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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7장 에바 부인 13.

Joyfule 2008. 11. 11. 01:00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7장 에바 부인 13.  
    데미안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늙은 가정부가 차를 가져왔다. 
    ”자, 싱클레어, 차를 들게. 
    ---나는 자네가 그 새를 우연히 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네.” 
    ”우연히? 그런 것을 우연히 볼 수가 잇을까?” 
    ”그렇지, 우연히 볼 수는 없겠지. 
    그것은 무엇인가 의미하고 잇을 거야.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나” 
    ”아니, 나는 다만 그것이 변화를, 운명의 한 걸음을 뜻한다고 느낄 뿐이네. 
    나는 그것이 우리들 모두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네.” 
    그는 성급한 걸음으로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운명의 한 걸음이라고!”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똑같은 꿈을 나도 꾸었다네,
     어머니도 어제 똑같은 것을 의미하는 예감을 느끼셨다고 하시더군
    ---나는 사다리를 타고 어떤 나무 줄기엔가 탑엔가에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네. 
    내가 위에 올라가서보니까 그곳은 넓은 평야였는데, 
    온 나라가, 도시나 마을 할 것 없이 모두 불타고 있는 것이었어. 
    나는 아직 전부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네. 
    아직도 도든 것이 뚜렷하게 파악되진 않으니까.” 
    ”자네는 꿈을 자네와 관련시켜서 해석하나?” 나는 물었다. 
    ”나와 관련시켜서? 그야 물론이지. 
    자기와 관련되지 않는 꿈을 꾸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네. 
    그렇지만 그 꿈은 나 혼자에게만 관련된 것은 아니었네. 
    거기에 대해선 자네 말이 맞아. 
    나는 자기 자신의 영혼의 동요를 보여주는 꿈과 매우 드물긴 하지만 
    온 인류의 운명을 암시해주는 꿈을 정확히 구별할 수 있다네. 
    물론 그런꿈은 드물게밖에 꾸지 않네만. 
    그것이 예언이고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꿈은 
    아직 한 번도 꾸어 본 적이 없다네. 
    그런꿈은 해석이 너무 애매하지. 
    그렇지만 나에게만 관계되는 것이 아닌 
    어떤 꿈을 꾸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네. 
    다시 말하자면 그 꿈은 과거에도 여러 번 꾸어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옛날의 다른 꿈에 속해 있는 것이네. 
    이 꿈들은 싱클레어, 내가 자네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겠지만 
    그것들에게서 내가 예감을 얻고 있는 그런 꿈들이란 말일세. 
    우리들의 세계는 정말 부폐되어 있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멸망이나 또는 그와 비슷한 일을 예언할 근거가 될 순 없는 거지. 
    그러나 나는 여러 해 전부터 그것들로부터 
    이 세계의 붕괴가 다가오고 있다고 결론지우거나, 
    느끼거나, 혹은 자네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해도 좋네만, 
    하여간 그와 같은 것을 느끼는 그런 꿈을 꾸어왔다네. 
    그것은 처음에는 아주 약하고 아슬아슬한 예감이었지만 
    갈수록 뚜렷하고 강해지는 것이었네. 
    아직도 나는 나와도 관련이 있는 어떤 크고 무서운 것이 
    다가오고 있다 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네. 
    싱클레어, 우리들이 여러 번 이야기했던 일을 우리는 경험하게될 걸세! 
    이 세계는 스스로 혁신하려 하고 있는 것이라네. 
    죽음의 냄새가 나네. 죽음 없이는 어떠한 새로운 것도 올 수 없는 법이니까. 
    그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한층 몸서리처지는 일이로군.” 
    나는 깜짝 놀라서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 꿈의 나머지 부분을 내게 이야기해줄 수는 없겠나?” 
    나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부탁했다. 그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럴 수 없다네.” 문이 열리고 에바 부인이 들어왔다. 
    ”여기에 같이 있었군! 설마 슬퍼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그녀는 다시 싱싱해져서 전혀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데미안은 어머니에게 미소를 보냈다. 
    그녀는 겁에 질린 아이에게 다가오는 어머니처럼 그렇게 우리들에게로 왔다. 
    ”우리는 슬퍼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어머니. 
    우리는 그저 이 새로운 표지에 대해 좀 추측해보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물론 그것엔 아무런 표지도 안 붙어 있어요. 
    오려고 하는 것은 갑자기 오겠지요.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결국은 알 수 있게 될 거예요.” 
    그러나 나는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작
    별을 고하고 혼자 거실을 지날 때 풍겨온 히아신드의 향기가 
    시들고 무미한 죽음의 냄새처럼 느껴졌다. 
    한 자락의 그림자가 우리들을 덮쳐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