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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자의 일생(Une Vie)

Joyfule 2009. 6. 24. 01:36

    4. 여자의 일생(Une Vie)

    겨울이 닥쳐 왔다. 잔의 양친은 정초에 루앙으로 옮겨 갔다. 줄리앙은 극도로 인색한 본성을 나타내어 하인들의 식량에 이르기까지 엄밀히 제한을 했다. 잔이 매일 아침 빵집에 주문하던 가레트를 금하고 보통 빵으로 바꿨다. 잔은 말다툼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의 탐욕스러운 모습을 볼 때마다 바늘 끝에 찔리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줄리앙은 하인들 급료나 그 밖의 어떠한 지출에서 얼마씩 돈을 뗄 때마다 그 돈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싱글거리며 말하는 것이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거든 " 쾌활하고 언제나 노래를 부르고 있던 로잘리도 달라졌다. 새빨갛던 두 볼이 혈색을 잃고 거북한 듯이 발을 끌며 걷는 것을 보고서 "너, 어디 아프니?" 하고 잔이 물으면 으레, "아녜요. 부인"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로잘리는 노르망디 태생으로 잔의 젖동생이기 때문에 다른 하인들과는 좀달리 대우받고 있었다. 정월도 다 갈 무렵에 눈이 내렸다. 하룻밤 사이에 들 전체가 눈에 덮이고 모든 나무는 다 얼어 붙었다. 어느 날, 점점 더 변화가 심해진 로잘리가 몹시 거북스럽게 잠자리를 보고 있는 동안 잔은 난로 옆에서 발을 쬐고 있었다. 그런데 등 뒤에서 무척 괴로운 듯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웬일이니?" 잔이 물었다. "아무 일도 아녜요. 부인" 로잘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대답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듯 떨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심한 신음 소리로 변했다. 잔은 겁이 났다. 창백한 얼굴, 핏기 어린 흐릿한 눈, 로잘리는 두 다리를 뻗고서 침대에 등을 기대고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왜 그러니, 로잘리 웬일야?" 로잘리는 말 한 마디 없이 미칠 것 같은 눈으로 잔을 쳐다보며 무서운 고통에 찢기듯이 숨을 헐떡거렸다. 갑자기 온 몸에 힘을 주고는 이를 깨물고 비명을 죽이면서 뒤로 미끄러져 굴렀다. 그러자 아래 옷으로 무엇인지 움직여 보였다. 곧 거기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물결치는 소리 같기도 하고 혹은 목을 눌러 숨이 막히는 듯한 소리 같기도 한 이상한 소리였다. 그 소리는 이제 아기 울음 소리로 변했다. 가냘프고 고뇌에 찬 호소의 소리였다. 그것은 이 세상에 얼굴을 내놓은 인간의 최초의 호소였다. 줄리앙은 몹시 격하게 화를 내고 있었다 "도대체 당신은 저 계집애를 어떻게 할 셈이야? 애비 없는 자식 따위를 집에 둘 순 없어" "그렇지만 여보, 어디, 맡기기라도 하면..." "돈은 누가 치르고? 당신이 ?" "그야 애 아버지가 내겠지요. 그 사람이 로잘리와 결혼하면 되잖아요?" "애비라고? 당신은 그게 누군지 알고 있나? 알 까닭이 없지" "하지만 저 애를 저대로 내버려둘 순 없어요. 그건 비겁하잖아요? 이름을 물어 봐서 내가 그 남자를 만나겠어요" "흥 남자 이름을 대줄 게 뭐야 그리고 만일 사내가 싫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애비도 모르는 애를 데리고 있는 저런 여자를 그냥 여기 두어서는 안 돼. 얼마쯤 돈을 줘서 내쫓아야 해" 잔은 단호히 반대했다. "안 돼요. 그것만은 안 돼요. 저 애는 내 젖동생이에요.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걸요. 우리집에서 쫓아 내다니, 안 될 말이에요. 정 그렇다면 내가 애를 키우지" 줄리앙은 빨끈해서 외쳤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미쳤나? 그런 짓을 하면 세상 사람들이 뭐라하는지 모른단 말이야?" 그는 노발대발해서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 날 오후 잔은 산파 집을 찾아 나갔다. 로잘리는 잔의 뒷모습을 보자마자 담요 밑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잔이 키스하려 할 때 절망적으로 온 몸을 떨며 로잘리는 얼굴을 피하며 거절했다. 잔은 어린애를 꺼낼 수가 없었다. 한편 줄리앙은 아내에게 거의 말 한 마디 없이 지냈다. 이 주일 후에 로잘리는 일어나 일을 할 수가 있게 되었다. 잔은 어느 날 아침 로잘리의 두 손을 꼭 쥐고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자, 로잘리, 바른 대로 얘기해 줘. 저 앤 누구 애지?" 로잘리는 또 다시 무서운 절망에 사로잡혀 주인의 손을 빼내려고 몸부림쳤다. 마치 고문이라도 당하는 것 같은 신음 소리를 내더니 기어이 손은 뿌리치고 미친 사람처럼 달아나 버렸다. 온 몸이 얼어붙은 듯이 추운 밤이었다. 잔은 신경이 날카로워진 채 이불 속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고 심장은 쿵쿵 울리다가 가끔 멈추는 것 같기도 했다. 별안간 두려움에 잔은 침대에서 뛰어내려 로잘리를 부르는 종을 눌렀다. 아무리 기다려도 로잘리는 오지 않았다. 잔은 정신 없이 맨발로 계단 쪽으로 뛰어가 더듬더듬 계단을 올라갔다. 겨우 문을 찾아서 열었다. "로잘리!" 불러 보았으나 대답이 없다. 방안으로 들어가 침대에 부딪쳤다. 손으로 침대를 더듬어 보니 잠자리는 비어 있었다. 싸늘한 채였다. 당장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잔은 떨리는 무릎에 힘을 주면서 계단을 내려와 줄리앙을 깨우기 위해서 그의 방으로 달려갔다. 꺼져가는 난로 불빛에 잔의 눈에 비친 것은 남편의 머리와 나란히 베개 위에 얹힌 로잘리의 머리였다. 잔이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그 두 사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잔은 우뚝 멈췄다. 그러나 금새 돌아서서 그녀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뒤에서 다급하게 잔을 부르는 줄리앙의 소리가 울렸다. 잔은 방에서 나와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남편의 얼굴을 보고 남편의 거짓말을 듣기가 죽기보다도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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