오노가 아니었더라면, 
난로에 불이 타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 이야기를 영영 하지 못한 채 세월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옛날부터 나 자신은 따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라고 그는 얘기를 시작했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정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였거든. 
늘 내 주위로 틀 같은 것이 보이고, 거기에서 빠져나가지 않으려고 주의하면서 살아왔지. 
언제나 눈앞에 가이드 라인 같은 것이 보였어. 친절한 고속도로 같은 것이지. 
무슨 무슨 방면은 오른쪽 차선으로 붙어라. 이 앞에는 커브길이 있다. 
추월은 금지한다, 는 등 말이야. 그 지시대로만 좇아가면 길을 잘못 드는 일이 없지. 
어디로든,그런 식으로 사는 나를 사람들은 칭찬해 주었어.모두가 감탄 하면서 말이야. 
어렸을 적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런 것이 보일 테지 
하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나는 포도주 잔을 들어 불 앞에 비추며, 잠시 그것을 바라보았다. 
「내 인생은,적어도 처음 부분이 그렇다는 뜻이지만,그런 의미에서 아주 순탄한 것이었어. 
문제라 할 만한 문제는 아무 것도 없었지. 하지만 그 대신에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의미 같은것을 제대로 포착할 수가 없었어. 
성장함에 따라 그런 어정쩡한 기분은 점점 더 강렬해졌지. 
나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그걸 모르겠는거야. 올 에이 증후군이지. 
요컨대 말이야,수학도 잘하고,영어도 잘하고,체육도 잘하고,아무거나 다 잘하는, 
부모는 칭찬을 하고, 선생님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데 문제가 없다고 하였지. 
하지만 나는 대체 어떤 것이 내 적성에 맞는가, 나는 뭘 하고 싶어하는가, 
그걸 알 수 없었어. 대학의 과만 해도 어떤 과를 선택하면 좋을지 나 자신은 
전혀 모르는 거야. 법대에 가야할 것인지, 공대에 가야 마땅한 것인지, 
아니면 의대에 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그래서 부모님과 선생님이 가라는 대로 
도쿄 대학 법학 부로 진학을 했어.그게 가장 타당한 길이라고들 하기에 말이지. 
확실한 지침이라는게 없었어.」 
나는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다. 
「자네 내 고등학교 시절 걸 프렌드 기억하나?」 
「후지사와란 이름이었던가.」라고 나는 이름만 간신히 기억해내 말했다. 
별로 자신이 없었는데, 제대로 맞추었나 보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후지사와 요시코, 그녀 일만 해도 그랬어. 난 그녀를 좋아했지. 
그녀랑 함께 있으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웠어. 
나는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그녀에게 털어놓은 수 있었고,그녀도 내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해 주었어. 하염없이 긴 얘기를 하면서 얼마든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 
그건 정말 멋진 일이었지. 그렇지 않겠어,나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라고는 한 명도 없었으니까.」 
그와 후지사와 요시코는 소위 정신적인 쌍생아였다. 
두 사람이 자라난 환경은 기분 나쁠 정도로 비슷했다. 
둘 다 얼굴 생김이 반듯하고, 성적이 좋고, 타고난 리더였다. 반의 슈퍼스타였다. 
양쪽 다 가정은 유복하지만 부모의 사이는 나빴다. 
엄마 쪽이 약간 연상이고, 아버지는 다른 여자를 만들어,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혼을 하지 않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눈총을 의식한 체면 때문이었다. 
집안에서는 엄마가 권력을 쥐고 있었다. 
그들은 무슨 일이든 일등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친밀한 친구는 없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아마도 보통 불완전한 인간은 자기와 비슷 정도의 불완전한 인간을 친구로 삼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언제나 고독하고, 언제나 긴장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한 일로 두 사람은 사이가 좋아졌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허락하고, 이윽고 연인 사이가 되었다. 
항상 둘이 함께 전심을 먹고, 힘께 집으로 돌았다. 
틈만 있으면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 얘기가 산처럼 많았다. 일요일에는 함께 공부를 하였다. 
두 사람은 둘이 있을 때만 가장 편안한 기분이 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손바닥에 올려놓듯 알 수 있었다. 
서로가 지금까지 품고 있었던 고독감이며 상실감, 불안감 그리고 어떤 류의 
꿈같은 것에 대해서,두 사람은 질리지도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일주에 한 번 꼴로 페팅을 하게 되었다. 
대개는 어느 한쪽의 집에서 했다. 
어느 쪽이든 집에는 별로 사람이 없었으므로(아버지는 늘상 집에 없었고, 
엄마는 볼 일이 많아 나다니기가 일쑤였다), 그러기는 간단했다. 
그들 사이의 규칙은 옷을 벗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손가락만을 사용했다. 
그런 식으로 10분이나 15분 가량 서로를 탐닉하듯 격렬하게 껴안고는, 
그 다음 한 책상에 나란히 의자를 놓고 공부를 하였다. 
「자, 이제 이 정도로 됐지? 슬슬 공부나 하자.」라고 그녀는 치맛자락을 피며 말했다. 
두 사함의 성적은 거의 엇비슷하여,그들은 게임을 하듯 공부를 즐길 수 있었다. 
수학 문제를 시간을 재가며 앞다투어 풀기도 하였다. 
공부란 그들에게는 전혀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공부는 그들에게 제2의 천성 같은 것이었다. 
「그런 일들이 모두 아주 즐거웠어.바보짓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재미있었어.그런 즐거움이란,아마 우리 같은 인간밖에 모를거야.그는 말했다. 
그러나 그가 그런 관계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가 결여되고 있다고 그는 느꼈다. 그렇다. 그는 그녀와 자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진짜 섹스를 요구하고 있었다.〈육체적인 일체감〉그는 그렇게 표현했다. 
「나에게는 그것이 필요했어.거기까지 도달함으로 해서,우리는 좀더 해방되고, 
좀더 서고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그건 나로서는 아주 자연스런 심정의 추이였어.」 
그러나,그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매사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앙 다물고,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너를 무척 좋아해. 하지만 나는 결혼할 때까지 처녀로 있고 싶어.」라고 
그녀는 침착한 어투로 말했다. 
그리고 그가 아무리 있는 말을 다하여 설득을 해도,귀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너를 좋아해, 아주 아주.그렇지만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것과 이 문제와는 별개야. 
이 점은 내겐 명백하게 정해져 있는 일이야, 미안하지만, 
참아줘. 부탁이야. 나를 정말 좋아한다면, 참을 수 있겠지?」 
그런 식으로 말하면, 그녀의 말을 존중할 수밖에 없잖아, 라고 그는 내게 말했다. 
그것은 생의 방식의 문제이고, 그런데도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고, 
내 자신은 상대방이 처녀이든 아니든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만약 내가 결혼한 상대가 처녀가 아니라 하더라도, 
특별히 마음에 두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나는 딱히 래디컬한 사고를 갖고 있는 인간도 아니고 몽상적인 인간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수적인 것도 아니거든. 나는 다만 현실적일 뿐이야.
처녀이든 아니든, 내게는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어. 
중요한 것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었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의견이니까 말이지. 그것을 강요할 수는 없는거지. 
그녀에게는 그녀가 생각하는 인생의 모습이란 게 있을 것이고, 그래서 나는 참았어. 
줄곧 옷 밑으로 손을 넣어서 페팅만 했어. 대충 어떤 일인지 자네도 알겠지? 
대충 알아, 라고 나는 말했다.나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 
그는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씁쓸히 웃었다. 
그거 그것대로 좋았어. 하지만 거기에 머물러 있는 한 나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없었지. 
내게 그것은 과정에 불과한 것이었거든. 내가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무 것도 숨기지 않고 그녀와 한 몸이 되는 것이었으니까. 소유하고,소유되는것, 
그렇다는 증거가 필요했어. 물론 성욕도 있었지. 그러나 그것 뿐만은 아니야. 
내가 말하는 것은 육체적인 일체감이야. 나는 태어나서 그때껏 그런 일체감은 한 번도 
느낀 적이 없었어. 난 언제나 혼자였지.그리고 언제나 어떤 틀 안에서 긴장하고 있었어. 
나는 자신을 해방시키고 싶었던 거야. 자신을 해방시킴으로써,
지금까지 희미하게 밖에 보이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들었거든, 그녀와 하나로 딱 연결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규제해온 틀을 털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던 거야. 
「그런데. 그게 안 됐다는 거야?」라고 나는 물었다. 
「응, 뜻대로 되지 않았어.」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한동안 난로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장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묘하게도 밋밋했다.「결국은 마지막까지 불가능했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그녀와의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또 그 생각을 단호하게 그녀에게 말해 보기도 하였다. 
대학을 졸업하면 나는 곧바로 결혼을 할 수 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약혼이라면 더 빨리 할 수도 있다. 그녀는 한참이나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미소를 띠었다. 그것은 정말 멋진 미소였다. 
그녀가 그의 말을 기쁘게 여기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세상에 길든 인간이 손아래 인간의 
미숙한 정론을 들을때 같은,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다, 
그리고 여유가 있는 미소이기도 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느꼈다. 
있지,너 그건 무리야,나는 너랑 결혼할 수 없어, 
나는 나보다 몇 살 위인 사람이랑 결혼할 것이고, 
너는 몇 살 아래인 사람이랑 결혼하는 거야. 그게 세상의 보통 흐름이라고. 
여자란 남자보다 성장이 빠른 법이니까,그래서 더 빨리 노화하고, 
너는 아직 세상이란 것을 잘 모르고 있어.우리가 대학을 나와 곧장 결혼한다 해도, 
멋지게 살아갈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어. 우리는 지금처럼 살수는 없을 거야. 
물론 나는 너를 좋아해. 태어나서 지금껏 너 이외에 다른 사람을 좋아한 적이없어. 
하지만 그것과 이것과는 별개야
(그것과 이것과는 별개, 라는 말을 그녀는 입버릇처럼 하였다).
우린 아직 고등학생이고, 주변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어. 
하지만 바깥 세상은 그렇지가 않다고. 훨씬 거대하고, 훨씬 더 현실적인 거야, 
우리는 그에 대비를 사지 않으면 안 돼. 
그녀가 하려는 말은 그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 해도 또래의 남자아이들에 비하면 훨씬 현실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이었다. 
그러니까 만약 다른 자리에서 이런 일반론을 들었다면, 
어쩌면 그 의견에 찬동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론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자신의 문제였다. 
난 납득이 안가,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너를 아주 사랑하고 있고, 너랑 하나가 되고 싶어. 
이런 나의 바람은 아주 확실한 것이고 내게는 무척 중요한 일이야. 
가령 거기에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해도,
 솔직히 그건 대수로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나는 그만큼 너를 좋아하고 있어. 사랑하고 있다고. 
그녀는 또 고개를 저었다. 정말 어쩔 도리가 없구나, 라고 말하려는 듯. 
그리고는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사랑에 대해 우리가 뭘 알고 있을까, 라고 그녀는 말했다. 
우리 사랑은 아직 아무런 시련도 당하지 않았어, 
우리는 아무런 책임도 지고 있지 않다고.우린 아직 어린애야. 너나 나나.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서글펐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벽을 쳐부술 수 없는 것이 서글펐다. 
방금 전까지, 그 벽은 그를 지키기 위해 존재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이 그의 앞길을 막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무력하다고 느꼈다. 
나는, 이제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느꼈다. 
나는 아마도 이대로, 이 막강한 틀에 갇힌 채, 거기에서 
밖으로 나가보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나이를 먹어가겠지, 하고 
결국 두 사람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런 관계를 계속하였다. 
도서관에서 만날 약속을 하여, 함께 공부를 하고, 옷을 입은 채 페팅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