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요한이 이 책을 기록한 목적이 무엇일까?

Joyfule 2022. 12. 8. 14:57





    요한이 이 책을 기록한 목적이 무엇일까?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0-31절)


하나님의 모든 신령한 복은 영생으로 말미암아 주어집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목적은 우리 죄를 대신하시기 위함이며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심은 그 부활과 생명으로 우리를 그 부활에 연합시켜 영원한 생명을 주기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우리의 개인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고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으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요1:12) 성령이 오셔서 이를 알게 하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주님과 영광 나라 계신 임금이신 주님을 우리 안에 나타내시는 진리의 성령에 의해 주님은 우리의 생명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소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명령이 영생입니다(요12:50)


이 명령은 엄중합니다. 주님도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하고 묻는 무리들에게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대답하십니다(요6:28-29)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생명을 얻는 것이며 상대적인 뜻은 우리의 성숙입니다. 그 생명의 성장은 먼저 될 수도 있고 나중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자녀들조차 선악과의 독성에 찌든 채로 자신의 목숨을 사용하여 엑셀레이트를 밟자 아니면 너무 지나치다 브레이크를 밟자 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있습니다. 육체와 정신력으로 사는 생명이 전부라면 이 땅에 있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부활을 강조한 바울은 만약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더욱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고전15:19)


부활과 생명이신 주님을 믿는 믿음이 미래에 다가올 어렴풋한 관념뿐이라면 이거야 말로 불쌍한 일입니다. 종교개혁시대의 교회의 모습인 사데 교회처럼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니 죽은 자로다(계3:1) 하는 판정을 받고야 말겠지요.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만물을 다스리시는 권세를 주신 목적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요17:2) 온갖 이적과 기사를 일으켜 너 봤지 난 하나님의 아들이야 날 믿어 그러면 죽은 다음에 영원히 살게 해 주마 이게 아니란 말입니다. 영생은 성령 안에서 아들 안과 아버지 안에 거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비밀입니다(요17:3, 요일2:24-25) 고린도교회는 은사나 표적은 풍성한데 영생이신 주님을 그들 안에 모시고 있지 않으므로 온전함에 이르지 못해 그들이 사랑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속에 배어들어 체화가 된 다음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부활이신 주님이 아담 안에서 죽었던 우리를 다시 살리시고 그 생명으로 영원히 살게 하시는 진리의 복음을 전심으로 붙잡으세요. 밖에 나타나는 현상에 눈을 팔지 말고 내 속에 들어오신 주님과 그 약속을 단단히 지키세요.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영생이신 주님이 우리 안에서 그 생명을 실제화하시는 참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면서 우리를 향해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고 명령합니다(요일5:20-21) 해 아래에 있는 목숨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살다가 땅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영원한 생명은 그 안에 거룩과 영광과 능력과 권능과 사랑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자신의 목숨을 부인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주의 생명이 우리 속에 역사하기를 간구하며 주의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