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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여자의 일생(Une Vie)

Joyfule 2009. 6. 26. 02:00

    6.여자의 일생(Une Vie)

    한편 줄리앙은 약혼 시절처럼 말쑥하고 단정하며 매혹적인 미남이 되었다. 그 눈에는 다시 애무하는 듯한 빛이 돌았다. 3월이 되자 질베르트 백작 부인의 제안으로 넷이서 가끔 먼 곳까지 승마를 했다. 백작 부인과 줄리앙이 앞서고 잔은 백작과 함께 그 뒤를 따라갔다. 앞서 가는 두 사람은 작은 소리로 조용조용 속삭이다가 별안간 큰 소리로 웃어대기도 하고 의미 심장한 눈초리로 은근히 서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다 느닷없이 채찍질을 하고 달리는 것이었다. 어느 날 저녁 이상하게 흥분한 백작 부인은 줄리앙이 말리는 데도 불구하고 연상 박차를 가해서 말을 몰았다. 그러나 갑자기 말이 우뚝 서서 땅을 차며 입에서 거품을 내뿜었다. "조심하지 않고 뭐야, 질베르트!" 걱정이 된 백작이 큰 소리로 나무랐다. 부인은 백작의 말에 도전하는 듯이 오히려 사납게 채찍으로 양쪽 귀 사이를 쳤다. 훌쩍 뛰어오른 말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들을 달렸다. 백작은 나직히 신음 소리를 내더니 자기 말의 목을 안는 것처럼 몸을 굽히고 전력을 다해서 말을 앞으로 내몰았다. 말은 미친 듯이 달렸다. 그 모양은 마치 거인이 말을 다리 사이에 끼고 날아가는 것 같이 보였다. 두 마리 말은 쏜살 같이 달려 잠시 동안에 목장 저쪽에 조그맣게 되고 마침내 지평선 넘머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잔과 줄리앙이 그 뒤를 쫓았다. 15분쯤 달리더니 되돌아오는 백작 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이윽고 네 사람이 만났다. 백작은 새빨개진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며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부인은 새파랗게 굳어진 얼굴이 괴로워 보였다. 잔은 백작이 그의 부인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백작 부인은 그 후 한 달 동안 일찍이 본 적이 없을 만큼 쾌활했다. 항상 소리내어 웃으며 충동적인 애정을 가지고 잔을 포옹했다. 무언지 신비스럽고 황홀한 상태가 백작 부인에게 찾아든 것 같았다. 백작 역시 무척 행복한 듯이 아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아내의 손과 옷자락을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줄리앙도 또한 아주 딴사람처럼 쾌활하고 상냥해졌다. 마치 두 집의 친밀이 곧 각자의 평화와 기쁨의 원천인 듯했다. 그 해 봄은 유난히 더 일찍 왔다. 어느 날 아침 잔은 조그만 흰 말을 타고 들로 나갔다. 줄리앙은 아침 일찍부터 어딘가 가고 없었다. 잔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옛날 줄리앙과 사랑을 속삭이던 숲 속으로 들어갔다. 막 좁은 길을 들어서려는 순간이었다. 잔은 그 길 막다른 데 있는 나무에 매어둔 두 마리의 말을 보았다. 분명히 줄리앙과 백작 부인의 말이었다. 여자 장갑 한짝과 채찍 두 개가 풀 위에 떨어져 있었다. 잔은 말에서 뛰어내려 나무줄기에 기대섰다. 바로 옆 풀 속에서 두 마리 산새가 날아 앉았다. 한 마리가 열심히 쭉지를 펴고 몸을 떨면서 상대방 둘레를 훌훌 날다가 머리를 살짝 숙이고는 울고 있더니 별안간 두 마리가 한데 어울렸다. "참 그래 봄이니까" 중얼거리는 동안에 문득 어떠한 의혹이 잔의 머리에서 번쩍였다. 잔은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은 충동에 못 이겨 정신 없이 말을 몰았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잔은 어린애에게 뛰어가서 몇 번이나 키스를 했다. 잔의 그 가슴 속에는 이미 질투도 증오도 없었다. 다만 살을 찌르는 듯한 고독감과 모든 인간에 대한 불신에 괴로워할 따름이었다. 또 다시 봄은 돌아왔다. 지난 1년 동안 잔에게는 한 가지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어머니 아델라이드 부인이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남작 부부는 딸과 함께 따뜻한 계절을 보내기 위해 5월 20일 루앙에서 레페플에 왔었다. 어머니 모습을 대하는 순간 잔은 깜짝 놀랐다 지난 6개월 동안 남작 부인은 10년이나 더 늙은 것 같았다. 토실토실하던 볼이 자주빛이 되고 눈은 빛이 사라졌으며 숨을 쉬기도 괴로워했다. 줄리앙까지도 그 변화에 놀랄 지경이었다. 그 날은 도리어 보통 때보다도 몸이 좋은 편이었다. 점심 때에는 수프와 달걀을 두개나 먹고 평상시처럼 플라타너스 우거진 오솔길을 산책했다. 그런데 별안간 길에 쓰러져서 그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날 밤 잔은 싸늘한 어머니 손을 쥔 채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잔의 희망에 따라 어머니의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릴 때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잔은 어머니가 운명하기 전에 예전 편지를 다 꺼내서 읽으며 울고 있던 생각이 났다. 어머니가 소녀 시절 이래 할머니나 친구들한테서 받은 것이었다. 잔은 아직 그대로 있는 어머니 편지 상자 쪽으로 눈을 돌린 다음 일어나서 그것을 끌어내렸다. 갑자기 읽고 싶어진 것이다. 할아버지나 할머니 편지는 다 쓸데없는 그러나 열렬한 사랑의 편지였다. 사소한 집안 일들이 세밀히 적혀 있었다. 그런데 다른 뭉치를 풀어서 읽기 시작한 잔은 넋을 잃었다. '소생은 이제는 그대의 애무 없이는 지낼 수 없습니다. 미칠 듯이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오늘 밤 그가 나가는 대로 곧 와 주십시오. 한 시간은 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소생은 그대를 열애하고 있습니다' '허무하게 그대를 요구하면서 괴로운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남편이 있는 당신을 생각하며 창문으로 몸을 던져 버리고 싶은 격정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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