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나의 기도가 분향단과 같이 되게 하소서

Joyfule 2022. 11. 28. 01:36





   나의 기도가 분향단과 같이 되게 하소서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오시옵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시141:1-2절)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며 처절한 기도의 사람입니다. 또한 성령에 감동이 되는 비밀을 터득한 사람입니다. 아니면 어찌 주를 불러 자신에게 오기를 간구할 수 있겠습니까? 새 계명을 받아 요한복음 14-16장 속에 있는 구원의 복을 아는 그리스도인과 동급입니다. 율법은 하라 하지마라이지만 새 계명은 가슴에 안고 꼭 지키는 겁니다(요14:21) 그러면 주님이 나타나십니다(coming) 독생자 그리스도는 항상 우리에게 오고 또 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영접하고 또 영접합니다. 그래서 구원은 세상 교육방법과 같이 내가 스스로 성취(achieving)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주님을 받아들이는 겁니다(receiving) 세상은 하나님 없이 조직된 곳이기 때문에 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만들어 갑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인간답게 살게 하는 교육이 필요한 곳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답게 사는 교육을 시키는 곳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는 비밀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하물며 불교의 염불(念佛)이란 말도 인간이 아니기를 염원하는 기도이지요. 불(佛)이란 말이 사람에 아닐 불이 붙어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인사가 성불하세요 하는 겁니다. 사람 같이 살지 말고 부처 같이 살고 싶은 거죠. 그들이 그 길은 아련해서 모르지만 이 악하고 거짓되고 부패한 인간 세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염원을 표현하고는 있는 겁니다. 다윗이나 우리나 이 세상에서 신음하는 건 똑 같습니다. 다만 다윗은 성령 안에서 주님과 교통을 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교통하는 것을 믿는 우리의 신앙고백이 바로 그겁니다. 거기에 주님의 나타나심이 있고 하나님의 집의 아름다움과 평강과 기쁨이 있습니다. 죄 사함이 있고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몸이 새롭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립니다. 세상이 주는 인간적인 요소가 아니라 순전히 하늘의 신령한 복입니다. 문제는 세상과 세상의 있는 것들과 우리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짝짜꿍을 이루어 입으로는 하나님과 함께 한다고는 하지만 늘 불편한 동거를 하는 겁니다. 많은 고난과 연단을 통해 오직 주님만 사모하고 바라는 자리로 돌아오긴 하지만 그 고난의 기간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받은 자로서 다윗처럼 기도를 위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성소의 분향단의 향이 꺼지지 않듯 쉬지 않고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살전5:17) 기도하려고 애 쓰는 것이 아니라 쉬지 말고 주의 이름을 호소하는 체질이 되어야 합니다. 곧 기도하는 성향이죠. 기도가 노동이 아니라 안식이며 주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이 짐이 아니라 힘이 되며 주의 십자가를 내가 지는 것이 아니라 그 십자가를 질 때에 성령이 역사하므로 십자가가 나를 지고 가는 구원의 비밀을 터득하는 겁니다. 성소 안에서 금등대의 불빛에 떡상이 보이고 향단이 보이고 휘장이 보이듯 성령 안에서 주님을 먹고 항상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기도와 찬양을 향과 같이 드리므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길이 환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