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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Hardy - 테스(Tess of the d'Urbervilles:1891)5.

Joyfule 2009. 8. 18. 08:43
     
        Thomas Hardy - 테스(Tess of the d'Urbervilles:1891)5.     
    테스는 이 청년을 보았을 때 전에 본 일이 있는 사람인 것만 같았다.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지금으로부터 3,4년 전 테스가 아직 철모르는 소녀였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동네 처녀들과 같이 부인회의 무도회에 갔을 때 끝내 
    자기와는 춤을 춘 일이 없이 총총히 떠나가던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테스는 에인젤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하얀 능금꽃이 떨어지는 초여름의 황혼 아래 테스는 
    공기가 맑고 고요한 정원에 나와 반짝이는 별들을 쳐다보았다. 
    모든 생각을 떠나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때보다
    차라리 이렇게 홀로 조용히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겨 있을 때가 더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 때 뒷집 지붕 밑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왔다. 
    그 구슬픈 음조는 테스의 마음을 꿈 같은 세계로 끌어들였다. 
    잠시 후에 바이올린 소리는 그쳤으나 테스는 다시 들려오기를 기다리며 
    황혼에 비치는 흰 꽃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바이올린을 켜던 사람은 에인젤이었다. 
    그는 악기를 치우고서 바람을 쐬려고 밖으로 나왔다. 
    담 주위를 한 바퀴 돌다가 우연히도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테스를 만났다. 
    사실 에인젤은 테스에게 끌렸으므로 간단한 음악을 연주하고 그녀에게 말을 걸어 볼 생각이었다
    테스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면서 두어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에인젤은 발걸음을 멈추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왜 그렇게 도망가다시피 하세요? 제가 두려우신가요?"
      "아녜요"
      테스는 잠시 말없이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무서운 건 없어요. 별이 이렇게도 아름답게 비치는 걸요"
      "그럼 뭐가 두렵습니까? 아니 당신 눈에 눈물이 고였군요"
      에인젤은 유심히 테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무슨 슬픈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테스는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별을 보고 있노라니까 인간의 행동이 흙탕물같이 더럽게 여겨져서 갑자기 쓸쓸해졌어요"
      "슬퍼한다는 것은 때로는 좋은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맑게 씻어 주니까요"
    에인젤은 테스가 이 목장에 왔을 때부터 용모가 아름다운 그녀에게 끌렸다. 
    또한 지금은 그녀가 영리한 여인임을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목장 한 모퉁이에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다. 
    에인젤의 마음에서는 테스의 얘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은 뒤 그들은 아침 일찍 젖 짜는 곳에서 자주 만났다. 
    젖을 짜기 위해서는 다들 이른 아침에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에인젤과 테스가 제일 빨랐다. 
    두 사람은 다정하게 얘기하며 명랑하게 웃기도 하고 
    아침 햇살에 빛나는 목장을 같이 산책하기도 했다. 
    아침 해의 장미빛에 비치는 테스의 모습은 에인젤에게는 자연의 여왕과도 같이 아름답게 보였다
    무더운 여름철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간 다음 날 테스는 
    오랜만에 이 마을에서 2, 3마일 떨어진 교회로 세 명의 처녀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러 갔다. 
    길은 질퍽했다. 
    한참 가다 보니 언제나 뛰어 넘을 수 있었던 작은 냇물이 불어서 
    신을 벗고 건너가도 물이 무릎까지 닿을 것만 같았다. 
    네 명의 처녀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 냇물을 건너지 않는다면 훨씬 먼 곳에 있는 큰 길로 돌아가야 했다
    에인젤은 일꾼들이 교회에 가는 날이면 언제나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들판을 거니는 습관이 있었다. 
    멀리 네 처녀가 소나기에 넘친 개울가에서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본 에인젤은 
    그들을 못본 척하며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 중에 테스도 끼어 있었으므로 그녀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에인젤은 네 처녀가 몰래 사모하는 대상이었으므로 
    그가 점점 가까이 오자 아가씨들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청년은 가까이 와서 친절히 한 사람씩 안아서 냇물을 건네 주었다. 
    물 깊이는 그의 장화를 넘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테스를 마지막으로 남겨 두었다. 
    세 처녀는 마음을 조이며 에인젤이 테스를 데리러 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어젯밤에 에인젤과 같은 훌륭한 남자는 없으며 
    에인젤이라면 언제라도 결혼하겠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에인젤은 테스를 좋아하고 있다고 하며 풀이 죽어 있었다. 
    테스는 괴로운 심정이었다. 
    자신도 에인젤을 사랑하고 있으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지금 우리들이 이러니저러니 해도 소용없이 그분은 테스를 좋아하고 있는걸"
     테스는 에인젤에게 안겨 건널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몹시 동요되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에인젤이 가까이 왔을 때 테스는 말했다. 
      "전 저쪽 국도로 돌아가겠어요. 
    세 사람이나 건네 줘서 퍽 피곤하시잖아요 에인젤 씨"
      "아니 조금도 사실 당신을 건네 주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수고를 아끼지 않은 겁니다"
      테스의 부드러운 몸은 에인젤의 가슴에 끌리듯 안겼다. 
    에인젤은 아름다운 꽃다발이라도 안은 듯이 여인을 안고 내를 건넜다
      "무겁죠?"
      "무겁다뇨. 당신이 입고 있는 모슬린처럼 가볍습니다"
    테스를 건네다 주자 에인젤은 물에 젖은 길을 저벅거리며 혼자 돌아갔다.
    네 처녀들이 다시 교회로 향하는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한 처녀가 큰 소리로 말했다
      "틀렸어, 우린 이제 기권이야"
      "그게 무슨 말이니?"
      테스가 물었다.
      "그분은 널 제일 좋아해 그분이 널 안고 건널 때 우린 확실히 알았어 
    만일 네가 조금이라도 유혹만 했다면 그분은 네게 키스를 했을 거야"
      "얘가, 별말을 다 하네"
      테스는 이렇게 부정하면서도 얼굴이 화끈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