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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 - 김만중.28

Joyfule 2010. 2. 9. 09:51

 

    사씨남정기 - 김만중.28  

 

 

사씨 부인은 임낭자의 재덕을 생각하고 유시랑에게 허락을 받은 후

사환을 그 연화촌에 보내고 얼마 지나 다시

시녀와 교부를 보내서 임낭자를 데려오게 하였다.

임낭자가 사부인을 만나려 생각하던 차에 가마로 데리러 왔으므로 감사히 여기고

얻어서 기르던 소년(인아)을 데리고 함께 사씨 부인을 만나 반기고

아이는 동생이라 하였기 때문에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씨 부인은 임낭자에게 유시랑의 둘째 부인이 되기를 권하였다.

임낭자는 이것이 꿈인가 의심하면서도 고모 묘혜 스님의 예언을 생각하고 감격하였다.

 

사씨 부인은 택일하여 친척을 초대하고 잔치를 베풀어 임씨를 성례시키니

그 용모가 아름다운 숙녀였으므로 유시랑이 심중으로 기뻐하고

사씨 부인에게 말하기를 내 그대에게 정이 덜할까 염려하노라 하니

부인은 미소만 보이고 대답하지 않았다.
하루는 인아의 그전 유모가 임씨 방으로 들어가서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요전에 시비의 말을 들으니 낭자의 남동생 도련님이

그 전에 제가 시중하던 우리 공자와 얼굴이 꼭같이 생겼다 하기에 한번 보러 왔나이다."
유모의 말을 의아스럽게 생각한 임씨가 유모에게 물었다.

"댁의 공자를 어디서 잃었던가?"
"북경 순천부에서 잃었습니다."
임씨가 생각하기를 북경이 천 리인데 어찌 남경 땅에서 잃은 공자를 얻었으랴 하고

의아하였으나 시녀에게 인아 소년을 불러오게 하였다.

유모가 본즉 어렸을 때 자기가 밤낮으로 안고 기른 인아가 틀림없었다.

반가운 생각으로 왈칵 끌어안으나 한편 의심을 가지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이 소년은 실로 내 모친이 낳은 친동생이 아니고

'모년 모월 모일'에 강가에 버려진 어린아이를 주워다가 길러서 의남매가 되었다네.

만일 얼굴이 댁이 기르던 공자와 같으면 혹 그런 연고 있는 소년인지도 모르겠네."


이때 소년이 먼저 유모를 알아보고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유모, 왜 나를 몰라보는거야?"
"앗, 도련님!"
유모가 이때 소년을 끌어안고 임씨에게,
"이것 보십시오.

이 댁의 도련님이 아니면 어찌 나를 알아보고 이렇게 반가워하겠습니까?"
"이 아이의 성명은 비록 모르나 전에 귀한 댁 아들로서 곱게 길렀던 것이 분명하고

남경으로 가던 뱃군이 어디서 주웠으나 가다가 우리집 근처에 버리고 간 것이니까,

유모가 잘 알아보고 대감 양위께 말씀드리도록 하게."


유모가 임씨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곧 사씨 부인에게 그 말을 전하자

부인이 황망히 임씨 방으로 달려와서 그 소년을 보고 반신반의하면서,
"너는 나를 알겠느냐?"
인아가 사씨 부인을 자세히 보다가 울음을 터뜨리고,
"어머니, 어머니는 저를 몰라보십니까?

어머님이 집을 떠나신 후에 소자가 매양 그립게 생각하였습니다.

어릴 때 일이라 제 기억이 아득하여 잘 모르나

여자가 저를 멀리 가다가 제가 잠든 사이에 강변 숲속에 두고 갔기 때문에

잠을 깬 뒤에 외롭고 무서워서 울 적에  큰 배를 타고 가던 사람이 데리고 가다가

또 어떤 집 울 밑에 놓고 갔습니다.

그때 그 집의 은모(恩母)가 거두어 길러 주어서 전보다 편하게 지내다가

이제 뜻밖에 여기 와서 어머님을 뵈오니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사씨 부인이 인아의 손을 잡고 대성통곡하며,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꿈이면 이대로 깨지 말아야겠다.

내 너를 다시 보지 못할까 하였더니

오늘날 집에 돌아온 것을 만나니 어찌 하늘의 도움이 아니겠느냐?"
하고 흐느껴 울다가 유시랑에게 인아를 찾은 사실을 고하자,

유시랑이 급히 달려와서 자초지종을 듣고서 임씨를 칭찬하면서 기뻐하였다.
"우리가 오늘 부자, 모자가 이처럼 만나서 즐기는 경사는 모두 그대의 공이니,

그 은덕을 어찌 잊겠는가. 금후로는 나의 가장 큰 슬픔이 없게 되었다."
"과분하신 말씀을 듣자와 황송하옵니다.

오늘날 부자 모자가 상봉하신 것은 모두 존문의 음덕이시지, 어찌 제 공이겠습니까.

사씨 부인의 성덕현심(聖德賢心)에 신명이 감동하신 영험입니다."
"음, 그것도 그렇고 그대 공도 또한 장하지 않은가?"


하고 온 집안이 이 경사를 축하하면서 인아의 모습을 보니

장부의 체격이 발월하고 그 준매함을 칭찬치 않은 사람이 없었다.

원근의 친척이 모두 모여서 치하하는 동시에

임씨에 대한 대우가 두터워지고 비복들도 착한 임씨를 존경으로 섬겼다.

그리고 사씨 부인이 임씨 대하기를 동기처럼 아끼고

임씨 또한 사씨 부인을 형님같이 극진히 섬겼으며

보통 처첩간의 투기 같은 감정은 추호도 없었다.


이 무렵에 교녀는 동청이 죽은 뒤에 냉진과 살다가

마침내 냉진이 역적의 도당을 꾸미다가 괴수로 잡혀 처형되자

도망가서 낙양 술집의 창기가 되어 낙양의 인사에게 웃음을 팔아

재물을 낚으면서 전신이 한림학사의 부인이라고 호언하였으므로

낙양에서 교녀의 교태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유시랑 댁의 사환이 마침 낙양에 왔다가

창녀 교씨의 유명한 평판을 듣고 술집에 가서 보니

분명히 본인이라 깜짝 놀라고 돌아와서 교녀의 소식을 전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유시랑은 부인 사씨에게,
"교녀를 잡지 못할까 걱정했더니 낙양청루에서 행색이 낭자하더니

내가 돌아갈 때에 잡아서 설치(雪恥)하겠소."
"그러세요. 그년을 잡아서 제 원한을 풀어야겠습니다."
관대한 부인 사씨도 교녀에 대한 철천지한은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사씨는 아들 인아를 만난 후로는 시름이 없었고

유시랑은 사사로운 고민이 없어서 모든 힘을 치민(治民)에 근면하매

모든 백성이 농업과 학업에 힘썼으므로

그의 일읍이 대치(大治)하여 태평성대를 구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