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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7장 에바 부인 12.

Joyfule 2008. 11. 10. 10:17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7장 에바 부인 12.  
    나는 공포감에 사로잡힌 채 가만히 방을 나와 계단을 내려왔다. 
    거실에서 나는 에바 부인을 만났다. 
    그녀는 창백하고 피곤해 보였는데 그녀에게서 그런 표정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림자가 창문을 스쳐 지나가자 눈부신 하얀 빛이 흔연히 사라졌다. 
    ”저는 막스에게 갔었어요.” 나는 성급하게소곤거렸다. 
    “무슨 일이 생겼나요? 그가 잠을 자는 건지 
    아니면 무엇에 몰두하고 있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옛날에도 한 번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읍니다만은.” 
    ”물론 그 애를 깨우지는 않으셨겠죠?” 그녀는 황급히 물었다. 
    ”예, 그는 내가 들어가는 소리를 듣지 않았어요. 
    저는 곧 되돌아 나왔어요. 
    에바 부인, 무슨 일이 생겼는지 제게 말씀해주실 수는 없으세요?” 
    그녀는 손등으로 이마를 쓰다듬었다. 
    ”걱정 마세요, 싱클레어. 아무 일도 없으니까요. 
    그 애는 명상에 잠겨 있는 거예요.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그녀는 일어서서 막 비가 내리기 시작한 정원으로 나갔다. 
    나는 함께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거실 안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정신을 혼미스럽게 만드는 히아신드의 꽃향기를 맡기도 하고, 
    문 위에 걸린 나의 새 그림을 쳐다보기도 하며서 
    오늘 아침 이 집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상스러운 그림자를 답답하게 호흡했다. 
    이것이 무엇일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에바 부인은 곧 되돌아왔다. 
    빗방울이 그녀의 까만 머리카락에 방울져 있었다. 
    나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서 그녀에게 몸을굽히고 
    머리카락에 맺힌 물방울에 입을 맞추었다. 
    나에겐 그 물방울이 눈물 같은 맛으로 느껴졌다. 
    ”그에게 가 보고 올까요?” 
    나는 소곤거리는 낮은 어조로 물었다. 그녀는 연약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린애 같은 짓 마세요, 싱클레어!” 
    그녀는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깃든 마력을 깨뜨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크게 나무랐다. 
    “지금은 가세요. 나중에 다시 오세요. 
    지금은 당신과 아무런 이야기도할 수가 없군요.” 
    나는 그 집에서 나와 시내를 지나 산으로 달려갔다. 
    흩날리는 가는 빗방울이 나를 향해 다가왔고 
    구름은 무엇엔가 억눌린 듯 겁을 집어 먹은 것처럼 나지막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래쪽에서는 바람이라곤 거의 불지 않았지만 
    높은 곳에서는 폭풍이 일고 있는 것 같았다. 
    아주 잠시 동안 태양이 강철 같은 잿빛 구름 사이로 
    파리하게 때론 눈부시게 얼굴을 내밀곤 하였다. 
    그때 하늘에서는 누런 구름이 뭉게뭉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 구름이 잿빛의 벽에 걸리고 몇 초 동안 바람이 
    이 누런 구름과 잿빛 하늘로 하나의 형상을, 한 마리의 거대한 새의 형상을 만들었다. 
    이 새는 푸른 혼돈으로부터 뛰쳐나와서는 훨훨 날개를 치면서 하늘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나자 폭풍이 몰아치는 소리가 들리고 비가 우바과 뒤섞여 쏟아졌다. 
    짤막하지만 엄청나게 무서운 천둥소리가 빗발에 얻어맞은 풍경 위에서 울려왔다. 
    그러더니 곧 다시 햇살이 비쳐들고 갈색의 숲 너머에 있는 
    가까운 산 위에 희미한 눈이 어슴푸레 비현실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내가 흠뻑 젖은 채 마에 밀려서 몇 시간 후에 되돌아오자 
    데미안이 손수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그는 자기 방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실험실에는 가스 불이 타고 있었고 종이가 사방에 흩어져 있어 
    그가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을 알아 볼 수 있엇다. 
    ”앉게.” 그는 의자를 권했다.
     “자네는 피곤할 거야. 지긋지긋한 날씨야. 
    자넨 바깥에서 몹시 헤맨 모양이군, 곧 차를 가져 올 거야.” 
    ”오늘은 무슨 일이 있는 것이군.” 나는 주저하면서 말했다.
     “그저 약간 뇌우가 친 것만은 아니지!” 
    그는 무엇인가를 찾아내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자넨 무엇을 보았나?” 
    ”응, 구름 속에서 잠깐 동안이지만 하나의 형상을 보았다네.” 
    ”무슨 형상을?” 
    ”한 마리의 새였어.” 
    ”그 새매? 그것이었나? 자네의 꿈의 새 말이야?” 
    ”응, 내 새매였어. 그것은 누렇고 굉장히 컸었네 
    곧 검푸른 하늘로 날아들어가버렸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