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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여자의 일생(Une Vie)

Joyfule 2009. 6. 25. 01:58

    5.여자의 일생(Une Vie)

    잔은 도망쳐 버리고 싶은 격한 생각에 사로잡혀 속옷 바람으로 집을 나섰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눈 속을 절망적으로 달려 갔다. 오랜 실신 상태에서 깨어나 따뜻한 이불 속에 누워 있는 자신으로 돌아간 잔은 조금씩 기억이 되살아나는 데 따라 한없는 분노를 느꼈다. 루앙에서 달려온 남작 부부에게 잔은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노기에 불타는 남작은 당장 줄리앙에게로 뛰어가서 따지고 들었다. 그러나 줄리앙은 신에게 맹세하면서 부인했다. "대관절 무슨 증거가 있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잔은 열병 때문에 머리가 이상해진 겁니다" 줄리앙은 오히려 격렬하게 화를 내며 소송을 하겠다고 협박을 했다. 남작은 어리둥절했다. 잔은 남편의 대답을 듣고 나서 생각해 보았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잔은 로잘리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으나 남작이 그것을 거절했다. 마음이 산란할 때에 의사가 들어왔다. 잔은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로잘리를 만나겠다고 계속 반복했다. "진정하십시오. 흥분하시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지금 임신 중이니까요" 잔의 손을 잡고 의사가 말했다. 머리를 얻어맞은 멍한 표정으로 잔은 생각에 잠겼다. 나의 뱃속에 애가 살고 있다. 그것이 줄리앙의 아이라고 생각하니 한없이 슬프기만 했다. 잔은 마침내 사제를 오게 하고 그 자리에 로잘리도 나오게 했다. 남작에게 떼밀려 로잘리는 방바닥에 쓰러진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껴 울었다. 잔은 홑이불처럼 창백해져서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내가 느닷없이 방에 들어갔을 때 줄리앙의 잠자리에 있었던 건 너지? 로잘리!" "네, 부인"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생겼지?"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처음 여기서 식사를 하시던 날 제 방으로 오셨습니다. 다락에 숨어 계셨습니다" "그럼 네 아인... 그 사람 거야?" "네, 부인" "우리가 여행에서 돌아온 후로는? 언제부터 또 시작했니?" "오시던 그 날 밤부터..." 말 한마디한마디가 잔의 가슴을 쥐어뜯었다. 맥이 풀리고 무한한 절망감이 전신을 감돌았다. 그 이상 듣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나가, 어서 나가!" 잔은 소리쳤다. 남작이 다시 로잘리의 어깨를 붙들고 문에서 끌고 나가 짐짝처럼 마루에 떼밀어 버렸다. 남작이 얼굴이 파래져서 자리로 돌아오자 사제가 말했다. "참 야단입니다. 이 고장의 여자들이 다 저 모양이거든요" "아니, 용서 못할 인간은 줄리앙이죠. 더러운 녀석! 제 딸을 데리고 가겠어요" "좀 참으십시오, 남작님. 그도 그저 예사로운 일을 한 데 지나지 않습니다. 사실 남작님 자신만 하더라도 생각해 보시면 아실 텐데요. 하하하..." 남작은 어쩔 줄을 몰라서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울고 있던 잔의 얼굴에는 미소의 그림자가 비치기 시작했다. 사제는 좋은 기회라는 듯이 말했다. "부인 항상 용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부인에게는 크나큰 불행이 닥쳐 왔습니다. 그러나 신은 자비로우시기 때문에 큰 행복으로 이를 제거해 주셨습니다. 부인은 장차 어머니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 애가 부인의 위안이 될 것입니다. 잔 부인 뱃속에 들어 있는 아이를 봐서도 줄리앙 씨의 잘못을 용서하십시오. 어린애는 두 분 사이를 맺은 인연의 실마리니까요" 잔은 대답하지 않았다. 남작은 2만 프랑에 상당하는 농장을 붙여서 사제의 주선으로 다른 남자와 로잘리를 결혼시켰다. 줄리앙은 펄펄 뛰며 아내가 상속받아야 할 재산이라고 주장했으나 남작도 잔도 들어주지 않았다. 잔은 모든 것을 체념한 가운데 임신 기간을 보냈다. 그리하여 예정보다 두 달이나 빨리 7월 말에 사내 아이를 낳았다. 무서운 고통 끝에 인생의 목표를 잃고 있던 잔은 갓난아이의 가냘픈 울음 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에 환희의 섬광이 스치는 것을 느꼈다. 어린애는 잔의 열광적인 애정의 대상이 되었다. 남작 부부도 좋아서 야단이었으나 이기적인 줄리앙은 자신의 지배적인 권위를 침범하는 어린애의 존재가 못마땅한 것 같았다. 줄리앙은 얼마 전부터 근처에 사는 푸르빌 백작 집에 자주 드나들고 있었다. 백작 부인은 얼굴이 희고 깊은 눈을 가진 미인이었다. 백작은 벌건 턱수염을 기다랗게 기르고 거선처럼 거대한 남자로 사냥에 미친 사람이었다. 잔은 남편을 따라 이 부부와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루이 13세 양식인 굉장한 저택은 계곡의 경사진 곳에 있었고 한쪽 돌담이 전부 커다란 연못 속에 들어 있었다. 돌층계 아래에는 배가 네 척 매달려 있었다. 백작은 그 못에서 오리를 잡기도 하고 고기를 낚기도 했다. 잔은, 거칠기는 하지만 호인인 이 곰 같은 거인에게 호감을 가졌다. 백작은 레페플에 오면 잔의 손에서 폴을 받아 안고, 털이 난 큼직한 손으로 어린애를 잘 다루었다. 수염 끝으로 어린애 코를 간지럽히기도 하고, 어머니처럼 입을 맞추기도 했다. 그는 부부 사이에 아이가 없는 것을 항상 괴로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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