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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Hardy - 테스(Tess of the d'Urbervilles:1891)3.

Joyfule 2009. 8. 16. 06:49
     
        Thomas Hardy - 테스(Tess of the d'Urbervilles:1891)3.      
    한두 달이 지나고 명절과 장날이 겹친 9월 어느 토요일 
    트란트리지에서 놀러 나온 패들은 다른 때보다 더 신이 났다. 
    밤 아홉 시가 넘어서였다. 
    트란트리지와 이곳은 워낙 떨어져 있는 곳이라 
    밤 늦은 시간에 홀로 돌아갈 수는 없었으므로 테스는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이미 취기가 오른 알렉이 테스에게 손짓을 했다. 
    "테스, 난 오늘 말을 타고 왔으니 주막으로 와요. 마차를 불러 데려다 줄 테니"
    테스는 마을 사람들과 같이 가겠노라면서 이를 거절했다. 
    열한 시가 훨씬 넘은 후에야 몇 사람씩 떼를 지어 돌아가게 되고 테스도 그 안에 끼었다. 
    그날 밤 유난히 밝은 달빛이 밤길을 훤히 비치고 있었다. 
    술에 취한 남녀들은 비틀거리면서 노래를 부르며 떠들어댔다. 
    테스는 이런 경우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테스는 여자들의 수다를 들으며 묵묵히 걷고 있었다. 
    이 때 동행자 중에 카아라는 여자가 물건이 든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있었는데 
    꿀이 쏟아져 머리카락에 붙어 마치 뱀처럼 꿈틀거렸다. 
    모두가 이 모양을 보고 큰 소리로 웃었을 때 테스도 아무 생각없이 같이 웃고 말았다. 
    카아는 화를 내면서 테스에게 달려들었다. 
      "왜 날 비웃는 거야. 요 악마 같은 것"
      카아는 알렉의 정부였다. 
    알렉이 요즘 테스에게 눈이 팔려 쫓아다닌다는 것을 시기한 카아는 
    공연히 테스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가슴에 쌓였던 연적에 대한 분노가 일시에 폭발한 듯이 갖은 욕을 퍼부어가며 대들었다. 
    같이 가는 사람들이 말리려고 했으나 술에 취한 카아는 
    좀체로 진정하지 않고 점점 더 화를 내고 있었다
    그 때 말을 타고 달려오던 멋쟁이 알렉이 이 광경을 보고
     테스 곁으로 가서 몸을 굽히며 말을 했다. 
     "그런 것 하고 싸울 필요 없어. 자, 내 말에 같이 타요"
      테스는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카아의 욕설을 듣자 그녀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가벼운 심술이 발동했던 것이다. 
    평상시 알렉을 경계했던 테스는 보란 듯이 알렉의 말 위에 올라탔다
    테스는 말을 타고 밤길을 알렉과 함께 간다는 사실에 은근히 불안해졌다. 
    알렉은 유쾌하게 말을 몰면서 테스에게 말을 걸었다. 
      "왜 테스는 내가 키스하려고 하면 싫어하지?"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키스한다는 건 싫은 일이지요"
      "사랑하지 않는다고? 정말 내가 싫어?"
      테스는 아무 말 없이 알렉의 등을 꼭 붙들고 있었다. 
      테스는 이 젊은 주인이 추근거리는 것이 몹시 싫었다. 
    지금도 말 위에서 알렉은 말을 걸었다. 
    골짜기에서 자욱이 드리웠던 안개는 차츰 사방으로 퍼져 두 사람을 감싸 버렸다
    안개는 달빛을 가로막아 활짝 갰을 때보다도 한결 더 골고루 빛을 퍼지게 하는 것 같았다  
    이러한 몽롱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인지 혹은 졸리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으나 
    큰 길에서 트란트리지로 빠지는 갈림길을 지난 지가 꽤 오래 되었는 데도 
    사나이가 트란트리지의 길로 접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테스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테스는 말할 수 없이 피곤했다. 
    한 주일 동안 아침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온종일 서서 지냈고 
    더구나 이 날 저녁에는 체이조바라까지 3마일이나 걸어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느라고 1마일의 길을 걸으면서 그 야단법석을 겪어야 했기 때문에
    기진 맥진했다  벌써 새벽 한 시가 가까웠다. 
    피곤한 나머지 정신없이 잠든 순간 테스는 사내에게 머리를 기댔다. 
    그러자 알렉은 말을 세우고 등자에서 발을 빼어 안장 위에 옆으로 돌아앉아 
    테스를 부축할 양으로 허리에다 두 팔을 감았다. 
    그 순간 테스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불현 듯 치미는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알렉을 떠밀었다. 
    하마터면 사나이는 떨어질 뻔했다
    "이런 욕을 당하다니 내 꼴이 뭐야? 
    근 석 달 동안이나 남의 감정을 희롱하고 요리조리 피하면서 
    골탕 먹이기가 일쑤니 이젠 참을 수가 없어!"
      "전 내일 떠나겠어요"
      "안 되지, 그러지 말고 내 팔에 안겨 줘. 자 어서. 당신과 나와 단 두 사람 뿐 아무도 없어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 당신도 잘 알잖아"
    테스는 안장 위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알렉은 소원대로 테스를 두 팔로 껴안았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죠?"
      "체이조 숲의 한 귀퉁이야. 잉글랜드에서도 제일 오래된 숲이지. 
    밤도 아름답고 하니 좀더 오래 말을 타요"
      "내려 주세요. 전 집까지 걸어가겠어요"
      "내가 당신을 이런 외딴 곳으로 데리고 왔으니 당신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난 당신을 집까지 무사히 보내 줄 책임이 있어 
    아무튼 여기가 어디쯤인가를 내가 보고 올 테니 내가 돌아올 때까지 
    말 곁에서 기다리겠다고 약속한다면 여기다 내려 주지"
    그는 말고삐를 나무에 매놓고 낙엽을 모아 자리를 만들었다. 
    "자 여기 앉아서 기다려요. 그런데 이렇게 옷이 얇아서 춥겠군 그래"
    알렉은 자기 코트를 벗어 테스의 어깨를 감싸고 단추를 끼워 준 다음 비탈로 올라갔다  
    달도 져서 푸른 빛마저 사라져 혼자 남아 낙엽 위에서 
    꿈길을 더듬는 테스의 모습도 잘 보이지 않았다. 
    테스는 힘없이 앉아서 쉬고 있는 동안 어느 사이에 잠이 들고 말았다
    알렉은 일부러 엉뚱한 길로 말을 몬 나머지 
    지금 그들이 접어든 곳이 체이조 숲의 어디쯤 되는지 분간을 못했다. 
    그래서 그는 더듬더듬 산마루를 넘어 낯익은 신작로를 발견하고 위치를 짐작했다  
    그리고는 겨우 테스와 말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사방은 어둠에 싸여 있었다. 알렉은 무릎을 꿇고 몸을 굽혀 테스를 살펴보았다. 
    여자의 입김이 느껴졌다. 테스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속눈썹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엷은 비단결처럼 감촉이 부드럽고 티없는 눈과도 같이 
    새하얀 테스의 살은 알렉에게 더 없는 유혹이었다. 
    알렉은 테스를 이렇게 범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색색거리는 나른한 숨소리와 어렴풋한 테스의 얼굴 살내음은 
    알렉의 자제력을 몽땅 앗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