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세계문학

Edgar Allan Poe - 검은 고양이(The Black Cat:1843) 3.

Joyfule 2009. 8. 11. 09:46
     
      Edgar Allan Poe - 검은 고양이(The Black Cat:1843) 3.       
    그러는 동안 고양이의 상처는 차츰 회복되었다. 
    도려낸 눈 구멍은 사실 끔찍한 모양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그 놈은 평상시대로 집안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내가 가까이 가면 당연히 그럴 테지만 그만 질겁을 하고 달아났다. 
    전에는 나를 그렇게도 따르던 동물이 이렇게 변한 것을 보며 
    처음에는 슬픔을 느낄 만큼 옛날 심정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런 감정은 이내 분노로 변했다. 
    그러자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자초하려는 것 같은 정신의 변태가 생겨 났다. 
    이 정신에 대해서 철학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변태성이 인간의 심정의 원시적 충동의 하나라는 것
    인간의 성격에 방향을 제시해 주는 불가사의한 원시적 본능 
    혹은 감정임을 확신하며 내 영혼 속에 있다는 것도 확신한다.
    고약하거나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되는 경우를 때때로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우리의 가장 건전한 판단력을 무시하고 오직 법률이라는 것을 아는 까닭만으로 
    끊임없이 그것을 범하려는 경향이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뒤틀려 버린 정신이 내 최후의 파멸을 일으키고야 말았다. 
    이 죄없는 짐승에게 가했었던 위해를 그대로 계속하다가 결국에는 
    죽이게까지 나를 충동한 것은 자기의 본성에다 폭력을 가하고 
    악을 위해서 악을 범하려는 자학에 대한 영혼의 무한한 욕망이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평정한 마음으로 고양이 목에 올가미를 씌워 나뭇가지에 매달았던 것이다. 
    눈물이 흘렀고 쓰디쓴 회한으로 가슴이 메었다. 
    그 놈이 나를 꽤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그 놈이 분노를 일으킬 아무 구실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 
    죄를 (내 불멸의 영혼이 위험한 너그러우신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심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경지에까지 떨어지게 하는 끔찍한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놈을 매달았던 것이다.
    이 잔인하기 그지 없었던 짓을 저질렀던 그날 밤 나는 "불이야!" 하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내 침실 커튼에 불이 붙고 있었고 집은 온통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아내와 하인과 나는 간신히 화염 속을 피해 나왔다. 
    모조리 파괴되었다. 
    전재산을 완전히 날려버리자 나는 절망에 몸을 던지게 되었다.
    나는 이 재난과 폭행과의 사이에 인과 관계를 찾아보려고 할만큼 마음이 약하지는 않다. 
    오직 사건의 연쇄를 자세히 설명하여 사슬의 고리 하나라도 내버려 두고 싶지 않은 것이다. 
    불이 난 그 다음 날 나는 불탄 자리에 가 보았다.
    벽은 한쪽만 남고 모두 무너져 있었다. 
    그 한쪽이라는 것은 집 한가운데에 있는 
    그리 두껍지 않은 간막이 방의 벽으로 내가 침대머리를 붙여 두던 벽이었다.
    이 벽의 벽토가 불에 견뎌낸 것은 바른 지가 얼마 안 된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벽 근처에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어떤 부분을 여러 사람이 세밀히 살펴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한데!" "기묘하군!"하는 말들이 내 호기심을 끌었다. 
    가까이 가 보니 커다란 고양이 모양을 한 것이 얇게 조각이나 한 것처럼 나타나 있었다. 
    나타나 있는 모양은 신기하리만치 선명했다. 
    동물의 목에는 올가미가 걸려 있었다.
    나는 처음 이 망령-딴은 망령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으니까-을 보았을 때 
    내 놀라움과 공포는 극도의 것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지난 일을 돌이켜 보고 나니 마음이 덜컹 가라앉았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고양이는 집에 딸려 있는 정원에 매달아 놓았었던 것이다.
    "불이야" 하는 소리에 정원에는 사람들로 꽉 차 버렸는데 
    그들 중 누군가가 나무에 매여 있는 끈을 끊고 
    그 동물을 열려 있던 창문으로 내 침실에 던졌던 것에 틀림없었다. 
    그것은 아마 잠자고 있는 나를 깨우려는 뜻에서 였을 것이다.
    다른쪽 벽이 무너지면서 내 잔인성에 희생된 제물을 새로 바른 회벽에다 압착시켰을 것이다. 
    벽의 석회분이 불꽃과 짐승 시체에서 나온 암모니아와 섞여서 
    내가 보고 있는 화상을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내가 지금 자세히 말한 놀라운 사실을 내 이성으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하지만 내 공상에 심각한 인상을 뿌리박아 놓고 말았다.
    여러 달 동안 나는 그 고양이의 환상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동안에 회한 비슷한 실은 그것도 아니지만 
    모호한 감정이 내 마음 한 구석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잃어버린 것이 애석하여 그 당시 자주 가던 하류 주점 같은 데서라도 
    혹시 그와 같은 고양이나 좀 어딘가 닮은 데가 있는 고양이가 없을까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어느 날 밤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는 술집에 정신없이 앉아 있으려니까 
    방안의 주요한 가구를 이루고있는 진과 럼을 담은 커다란 통들 중 
    어느 하나 위에 무엇인가 시커먼 것이 웅크리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그것을 좀더 일찍 보지 못했다는 사실은 참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가까이 가서 손으로 건드려 보았다. 
    그것은 검은 고양이로서 썩 큰 놈이었는데 
    플루토만큼 큰 데다가 하나만 빼고 모든 점에서 그 놈과 흡사하였다.
    플루토는 몸에 흰 털이라고는 없었는데 이 고양이는 
    선명치 못한 윤곽이긴 하나 가슴이 거의 큼직한 흰 점으로 덮여 있었다.
    내가 건드리자 그 놈은 곧 일어나서 골골 소리를 크게 지르더니 
    내 손에다 몸을 비벼대며 자기를 알아 주는 것을 기뻐하는 눈치였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찾던 고양이었다. 
    나는 당장 주인에게 그 놈을 사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주인은 고양이를 알지도 못하고 전에 본 일도 없으니 
    자기에게는 아무 권리가 없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