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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 - 김만중.29 ㅡ 終

Joyfule 2010. 2. 10. 09:20

 

  

    사씨남정기 - 김만중.29  

 

 

황제가 그 공적을 들으시고 예부상서로 승탁하시니 유상서가 사은차 상경하게 되었다.

행차가 서주에 이르러서 창녀로 이름난 교녀를 염탐한즉

분명히 그곳 화류계에서 군림하는 존재로 있었다.

유상서는 수단 있는 매파와 상의하고 창녀 교칠랑을 시켜서 이러이러하라고 명하였다.

매파가 교녀를 찾아서,
"이번에 예부상서로 영전되어 상경하시는 대감께서

교낭자의 향명을 들으시고 소실을 맞아 총애코자 하시는데 낭자 의향이 어떤가?

상서벼슬은 거룩한 재상의 지위요,

그 시비의 말을 들은즉 정실부인은 신병으로 치가(治家)도 못한다니까

낭자가 그 대감 댁에 들어만 가면 정실부인과 다름이 없이

집안 실권을 휘두르며 마음대로 호강을 할 것이니 이런 좋은 혼담이 어디 있겠나.

여자의 부귀는 역시 교낭자 같은 미인의 차지야."

 

교녀가 매파의 달콤한 권고를 듣고 생각하되,
'내 비록 화류계 생활로 의식의 부족은 없지만 나이도 점점 먹어 가니

종신의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 기회에 상서 부인이 되어서 천한 신분을 면하자.'
하고 매파에게 잘 성사시켜 달라고 쾌락하였다.
"성례는 대감과 본부인이 보시는 데서 할 것이므로 준비가 되면

낭자를 데리고 갈 테니 화장을 곱게 하고 기다려요."
"알겠어요."
하고 교녀가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매파가 교녀의 승낙을 고하자 유상서는 인부를 갖추어서

교녀를 가마에 태워서 본 행차와 따로 서울로 데려가도록 분부하였다.

 

유상서는 서울에 이르러 황제 어전에 사은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친척을 모아 놓고 경축 잔치를 크게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사씨는 임씨를 불러서 두부인을 뵙게 하고,
"이 사람은 그전의 교녀와 같지 않은 현숙한 사람이니 고모님께서는 그릇 보지 마십시오."
하고 소개하자 두부인은 새사람이 비록 어진 사람이라도

나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담담한 태도를 취하였다.

이때 유상서는 빙글빙글 웃으며 두부인과 좌중 손님들에게,
"오늘 이 즐거운 잔치에 여흥이 없으면 심심할까 합니다.

노상에서 명창을 얻어 왔으니 한번 구경하시오."
하고 좌우에 명하여 창녀 교칠랑을 부르라 하였다.

 

이때 교자로 실려서 서울로 왔던 교녀가 사처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승명하고 상서 댁으로 데려오자 가마 안에서 내다보고 깜짝 놀라면서,
"이 집은 분명히 유한림 댁인데 왜 이리 가느냐?"
시녀가 시치미를 딱 떼고 하는 대답이,
"유한림은 귀양가시고 우리 대감께서 이 집을 사서 들어 계십니다."
교녀가 시녀의 말에 안심하고 또다시 가증한 교만한 생각을 일으켰다.
'나하고 이 집과는 인연이 깊구나. 마땅히 그 전에 정들었던 백자당에 거처하겠다.'


시비가 그렇게 옛꿈을 그리워하는 교녀를 인도하고 유상서와 사부인 앞으로 갔다.

교녀가 눈을 들어서 보니 좌우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전부 낯익은 유연수 문중의 일적이라 벼락을 맞은 듯이 낙담상혼하고 말았다.

교녀는 땅에 엎드려서 목숨만 살려 달라고 애걸하였다.

유상서가 큰 호통을 하며 꾸짖었다.
"네 죄를 아느냐!"
"제 죄를 어찌 모르겠습니까마는 관대히 용서하여 주십시오."
"네 죄는 일륜이니 음부는 들으라.

처음에 부인이 너를 경계하여 음탕한 풍류를 말라 함이 좋은 뜻이어늘

너는 도리어 참소하여 여우의 탈을 썼으니 그 죄 하나요,

요망된 무녀 십랑과 음모하여 해괴한 방법으로 장부를 혹하게 했으니 그 죄 둘이요,

음흉한 종년들과 동청과 간통하여 당을 이루고 악행을 하였으니 그 죄 셋이요,

스스로 저주하고 부인에게 미루었으니 그 죄 넷이요,

동청과 사통하여 가문을 더럽혔으니 그 죄 다섯이요,

옥지환을 도둑질하여 간인(奸人)을 주어 부인을 모해하였으니 그 죄 여섯이요,

제 손으로 자식을 죽이고 그 악을 부인에게 미루었으니 그 죄 일곱이요,

간부와 작하고 부인을 사지에 몰아넣었으니 그 죄 여덟이요,

아들을 강물에 던졌으니 그 죄 아홉이요,

겨우 부지하여 살아가는 나를 죽이려고 하였으니 그 죄 열이다.

너 같은 음부가 천지간의 음악한 대죄를 짓고 아직도 살고자 하느냐?"


교녀가 머리를 땅을 받으면서 울어대고,
"이것이 모두 제 죄이오나 자식을 해친 것은 설매가 한 일이요,

도적을 보낸 것과 엄승상에게 참소한 것은 동청이가 한 일입니다."
하고 사씨 부인을 향하여 울면서 호소하되,
"저는 실로 부인을 저버린 죄인이오나

오직 부인은 대자대비하신 은혜로 저의 잔명을 살려 주시기비오."
부인 사씨는 눈물을 머금고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하였다.
"네가 나를 해하려 한 것은 죽을 죄가 아니지만 대감께 죄진 너를 내가 어찌 구하겠느냐?"
유상서는 교녀의 비굴한 행색에 더욱 노하였다.

곧 시동에게 엄명하여 교녀의 가슴을 찢어 헤치고 심장을 꺼내라고 하였다.

 

이때 사씨 부인이 시동을 만류시키고,
"비록 죄가 중하나 대감을 모신 지 오랜 몸이니 시체는 완전하게 처치하십시오."
유상서는 부인의 권고에 감동하고 동편 언덕으로 끌어내다가 타살한 후에

시체를 그대로 버려서 까막까치의 밥이 되게 하라고 명하니

좌중의 모든 사람이 상쾌하게 여겼다.

유상서는 만고의 간부 교녀를 죽이고 상쾌하게 여겼으나

사씨 부인은 시녀 설매가 억울하게 참사된 것을 가엾이 여겨서 뼈를 찾아서 잘 묻어 주었다.

그리고 십랑을 잡아서 치죄(治罪)하려고 찾았으나

전년에 금령의 옥사에 연좌되어서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임씨가 유씨 문중에 들어온 지 십 년이 지나는 동안에

계속하여 삼형제를 낳았는데 모두 옥골선풍이요, 천금가사(千金佳士)였다.

장자의 이름은 웅(雄)이요,

차자의 이름은 준(俊)이요,

삼자의 이름은 란(爛)이라 하였는데

모두 부형을 닮아서 세상에서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황제는 유상서의 벼슬을 좌승상으로 승진하고 자주 불러서 만나시니,

유씨 가문의 영광이 비할 데 없었고

또 두춘관이 높은 벼슬에 이르니 그 명성의 웅성함이 천하에 으뜸이었다.
유승상 부부는 팔십여 세를 안양(安養)하고, 그 후대의 공자는 병부상서에 이르고

유웅은 이부상서를 하고

유준은 호부시랑을 하고

유란은 태상경을 하여 조정에 참열하였으니,

그 모친 임씨도 복록을 누려서 자부와 제손을 거느리고,

사씨 부인을 모시며 안락한 세월을 보냈다.

 

문필에 능달한 사씨 부인은 내훈 십 편과  열녀전 십 권을 지어서 세상에 전하고

자부들을 가르쳐서 선도를 행토록 권장하였다.
이러므로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앙화를 받는 법이니

후인을 징계함직 하나 사정이 기이하므로

대강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는 바이니 보시고 사람은 명심하소서.

희로애락을 지성으로 근고(謹告)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