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낡아지는 겉사람에 낙심하지 말라

Joyfule 2022. 11. 24. 04:34





    낡아지는 겉사람에 낙심하지 말라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4:16절)


 사람들이 죽음이 최고의 축복이라고는 말하지만 그게 말같이 쉽지 않습니다. 기독교 안에서도 죽음의 신학이라는 말로 죽음을 준비하라는 운동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음만 단단히 먹는다고 죽음을 이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자연은 피고 지는 원리를 당연히 받아들이지만 죄 덩어리인 육신을 가진 인간은 죽음이란 축복이 아니라 공포의 대상입니다. 근간에 들어 암에 대한 연명치료를 마다하거나 산소 호흡기를 거부하고 떠난 분들의 죽음에 대한 위대한 승리의 뉴스를 듣습니다. 그건 죽음 다음의 세계를 기대하고 준비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항상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영의 역사를 체험하며 살아야 죽음 이후를 기대하게 됩니다.


 현재적인 믿음은 몸은 죄로 인해 죽은 것(확정)이지만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계속) 것임을 확신해야 합니다(롬8:10) 그래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신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역사하시는 부활과 생명의 영이 우리 죽을 몸을 지금도 살리시고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살게 하십니다(롬8:11) 따라서 그리스도의 영을 모신 믿음의 과거(롬8:9)와 주의 영을 모시고 그의 의로 말미암아 영으로 사는 믿음의 현재(롬8:10)와 그 생명의 역사가 지금부터 영원히 계속되는 믿음의 미래(롬8:11)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러 인해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져 갑니다. 아니면 죽음이 두려운 공포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시간과 물질로 떠나가는 겉사람에 투자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사망이란 미사일로 으르렁거리는 마귀의 놀이개가 되는 거죠.


 근데 예수의 부활만 주장하면 아담 안에 죽어서 죄와 사망의 종이 되었던 자신은 언제 다시 살아나는 겁니까? 복음의 광채로 인한 하나님의 형상(고후4:4)은 언제 우리 속에 임하는 겁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가 바깥에 계시면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우리 마음속에 언제 비치는 겁니까?(고후4:6) 질그릇인 우리 몸 속에 담긴 보배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능력이 언제 우리에게 나타나는 겁니까?(고후4:7) 할렐루야 예수 부활하셨네 하고 역사적인 예수님의 부활만 일회성 행사로 치르는 교회들은 이 질문에 반드시 대답을 해야 합니다. 아니면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해 말한 것처럼 버림받은 자들이 됩니다(고후13:5) 마르다와 마리아처럼 마지막 날의 부활만 믿고 지금 당장 죽은 그의 오라비가 살아나는 부활과 생명이신 주님을 믿지 못하면 안 됩니다(요11:17-44)


입에 발린 지성적인 신앙고백은 잘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11:27) 장차 올 부활은 잘도 믿는데 현재 부활과 생명이신 주 예수그리스도는 할 일이 없어 동네 어귀에 그대로 서 계십니다(요11:30) 지금 기독교의 상황이 이렇지 않을까요?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바깥에서 노크만 하시는 것이 바로 말세교회의 유형입니다. 주님과 더불어 먹음이 없기에 보좌로 올라가는 힘을 얻지 못합니다(계3:20-21) 자신을 주의 십자가에 내어 주고 주의 생명이 몸과 육체에 꿈틀거리며 나타나는 체험을 하지 못합니다(고후4:10-11) 그 몸에 주의 생명에너지의 파동이 없습니다. 그로 인해 영생에 대한 주관적인 체험이 허약한 신앙체질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은 찰나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후4:19)고 외치지만 육신을 공격하는 사망의 화살에 꼬꾸라져 흙덩어리인 겉사람을 애지중지합니다. 이런 연약은 저와 여러분이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의 목숨을 대신하여 주의 생명이 나의 몸에 나타나게 하는 십자가의 도를 터득하면 죽음이란 우리의 겉사람인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늘의 영원한 집으로 갈아입는 것임을 점진적으로 알게 됩니다(고후5:1) 육신의 장막을 입고 연약의 짐을 벗고 싶어 탄식하지만 우리의 죽을 몸이 그리스도의 생명에 삼켜지는 환희의 죽음이 곧 다가옵니다(고후5:4) 제가 두어 번 경험해 봤는데 그 길은 흡사 광채가 나는 황금동굴과 같았습니다. 질병의 고통과 우수사려가 완전히 사라진 무중력의 환희 그 자체였습니다. 그게 바로 죽음이더라고요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