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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 Nikolaevich Tolstoi - 부활(Voskesenie:1899)2.

Joyfule 2009. 9. 30. 10:32
      
    
    Lev Nikolaevich Tolstoi -  부활(Voskesenie:1899)2.   
    작가 약전
    톨스토이는 1828년 8월28일 중부 러시아의 루라 시 근교 야스나야폴라나에서 태어났다
    톨스토이는 두 살 되던 해에 어머니를 잃고 여덟 살에는 아버지를 잃었다. 
    그는 세 명의 형과 누이동생이 있었다. 
    부친의 사망 이후 그들의 교육은 숙모인 오스텐 사켄 백작 부인이 맡았으나 
    숙모도 4년 후에 사망하였으므로 또 다른 숙모인 유시코프 부인에게로 옮겼다
    톨스토이의 용모는 몹시 추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비관하였다고 하며 
    그의 기이한 행동은 소년 시절부터 나타났다. 
    하늘을 날아보기 위해 2층에서 뛰어내린 일까지 있었다. 
    숙모의 집에서 프랑스 사람과 독일인 가정 교사에게 교육을 받고 
    15세에 형들과 함께 카잔 대학에 입학하여 동방어학과를 선택하였으나 
    시험에 통과하지 못해 법률학과로 옮겼는데 
    관료주의적인 학과 규정을 이겨 내지 못하고 1847년에 중도 퇴학을 하고 말았다
    혈기 왕성한 청년이었던 톨스토이는 사교적인 숙모의 영향을 받아 
    쾌락에 잠겨 방종한 생활을 보내다 
    우연히 루소의 "참회록"과 "에밀"을 읽고 감동을 받았고 
    루소의 저서라면 "음악 사전"까지 읽었으며 루
    소의 초상을 휘장처럼 목에 걸고 다녔다고 한다. 
    20세에 페테르부르크 대학의 학사 시험에 합격하여 법학사 칭호를 얻자 
    자기의 영지로 돌아가 지주로서 농노 해방의 이상을 품고 
    농사 개량에 착수하였는데 실패로 돌아갔다. 
    그가 청년 시절에 쓴 대학 논문 "토지 사유론"을 실천하기 위하여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은 토지를 농민에게 분배하여 준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농촌 생활에 염증이 난 그는 페테르부르크로 나왔는데 그에게는 가장 어두운 시절이었다. 
    도박과 주색에 빠져 타락한 러시아 귀족의 생활을 하여 
    몇 번이나 자살을 결심한 일도 있었다. 
    이 때 아우를 염려한 형 니콜라이의 권유에 따라 
    카프카스 지방의 수비대에 사관 후보생으로 입대함으로써 파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카프카스의 자연과 그 지방의 생활 양식은 그에게 처음으로 
    예술적 재능을 깨닫게 하여 예술 창작을 시도하였다. 
    24세에 "유년 시대" 등 기타 수 편의 작품을 내었다
    1853년 10월(25세)에 크림 전쟁이 일어나자 포병 사관으로 종군하여 
    이 전쟁의 양상을 선명하게 묘사한 수 편의 단편을 세바스로풀 지에 내어 
    일반 독서계에 필명을 알리기 시작했다
    1862년 9월(34세) 소년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소피아와 결혼을 하여 가정 생활을 시작했다. 
    소피아의 나이는 18세였다. 
    결혼 이후 그는 창작에 비상한 감흥을 가지고 몰두하였다
    1869년(41세) "전쟁과 평화" 완성. 48세에 "안나 카레니나"를 완성
    1908년 8월 28일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차원의 80주년 생일 축하식을 거행했다
    1910년 10월 18일 집을 떠나 방랑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이 날 새벽녘 친구인 의사 도산과 함께 
    수도원에 있는 누이동생을 만나기 위해 떠났던 것이다. 
    그의 일기와 마코비츠키의 말에 의하면 집을 나와서 처음으로 시원스런 자유를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기차에서 감기에 걸려 아스타포바 역에서 하차했는데 
    그 해 11월 7일 역장의 집에서 숨졌다
    그의 뜻에 따라 장례 절차는 극히 소박하였으나 
    그를 흠모하는 수많은 농민 학생 공장 노동자들이 각 지역에서 작은 역에 몰려들어 
    '러시아의 대작가'의 유해를 어깨에 메고 그의 출생지 야스나야폴라나로 행진하였다. 
    관을 묻은 후 수십일 동안 여러 가지 불가사의한 영이가 마을 사람들에게 나타나 보였다고 한다. 
    그 후 묘지는 모든 나라 사람들의 순례의 땅이 되었다. 
    로맹 롤랑으로 하여금 '세계의 아버지'라 부르게 하였고 
    도스토예프스키로 하여금 '예술의 신'이라 경탄케 하였고 
    성자 간디로 하여금 '나의 생애를 이끌어 준 훌륭한 교사'라 숭배하게 하고 
    레닌마저 '만국 근로 대중의 친구'라고 말한 톨스토이는 독자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작품은 수십 개 국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그에 대한 연구서만 해도 무려 2만 3천 권을 넘으며 또한 계속 늘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