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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나면... 반드시, 영혼육의 변화가 찾아옵니다.

Joyfule 2018. 10. 3. 02:18

  


거듭나면... 반드시, 영혼육의 변화가 찾아옵니다.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수십 년을 교회에 다니며 설교 말씀을 들었을지라도...

성경을 수백 번 반복해서 읽었을지라도... 

혹은... 교회에서 목사, 장로, 권사, 집사일지라도...

아무리 교회 안에서 충성봉사로 시간을 많이 할애할지라도... 

담임 목사님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며 우격다짐으로 강조해도...

자연스럽게 내 평소의 삶에서 변화가 없이 늘 같은 상태이거나,

여느 일반 이방인들과 구분이 안 되는 육의 속성이 계속 나타나는데도 애통하게 마음을 찢으며

눈물로 회개할 맘이 없다면, 분명히 나는 거듭난 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거듭나 구원받을만한 자는 반드시 거듭난 자다운 합당한 삶을 살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수많은 교인분들이 자신이 거듭났는지 아닌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듭나면 도대체 어떤 변화의 근거가 있는지 모르는 분들이 태반입니다.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거듭난 자의 특유의 겸손함 때문에 나는 죄인이고 부족한 자라 하며 아직 멀었다고 가슴을 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혹은, 분명 거듭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거듭났다고 자부하는 경우도 매우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지식과 이론만 가득하여 영적인 믿음이 아닌 관념적인 혼의 인식을 거듭남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거듭났는지 아닌지 분명히 분별해야 합니다.

거듭났는지 아닌지 아는 방법을 예수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태복음 7장 16-18절) 


위 말씀은 거짓 선지자를 열매로 분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거짓 선지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일반 교인들에게도 거듭났는지 아닌지를 가름하는 말씀입니다.

위 말씀을 보면 열매라는 말씀이 여기저기 등장합니다.

열매로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내게 거듭남의 흔적을 증명하는 열매가 없으면 분명 나는 거듭난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천을 아름다운 색상의 염료에 담그면 반드시 염색되어 외적으로 보기에도 아름다운 천으로 바뀝니다. 

어떻게 아름다운 천임을 알게 되었습니까...?

아름다운 칼라로 염색된 분명한 사실(열매)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면, 반드시 필연적으로 성령의 열매가 사람을 통해 증거됩니다. 

성령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거룩한 주님의 성품을 말합니다. 

내가 죄를 미워하여 나의 악한 육의 속성으로부터 완전히 돌아서겠다는 단호한 결심이 섰을 때

주님은 애통한 마음을 당사자에게 은혜로 베풀어주시는데 이때, 마음을 찢는 간절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후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께서 내게 임하여 영접되는 순간입니다. 

즉,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접붙임을 당하는 순간입니다. 


접붙임은 영적인 원리이지만, 주님은 과학적인 원리에서도 접붙임 당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흔적으로 남기셨습니다. 

같은 과에 속하는 나무와 가지를 접붙이면 땅에 뿌리를 내린 원래 나무의 속성이 접붙임된 가지에 그대로 나타나게 됩니다.

예를 들면...

큰 복숭아 과실이 열리는 나무에 보잘것없는 개복숭아 가지를 접붙이면 그 가지에서 개복숭아의 원래 속성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큰 복숭아가 당연하듯 열립니다.

일반 포도나무에 보잘것없는 머루나무 가지를 접붙이면 머루나무의 원래 속성은 사라지고 맛있고 큰 포도가 당연하듯  

그 가지에 열리게 됩니다. 

이렇듯 같은 과에 속하는 나무끼리 접붙이면 원래 나무의 속성이 접붙임한 가지에 그대로 흘러들어 그 속성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여... 사람이 주님께 접붙임(성령으로 거듭남)을 당하면 원래 가지고 있던 육의 속성은 성령님의 거룩한 속성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소멸되어가며 거듭난 사람을 통해 주님의 속성(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이 매우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통해 평소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 사람이 거듭난 자인지 아닌지 열매로 알라고 하신 이유입니다. 


나는 믿노라, 구원을 확신하노라 하면서 거룩한 성령의 열매가 평상시에 나오지 않고 계속하여

육의 속성에서 비롯된 열매가 나온다면 나는 거듭난 자가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는 내가 억지로 거듭난 척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란 말이 있듯, 주머니 속의 송곳은 반드시 주머니를 뚫고 밖으로 그 원래 모습을 보인다는 뜻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거듭남의 송곳이 되어 주머니를 뚫고 나오며, 육의 속성이 가득한 사람은 육의 송곳이 되어 반드시 주머니를 뚫고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열매로 알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원리입니다. 


거듭남의 이런 원리는 반드시 성령께서 나에게 오셔야 지속해서 계속 나타나기에 내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내 자유의지로 죄를 지으려고 해도 성령님에 의하여 굳은 마음(육의 속성)이 사라진 나의 양심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우연한 죄를 범해도 바로 회개하는 마음이 들어서고, 의도적으로 악한 마음을 먹고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이를 증거하듯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육의 속성)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주님의 속성)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여) 

너희로 내 율례(성령의 거룩한 열매)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에스겔 36장 26-27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이런 모습이 되면 어떤 현상이 찾아오게 될까요... 

누가 나에게 욕을 해도 같이 맞서지 않고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누가 나를 때려도 분노하지 않고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누가 나를 서운하게 해도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누가 나를 모함해도 원망치 않고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원수를 불쌍히 여겨 그의 심령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전에 보이지 않던 내 이웃의 어려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함이 너무 간절하여 매일 주님만 생각합니다.

의도하지 않은 죄를 지어도 양심의 찔림에 견딜 수 없어서 회개하지 아니하고는 못 버팁니다.

얼굴에는 늘 감사의 미소가 있습니다. 

다만... 믿음 성장의 정도에 따라 사람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육의 굳은 속성이 제하여지기에 성령의 사람다운 모습이 늘 함께함을 부인할 수 없게 됩니다.  


거듭났다는 것은 내가 주인이 되어 나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 생각, 내 자아가 나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거듭나서 내 육의 속성은 죽었는데 어찌 내가 나로 살겠습니까...

내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나를 잡고 계시기에 나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사는 것입니다.

거룩한 그리스도의 속성이 나에게 흘러들었으므로 당연히 그리스도의 모습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치, 큰 복숭아나무에 개복숭아 가지를 접붙이면 큰 복숭아나무의 속성이 개복숭아나무 가지에 흘러들어

개복숭아의 속성을 몰아내고 큰 복숭아 열매가 열리듯,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의 속성이 나에게 흘러들었기에

나의 육적 속성은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속성인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게 열리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된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회개도 거듭남도 없이 쉽게 구원을 확신하지 마십시오. 

사도바울이 기록한 '구원을 확신하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쉽게 나에게 적용했다가는 영원히 후회하는 날이 오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구원을 확신하라'고 한 근거는 초대교회 당시, 간절히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경우가 많았기에 거듭난 성도들을 상대로 구원을 잃지 않도록 구원을 확신하며 천국을 침노하라는 뜻을

천명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거듭남도 없고, 거듭남의 증거인 열매도 없는데 함부로 구원을 확신했다가는 정말 이를 갈며 후회하게 됩니다.


가르치는 목사님들도 교인들이 진정으로 회개했는지 거듭났는지 영의 상태도 알지 못하는데  

너무나도 편하게... 구원을 확신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성경에도 없는 말을 쉽게 선포하면 안 됩니다. 

이 시대는, 이천 년 전 초대교회 성도들의 막강한 영성이 아님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 당시는 타오르는 엄청난 영성으로 인하여 마귀에게 엄청난 핍박을 받은 시기였지만,

지금은 매우 타락한 영성으로 인하여 이방인에게 비난을 받으며 마구 밟히는 시대입니다.  

그때와 지금을 동일시하여 너무나도 쉽게 구원을 확신하게 하고 안심시켰다가 그 교인이 진짜 거듭남이 없어 구원받지 못한다면 그 책임을 어찌 다 감당하려고 하십니까...

정말 거듭난 목사님이라면 함부로 쉽게 구원을 확신시키지 않고, 진정으로 거듭나게 하려는 가르침으로 올인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 후, 사도들에 의하여 쓰여진 모든 서신서의 성경은 진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상대로 쓰여진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시대는 거듭난 성도가 매우 많았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 시대와 그 시대를 동일시하여 적용하면 절대 안 됩니다. 


믿음은... 먼저 회개하고 거듭나야 역사의 시작이 됩니다. 

거듭남 없는 믿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본질은 거듭남이고 거듭나야 모든 영적인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거듭나야 내가 영의 뜨거운 눈물로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내 이웃 또한 긍휼히 여기며 사랑하게 되고,  

내가 나로 사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큰 그림으로 살펴보면 겉 사람을 제하고 속사람이 변하는 거듭남에 모든 말씀이 맞춰져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주님과 인류의 단절된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것... 그게 거듭남입니다.

성경에 여러 번 같은 의미로 반복되는 말씀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1장 3절)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예레미아 4장 1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장 17절)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아모스 4장 6-11절 계속 반복되는 말씀)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살아 숨쉴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사야 55장 6-7절)

(주님을)"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주님을)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주님께)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누가복음 11장 9절)


너희는 속히 나에게 돌아오라는 그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거듭나라는 말씀입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주겠다...!!!

이 역시, 돌아와 주님과 우리의 원래 관계를 회복하자는 예수님의 애타는 요구이자 간청입니다.   

육신의 죄로부터 단호히 돌아서길 결심하고 주님께 돌아오려고 한다면 주님께서 회복시키겠다는 메시지가 성경의 전부입니다. 

그런 메시지를 여러 가지 표현으로 기록한 것이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애타는 말씀입니다.


이제... 때가 많지 않습니다.

믿음의 모양만 있는 것에서 탈피하여 진정한 거듭난 믿음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빨리 주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열매의 증거가 나타나는 진짜 거듭난 사람은 더욱 정진하여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이며,

성경에서 증거하는 거듭남의 열매가 없는 사람들은 육의 모습으로부터 단호히 돌아서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결단이 없는 자는 주님께서도 어찌할 수가 없으십니다.

이 글에 다 기록할 수는 없으나 결단하라는 표현의 주님 말씀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영적인 결단이 있어야 주님께서 만지시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의 근거(성령의 열매)도 없이...

자신은 이미 구원이 확정된 것으로 착각하여 내가 뭘 하든 주님이 다 알아서 구원하시겠지 하면서

태만하게 손가락만 빨며 육에 잡혀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다가는 누구든지 꼭 거쳐야 하는 그날이 되었을 때

상상할 수 없는 주님의 무서운 공의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죄로 물든 육의 속성으로부터 돌아서겠다는 단호한 결단을 하루 이틀 계속 미루지 마십시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람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무능한 존재입니다.

지금 당장 주님께서 오실 수도 있고, 불시에 병이나 사고로 인하여 개인의 종말이 올 수도 있습니다.

신앙은 항상 지금이 중요합니다.

내일 어떻게 해봐야지 하는 신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서 단절된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십시오.

지금, 이 시각에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단호한 결단만을 학수고대 바라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에스겔 33장 11절)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요엘 2장 12-1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