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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1): 불순종과 징계(1-2장)

Joyfule 2010. 10. 7. 09:54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45과)2

요나서(1): 불순종과 징계(1-2장)


요나서(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1. 불순종한 선지자(1장)
 

 1-1. 요나를 부르심과 불순종(1:1-3)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1),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2).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3)."

 

  하나님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셨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이교도성인 니느웨로 가서 극심한 죄악에 대한 설교를 하도록 지시하셨다. 이 명령은 선지자를 이방에 보낸 유일한 경우였다. (창10:11)에 처음으로 언급된 니느웨는 티그리스강 동편에 있는 앗수르 제국의 옛 수도였다. 니느웨는 산헤립에 의해 앗수르의 수도가 되었고, 주전 612년에 메대와 바사에 의해 멸망되었다. 고대 문헌에 의하면 사다리꼴 모양의 이 도시는 그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요나는 이 도시의 큰 죄와 부패에 대해 그 도시를 경고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사명을 받았다. 당시 니느웨에는 교만함(사 10:13)과 잔인함(나 3:1,10,19), 그리고 극도의 이기주의(습 2:15)가 팽배해 있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고 다시스로 도망을 쳤다. 선지자는 기계와 같은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거역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린 선지자는 요나 한 사람 뿐이었다. 니느웨는 팔레스틴의 동쪽에 있었고, 다시스는 서쪽에 있었다. 헬라의 역사가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다시시는 스페인 남쪽에 있는 따르트슈(Tartessus)였다고 한다. 최근의 성경 지도는 다시스를 스페인이나 사르디니아에 있는 페니키아인들의 제련소가 있었던 도시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다시스가 영국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

 

  그러면 왜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정반대편으로 도망을 쳤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학자드른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해 왔다. 어떤 학자는 요나가 니느웨의 회개를 예감했으며, 따라서 니느웨가 소생되면 자기 민족이 그들에 의해 멸망을 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햇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이방인의 회개로 인해 이스라엘이 가진 특권이 감소될 것을 두려워해서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요나의 자만과 고집 때문에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했다고도 말한다. 사실 요나는 여호와께서 이방인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을 기뻐할 수 없었다. 요나는 과거의 예언들을 통해서(호 9:3)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욘 4:2)을 보면 요나는 자신이 다시스로 도망친 이유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그는 니느웨 사람들이 자신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여 용서받을 것을 싫어해서 그 곳으로 가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요나는 하나님의 낯을 어떻게 피하려고 했는가? 그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무소부재하심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기 위해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려고 욥바항구로 갔다. 욥바는 지중해의 항구 도시로서 솔로문 시대부터 항구로 사용되었다. 후에 베드로는 바로 이 곳에서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성령의 환상을 보게 되었다. 이러한 일은 이방인 선교의 사명을 피하려고 욥바를 찾은 요나를 생각할 때에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2. 폭풍(1:4-10)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4).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5).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6).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7).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8)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9),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10)."

 

  비록 요나가 도망을 쳤지만, 하나님은 자연이나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주권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바다에 거센 바람과 폭풍을 보내셨다(문자대로는 "세게 던지셨다"). 하나님은 바람을 자신의 사자로 삼으셨던 것이다. 순종하지 않는 종을 찾아내어 그가 죄 중에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지중해의 폭풍에 익숙해 있던 선원들은 이것이 평소의 폭풍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했다. 아마도 대부분의 tsdnjs들은 여러 지방에서 모여든 페니키아인들로서 각기 다른 신을 섬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각기 자기가 믿는 신을 부르면서, 배를 가볍게 하려고 배에 실은 짐을 바다에 던지기 시작했다. 배 안에서 공포와 놀람, 그리고 부르짖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 요나는 마음이 편치 않아서 배의 구석진 곳으로 내려가서 잠이 들어 있었다. 죄악은 사람들을 불안하고 무감각하게 만든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선장은 배 밑에서 잠자는 요나를 발견하고 그에게 기도하라고 요구했다. 이교도가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기도하라고 한 것은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회교도들이 매일 5번씩 기도하는 것을 볼 때에 기도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믿는 신에게 기도하고, 선원들은 배를 안전하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사나워진 폭풍은 잠잠해질 줄을 몰랐다. 지중해의 항해철에는 거의 폭풍이 없었고(행 27:9), 선원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좀처럼 폭풍이 그치지 않게 되자 산원들은 이 일이 예사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누군가 배 안에 큰 죄를 지은 사람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들은 그 죄인이 누구인지 제비를 뽑기로 결정했으며, 그 결과 요나가 죄인으로 뽑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요나에게 이러한 재난이 일어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요나는 더 이상 사람들을 속일 수가 없었다. 요나는 자신이 히브리인이며,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자라고 말했다. '하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당시에 페니키아인들이 '하늘의 바알'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도전적인 선포였다. 요나가 여호와 하나님을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창조주로 소개한 것은, 폭풍이 일어난 상황 속에서 설득력 있는 말이었을 것이다. 무리들은 요나의 말을 듣고 크게 두려워하면서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했느냐?"고 말했다. 이 말은 질문이라기 보다는 놀라움에서 터져 나온 말이라고 할 수 있다.


 
1-3. 바다 속의 요나(1:11-16)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11)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12).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13).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까닭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14),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15).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16)."

 

  그 동안에도 바다의 폭풍은 점점 더 거칠어져 갔다. 선원들은 요나에게 바다는 잔잔케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선원들은 요나만이 그 해결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질문을 했을 것이다. 요나는 자기의 과오를 인정하고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대답했다. 요나는 이 폭풍이 자신의 거역으로 인해 왔기 때문에, 자신이 바다에 던져지면 바다가 잔잔해질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희생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선원들은 요나를 희생시키기를 원치 않았다. 그들은 열심히 노를 저어서 육지에 닿으려고 치선을 다했다. 그러나 바다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할 수 없이 선원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진 일에 대한 죄를 묻지 말아달라고 기도했다. 그들은 일종의 도박을 해야 했다. 그들 중에 아무도 요나를 바다에 던져서 폭풍이 잔잔해질 것이라고 믿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폭풍이 점점 더 심해지는 상황에서 다른 것을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지면서 그를 죽이는 피 값을 자신들에게 돌리지 말아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요나의 말대로 선원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지게 되자, 즉시 폭풍은 잠잠해지게 되었다. 그들은 바다가 잔잔해지는 것을 보고 요나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그 사건을 통해서 요나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바다를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인해 배에 싣고 있던 것 중에서 골라 여호와께 제물을 드렸다. 그리고 그들은 해안에 도착하게 되면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겟다고 서원을 했다. 유대인의 미드라쉬는 이 배의 선원들이 욥바로 귀환한후에 개종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본절만 가지고는 그들이 정말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이 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다.


 
1-4. 적용: 요나서 1장의 의미: 이스라엘의 전형인 요나

  요나서 1장에는 예언적인 말은 한 마디도 없지만, 이스라엘에 관한 예언으로 가득차 있다. 요나는 이스라엘의 상징이었다. 요나와 같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되었다. 그리고 요나처럼 이스라엘도 이방인 구원의 사명을 위해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요나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은 그 사명에 순종치 않았다. 요나가 이방인 중에 누워있던 것 같이, 이스라엘도 불순종을 인해 흩어지게 되었다. 요나가 이교도들 중에 있을 때에 이교도들이 여호와를 알게 되었듯이, 이스라엘에 열국 중에 흩어져 살고 있을 때에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들어간 것같이 이스라엘도 이방 민족에게 포로가 되어 징계를 받았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고 구원을 받은 것처럼 이스라엘도 이방에 살면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