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고난 받은 후의 그리스도의 영광을 따라가라

Joyfule 2022. 11. 25. 06:08





    고난 받은 후의 그리스도의 영광을 따라가라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24:25-27절)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기는 쉽습니다. 구약의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설명을 자꾸 들으면 실감이 나고 그 때의 하나님이 지금도 역사하심이 서서히 믿어집니다. 말씀이 뇌를 채우기 때문입니다. 이를 세뇌라고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만 말하자면 그런 셈이죠. 그러나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 곧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따라와서 예수가 자신의 구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 것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건 계시를 받은 사람이 말씀을 설명해 줘야 하고 성령이 역사하셔야만 믿어지게 됩니다(고전12:3) 예수의 행적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과 하늘에 오르셨다가 다시 오실 것까지도 믿지만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육체 가운데 임하신 것을 믿지 못하면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이 없습니다(요1:14)


 부활신앙이란 예수의 부활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부활을 믿는 겁니다. 장차부활은 그 때가 다가오든지 우리가 가든지 자동으로 됩니다. 따라서 현재천국이 없으면 장래천국도 없고 현재부활이 없으면 장차부활도 없는 겁니다. 씨가 뿌려져야 형체가 있는 것이지 씨가 없는데 어찌 형체가 나타나겠습니다. 영광은 형체에 따라 다릅니다. 새나 물고기의 형체가 있고 짐승과 사람의 형체가 있습니다만 영광이 다 다릅니다. 요즘은 개가 사람보다 귀한 대접을 받는 개 같은 광경을 봅니다만 그건 인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그 영광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기현상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이 되지 못하면 영광이라 여길 우상을 찾죠. 왜 기독교가 세상에 허우적거리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주의 십자가의 죽으심도 목도하고 빈 무덤도 확인한 두 제자가 낙심을 한 채 슬픔을 안고 엠마오로 내려갑니다.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무너져 하늘에 내려앉은 것 같았을 겁니다. 영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에게 부활체이신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말씀을 자세히 설명하여 자신의 정체를 밝히십니다. 그러나 영광이 서로 다르므로 그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주님이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비로소 그리스도이신 줄 알아봅니다. 그 순간 부활체이신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않습니다(눅24:30-31) 그들의 간증 속에 주님의 소재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는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눅24:33) 지금도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힘을 얻어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느냐 세상으로 내려가느냐 하는 것은 부활의 주님을 우리 속에 뜨겁게 모시고 있느냐 아니냐 하는 차입니다. 바로 부활의 그리스도의 영광을 지니고 있느냐 하는 이야깁니다. 두 제자들은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증거합니다(눅24:35) 우리가 성찬을 기념하는 것은 육신의 예수의 몸을 떼어 먹는 것이 아니라 죽으시고 다시 살아 성령을 통해 온 세상의 택한 자들의 심령에 임하신 부활의 주님의 몸을 떼는 겁니다. 그로 인해 주의 부활과 생명이 우리 속에 역사하시고 그 영광의 빛을 보는 겁니다. 믿고 세례(침례)로 주님의 사활의 십자가를 좇아 죄 사함을 받고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는 것이 신앙의 결정적인 요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