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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 上.

Joyfule 2010. 4. 8. 09:42

 무라카미 하루키 -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 上.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
이것은 실화이며, 동시에 우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1960년대 우리들의 포크로어(민간전승)이기도 하다. 
나는 1949년에 태어났다. 1961년에 중학교에 들어갔고, 1967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예의 좌충우돌 소동 속에서 스무 살을 맞이하였다. 
우리는 말 그대로 69년대의 아이들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한평생에서 가장 상청 입기 쉼고,가장 미숙하고, 
그런 연유로 가장 중요한 시기에,1960년대란 터프하고 와일드한 공기를 듬뿍 마시며,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숙명적으로 그에 취해 버렸던 것이다.
도어즈에서 비틀즈, 밥 딜런까지, BGM도 빈틈없이 갖추어져 있었다.
1960년대란 시대에는 과연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지금 떠올료 보아도 그렇고, 그 당시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시대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뭐 그렇다고 회고적인 기분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자신이 자라난 시대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다(대체 어디에 사는 누구를 위하여, 
어떤 한 시대를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냐?). 
나는 다만 사실을 사실로써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거기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분명히 있었다. 
하기야--내 생각에--거기서 있었던 것 자체는 대단히 진귀한 것도 아니었다. 
시대의 회전이 뿜어내는 열과, 거기에 내게 약속과, 어떤 종류의 무언가가 
어떤 종류의 시기에 자아내는 어떤 종류의 한정된 찬란함,
그리고 망원경을 거꾸로 보고 있는 듯한 숙명적인 답답함, 영웅과 악한, 도취와 환멸, 
순교와 전신, 총론과 각론, 침묵과, 웅변, 그리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기다리기, 
그 밖의 등등, 등등.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그런 것들은 빠짐없이 있었고, 지금도 분명 있다. 
하지만 우리들 시대(란 과장된 표현을 용서해주길 바란다)에는,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손에 꽉 잡힐 듯 한 모양을 하고 존재했던 것이다. 
하나하나가 선반에 올려져 있었다. 
더구나, 지금처럼 무언가를 하나 손에 올려놓으면, 허울좋은 광고라든가 
도움이 되는 관련 정보라든가 할인 서비스 권이라든가 그레이드 업을 위한 옵션이라든가, 
그런 복잡한 것들이 줄줄이 따라오는 일은 없었다. 
두툼한 매뉴얼 북을 몇 권이고 덤으로 받는 일도 없었다
(예를 들면 이 책이 초급 취급 설명서이고, 그리고 이쪽이 중급이고, 이것이 
상급의 응용편이고, 그리고 이것이 초급 기종과 어떻게 연결하는가 하는 커넥션 설명서이고...)
우리들은 그저 단순히 무언가를 손에 들어,집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 
밤중에 가게에서 히요쿄(계란과자-역주)를 사는 것처럼, 아주 간단하고 쉬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런 방식이 통용될 수 있었던 마지막 시대이기도 했다. 
고도 자본주의 전사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거의 신품에 가까운 남성용 생식기를 지닌 우리들과, 
그 무렵 아직 소녀였던 그녀들과의, 우당탕탕 유쾌하고 애처로운 
성적 관계에 대하여.그것은 이 야기의 테마 중하나이다. 
우선 처녀성에 대하여(<처녀성>이란 글자의 느낌은 
내게 화창한 봄날의 오후의 드넓은 들만을 상상하게 한다. 어째서일까?) 
1960년대에는 처녀성이라고 하면,현재에 비해 여전히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 
내 감상으로 하자면--물론 앙케이트 조사를 하여 검사를 해 본 것도 아니니 
대충 말할 수밖에 없지만--우리들세대에 스무 살 전에 처녀성을 버린 여자는 
전체의 반 정도가 아니었던가 하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비율은 그랬다. 
즉 반정도 되는 여자들이 의식적으로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처녀성이란 것을 아직 존중하고 있었던 셈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우리들 세대의 여자들 대부분은(중간파라고 해도 좋을것이다) 
처녀였든 아니었든 결과적으로, 내심 어쩌면 좋을까 하고 
망설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새삼스레 처녀성이 소중한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않고, 
그렇다고 처녀성 따위 아무 의미도 없다. 어리석은 것이다. 
라고 단언할 수도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 다음은 요컨대 --사실 그대로 말하자면
 --따라서, 어떤 식으로도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나름으로 상당히 타당한 사고이며, 삶의 방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하여 비교적 차분한 매저리티인 그녀들을 가운데 두고 
리버럴과 컨서버트브가 존재했다. 섹스란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여자들로부터, 
결혼을 한다면 상대방은 처녀야만 한다고 말하는 작자도 있었다. 
어느 시대도 그렇지만,다양한 인간이 있고,다양한 가치관이 있다. 
하지만 1960년대에 근접하는 다른 연대와 달랐던 점은, 
이대로 시대를 잘만 운영해 가면 그런 서로 다른 가치관의 차이를 
어느 정도는 메울 수 있으리라고 우리들이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 피스.
이건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와 나는 고등학교 동창생이다. 
그에 대해 한 마디로 하자면, 그는 무엇이든 잘하는 학생이었다 
성적도 좋고, 운동도 잘하고, 리더십도 있었다. 
특별히 핸섬한 것은 아니지만, 사뭇 청결한 느낌의 깔끔한 얼굴이었다. 
언제나 당연한 일이듯 반장이니 하는 위원을 맡았다. 
목소리도 청명하여, 노래도 잘 불렀다. 
반에서 학급회의라도 있을 때면, 제일 마지막에 회의를 정리하는 발언을 하였다. 
물론 독창적인 의견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하지만 도대체 누가 학급회의에서 독창적인 의견을 추구한단 말인가. 
우리들이 그 회의에서 추구한 것은 뭐가 어찌되었든 빨리 대화를 끝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입을 열면, 과연 회의는 적당한 시간에 틀림없이 끝이 났다. 
그런 의미에서 보배 같은 남자였다고 말할 수도 있다. 
세상에는 독창적이지 않은 의견을 필요로 하는 때가 아주 많은 것이다.
--아니, 그런 경우가 훨씬 많은 법이다. 
그는 또 규율과 양심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남자이기도 하였다.
자습 시간에 장난을 치며 소란을 피우는 놈이 있으면, 온건하게 주의를 주었다. 
불평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때로 머리통을 목에서 떼내어 흔들어 보고 싶어졌다. 
어떤 소리가 날까, 하고. 하지만 여자 애들한테는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교실에서 그가 쓰윽 일어나 무슨 말을 하면, 
여자아이들은 모두 「우와, 그래」하는 식의 감탄스러운 눈으로 그를 보았다. 
알쏭달쏭한 수학 문제가 있으면, 그한테 물으러 간다.
나보다 스물 일곱 배는 인기가 있었다. 워 실제로 그론 남자애였다. 
공립학교에 다닌 분이라면,그런 타입의 남자애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떤 반에든 한 명쯤은 이런 학생이 있고, 
또 없어서는 반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장기간의 걸친 학교 교육을 통하여, 여러 가지 생활의 매뉴얼을 
자연스럽게 터득해 가는데. 싫든 좋든 간에, 공동체 안에서는. 이런 타입의 인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내가 거기에서 습득한 지혜이다. 
그러나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나는 이런 타입의 인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성격이 맞지 않는다. 나는 뭐랄까, 몹시 불완전하더라도, 
좀 더 존재감이 있는 인간을 좋아한다. 
그래서 일 년이나 같은 반에 있으면서도 친밀하게 지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서로 말을 한 적조차 거의 없었다. 
내가 그와 대화라 할 만한 얘기를 나눈것은,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일이다. 
우리는 같은 운전 교습소에 다니면서,거기에서 몇 번인가 얼굴이 마주쳐 얘기를 나누었다. 
시간을 기다리는 사이에 둘이 커피를 마셨다. 
운전 교습소란 정말 따분하기 짝이 없는 곳이라,
누구라도 좋으니 아는 사람이 있으면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진다. 농담이 아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하고 있지 않지만,딱히 나쁜 인상이 남아 있진 않다. 
신기하게도, 좋다든지 나쁘다든지 하는 인상이 없다(하기야 나는 
면허를 따기도 전에 지도 요원과 싸움을 하여 보기 좋게 도중에
 탈락하고 말았으므로, 사귀었다고 해봐야 실로 짧은 시간이었다)
그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그에게 여자 친구가 있었다는 것 정도이다. 
그녀는 다른 반 여자 애였는데, 교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미인이었다. 
미인이고,성적도 좋고,운동도 잘하고,리더십이 있고,학급회의에서는 
마지막을 장식하는 발언을 하였다.어떤 반이든 이런 여자애가 한 명쯤은 있는법이다. 
아무튼,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곤 했다. 
점심 시간에는 곧잘 교정의 구석에 나란히 앉아, 얘기를 하곤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종종 서로를 기다렸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같은 전철타고,다른 역에서 내렸다. 그는 축구부이고, 그녀는 ESS부였다
(지금도 ESS란 말이 존재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요컨대 영어 회화반이다). 
과외 활동이 끝나는 시간이 서로 만나지 않는 날에는 
먼저 끝난 쪽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며 기다렸다. 
그들은 틈만 있으면 같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언제나 얘기를 하고 있었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가, 하고 감탄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들은(이라 함은 나와 내가 사귀고 있었던 불완전한 친구들을 말한다) 
아무도 그들을 놀리거나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두 사람에게는 우리들의 상상력이 파고들 여지가 손톱만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두 사람은 당연한 무엇으로서 거기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미스터 클린과 미스 클린. 치약 광고 같은 것이다. 
우리들은 그들이 무엇을 하든 무슨 생각을 하든 그런 일에는 
털끝만큼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우리들의 관심을 자극하는 것은 훨씬 더 생명감이 있는 세계였다. 
정치와 섹스와 록과 마약과, 우리들은 약국에 가서 의기 양양하게 콘돔을 사고, 
한 손으로 브래지어를 푸는 방법을 배웠다. 
우리들은 BSD를 대신하는 효과가 있다는 말을 어디에서 주워듣고, 
바나나 가루를 만들어 그것을 파이프로 피웠다. 
대마인 듯한 풀을 찾아내서는,그것을 말려 종이에 말아 피웠다. 물론 효과는 없었다. 
그러나 효과가 없어도 좋았다. 그것은 일종의 축제이다. 
우리는 축제 그 자체에 흥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시기에 누가 미스터 클린과 미스 클린이란 클린 한 쌍에게 관심을 가질 것인가? 
물론 우리들은 무지하고 오만했다. 우리들은 인생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 현실 세계에는 미스터 클린도 미스 클린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환상이다. 
그런 것은 디즈니 랜드나 치약 광고 같은 세계에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품고 있었던 환상도, 그들이 품고 있었던 환상도, 
정도에 있어서는 그닥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이야기이다. 별 유쾌한 이야기도 아니고, 교훈 비슷한 것도 없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이야기이며,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즉 포크로어인 것이다. 
이것은 그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그것도 포도주 잔을 기울이면 잡다한 세상 이야기를 하던 끝에 불쑥 튀어나온 이야기다. 
그러니까 엄밀한 의미에서는 실화라고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흘려들어 잊어버린 부분도 있고, 세세한 부분은 적당히 나의 상상을 섞어 쓰고 있다. 
그리고 실재 인물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하지만 이야기의 줄거리에는 
조금도 지장이 없을 정도로) 사실을 변조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도 거의 이대로였으리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이야기의 세부는 잊어버렸지만, 
그의 얘기하는 톤만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문장화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의 톤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 톤만 확실하게 포착하고 있으면, 그이야기는 진실한 이야기가 된다. 
사실은 얼마간 다를지 모르겠으나, 진정한 이야기가 된다. 
사실과 이야기와의 차이가 진실함을 고양시키는 경우마저 있다.
반대로 세상에는, 사실과 전부 맞아떨어져도 진실되지 않은 이야기기 있다. 
그런 이야기는 대체로 시시하고, 어떤 경우에는 위험하기도 하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들은 냄새로 알 수 잇다. 
또 한 가지 미리 말해두고 싶은 것은,그가 이야기의 화자로서는 이류였다는 점이다. 
어찌된 셈인지, 다른 부분에서는 넘치리만큼 듬?듬뿍 재능을 부여한 하나님도, 
이야기를 하는 능력만큼은 그에게 부여하지 않은 모양이다
(하기야 그런 목가적인 재능은 현실 생활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지만).
그래서 정직하게 말해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몇 번이나 하품을 할 뻔했다
(물론 하지는 않았다). 불필요한 탈선도 있었다.
 이야기가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사실을 기억해내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는 이야기의 편린을 손에 들고 찬찬히 바라보고는, 
틀림이 없다고 스스로 납득한 후에야 하나하나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그러나 앞뒤는 오락가락하였다. 
나는 소설가로서- -이야기의 전문가로서-그들 편린의 전후를 뒤바꾸고,
접착제로 주도 면밀하게 이어붙여 줄기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