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세계문학

무라카미 하루키 : 침 묵7

Joyfule 2010. 4. 6. 13:09
 
 무라카미 하루키 : 침  묵7   
이대로 아오키 같은 인간한테 질질 끌려 다닐 수는 없다는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나는 그런 눈으로 아오키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꽤 오랫동안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아오키 역시 눈길을 돌리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겠죠. 
전철이 다음역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어느쪽도 얼굴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끝내 아오키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주 미미한 떨림이었지만, 나는 분명하게 포착할 수 있었죠. 
복싱을 하다 보면 상대방의 눈의 움직임에 민감해지거든요.
다리가 꼼짝하지 않는 복서의 눈 말입니다. 
스스로는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죠. 
자기자신은 움직이고 있다고 여기고 있어요. 
그런데 다리는 멈추어 있습니다. 
다리의 움직임이 멈추면 어깨도 자연히 매끄러운 움직임을 잃습니다. 
그렇게 되면 펀치에 힘이 없어지죠. 그런 눈이었습니다. 
왠지 좀 이상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 원인을 본인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 순간을 경계로 나는 재기하였습니다. 
밤에도 푹 잘 수 있었고, 
식사도 거르지 않고 체육관에도 빠지지 않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질수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단순히 아오키에게 이긴다든가, 그런게 아니었습니다. 
인생 그 자체에 질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이 경멸하고 모욕스럽게 느끼는 것에 간단히 짓뭉개질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나머지 다섯 달을 견뎠습니다. 
아무와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다. 라고 스스로를 자위하였습니다. 
매일 가슴을 쫙 펴고 학교에 가서 가슴을 쫙 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큐슈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큐슈로 가면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과는 
얼굴을 마주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사와 씨는 거기까지 얘기하고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내게 커피를 한 잔 더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사양하였다. 
벌써 세 잔이나 커피를 마셨던 것이다. 
"그렇게 강렬한 경험을 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변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도 있고, 나쁜 방향으로 변할 수 도 있죠. 
좋은 방향이라면, 나는 그일로 굉장히 참을성이 강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 반년 동안 내가 당한 고난에 비하면 
그 후의 경험한 고난따윈 고난 축에도 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절에 비하면, 하고 생각하면 대개의 어려움은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상처나 고통같은 것에 대해서도, 
보통 사람 이상으로 민감해졌습니다. 
이런 것들은 플러스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 플러스적 특질을 얻음으로 해서 나는 
그후 진짜 좋은 친구를 몇 명 사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이너스적인 요소도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인간이란 것을 전혀 신용할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을 불신하는, 그런게 아닙니다. 
나는 아내도 있고 아이도 있습니다. 
우리는 한 가정을 이루고 서로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일은 신뢰감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 금은 이렇게 평온무사하게 생활하고 있지만,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만약 무언가 지독한 악의를 품은 것이 찾아와 그 평화를 뿌리째 뽑아버린다면,
설사 자신이 행복한 가정과 좋은 친구들로 둘러싸여 있다 해도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하는 말을 혹 은 당신이 하는 말을, 
누구 하나 믿어주지 않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런 일은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법이죠.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죠.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일은 여섯 달 만에 그럭저럭 끝났습니다만 
이 다음에 그런일이 다시 생긴다면, 
그것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자신이 그것에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을지, 전혀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때로 정말 두려워집니다. 
밤중에 그런 꿈을 꾸고 놀라 벌떡 일어나는 일도 있습니다.
아니 그런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때 나는 아내를 깨웁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매달려 웁니다. 
한 시간 정도 운적도 있습니다. 
너무 두렵고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야기를 멈추고 창 밖 구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구름은 아까부터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관제탑도 비행기도 운송차량도 트랩도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도, 
그런 깊은 구름의 그림자에 모든 색을 잃고 있었다. 
"내가 무서워하는 것은 아오키 같은 인간이 아닙니다. 
아오키 같은 인간은 어디에나 흔히 있고, 그 점에 대해서는 이미 포기했습니다. 
그런 인간을 보면,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관계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피하는거죠. 피하는 도리밖에 없어요.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그런 인간은 금방 알아볼 수가 있어요. 
나는 아오키에 대해서는 나름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기회가 올 때까지 잠자코 끈질기게 기다리는 능력, 
기회를 확실하게 포착하는 능력, 
사람의 마음을 실로 교묘하게 장악하고 선동하는 능력 -
모든 사람들이 그런 능력을 갖고 있는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구역질이 올라올 만큼 싫어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능력 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내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아오키 같은 인간이 하는 말을
비판없이 받아 들이고 그대로 믿어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스스로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말주변이 좋고 받아들이기 쉬운 타인의 의견에 좌지우지되면서 
집단으로 행동하는 인간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떤 잘못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손톱만큼도 품지 않습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무의미하게 또 결정적으로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하는 인간들입니다. 
그들은 그런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정말 무서운것은 그런 족속들입니다. 
나는 한밤중에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꿈꿉니다. 
꿈속에는 침묵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꿈 속에 등장하는 인간들에게는 얼굴이 없습니다. 
차가운 물처럼 침묵이 모든것에 푹 배어들어 있을 뿐입니다. 
침묵 속에 모든것이 흐물흐물 녹아들어 있습니다. 
내가 그런 상황에 녹아들면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오사와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야기가 이어지기를 기다렸지만, 얘기는 거기서 끝났다. 
오사와 는 마주잡은 두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채 그저 침묵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 시간은 이르지만, 맥주라도 한잔 하지 않으렵니까?" 
잠시 후에 그가 그렇게 말했다. 
그러죠. 라고 나는 말했다. 정말 맥주라도 마시고 싶은 기분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