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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영의 성장을 위한 것이다.1.

Joyfule 2014. 9. 20. 09:01
 
인생은 영의 성장을 위한 것이다.1.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성장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어떻게 나아가는 것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은 곧 우리 인생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을 이해하게 될 때 우리의 삶,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되어 가는지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신앙은 은혜의 시기, 연단과 훈련의 시기, 열매와 성숙의 세 가지 시기로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인생이 초년기, 중년기, 노년기로 이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그 비슷한 과정을 거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살다가 모세의 인도를 따라 애굽을 떠나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성도의 영적 여정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 대해서 나중에 좀 더 자세하게 책으로 내겠지만, 
어느 세월에 책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느냐는 독자님들을 위해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은혜의 시기는 애굽의 시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직 애굽을 나오지 않고 애굽에 있는 상태, 
것을 영적으로는 은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굽은 육과 자아의 본성을 따라 사는 시기입니다. 
이 상태는 자연인이며 본능적인 가치관과 삶을 사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아직 동물의 몸을 벗지 못한 시기입니다.
따라서 이 시기는 아직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수 없는 상태이며 
무엇이 진리인가에 관심이 없고 그저 누가 내 편인가, 
누가 나를 사랑해주는가에만 관심을 가지는 시기입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며 편안한, 그러한 본능적인 삶을 가장 기뻐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때는 아직 말씀이 없습니다. 
말씀은 광야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때는 아직 말씀을 먹지 못합니다. 
기도를 하면 울 수도 있고 찬양을 통해서 감동을 받을 수도 있으며 
감동적인 예화를 들으면 가슴에 충격을 먹을 수도 있지만 
진리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면 다들 졸거나 잠을 잘 것입니다. 
아직 말씀을 받을 수 있는 영이 형성되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는 은혜의 시기이며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와 능력과 기적과 은총이 임하는 시기입니다. 
바로는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지만,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의 노예가 되어도, 채찍에 맞아도 싼 것입니다. 
왜냐하면 애굽은 원래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영역에 들어가 살면서 그들이 채찍에 맞고 고통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일방적으로 사랑하시고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푸십니다. 
바로의 압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권능을 행하십니다. 
많은 은사, 권능, 기적, 능력이 임하는 곳이 바로 이 애굽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있는 많은 신자들은 자기의 신앙이 깊다고 생각합니다. 
은사가 임하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기도의 응답이 신속하게 이루어지니까 자기들이 깊다고 생각합니다.
속생명파의 책들을 읽고 심취해서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술람미 여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십자가의 도에 대한 메시지를 조금 접하면 
기존의 모든 신앙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은혜를 전하는 메시지에 대해서 거짓선지자라고 공격을 하기도 합니다. 
주로 예레미야의 
[저희가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렘6:14,8:11)를 많이 인용합니다. 
신앙의 과정, 인생의 과정, 영성의 발달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한 두 가지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유치원에서 배우는 것이 있고 중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있고 
대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있고 사회와 인생의 경험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나중에 성장한 후의 관점에서 보면 유치원에서 배우는 것은 다 거짓이겠습니까.. 
한 때는 사탕이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고 여길 때도 있습니다.
그것을 거짓된 미혹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것입니다. 
사탕을 나누어주는 유치원 교사들을 다 치아파괴범으로 여기는 것은 지나친 것입니다. 
때가 되고 자라면 무엇이 진정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인지 알게 됩니다. 
애굽의 핵심 은혜는 보혈의 은혜입니다. 
어떠한 권능과 기적으로도, 은사와 능력으로도 바로를 이기고 애굽을 탈출할 수 없으나 
마지막 재앙, 피의 사건으로 인하여 그들은 드디어 저주의 땅을 떠나게 됩니다. 
그들은 피의 바다를 건너서 그곳을 탈출합니다. 
그러나 바로의 군사들은 모두 다 피의 바다에 빠져 죽습니다. 
보혈의 역사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에게는 구원의 도구이지만 마귀에게는 멸망의 도구입니다. 
그들은 피에 대하여 대항할 아무 힘과 권세가 없습니다. 
애굽은 은혜의 시기입니다. 이때는 어린 아기와 같습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칭얼거릴 뿐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왜 사는지, 하나님이 자기들을 왜 창조하셨는지, 사명이 무엇인지, 
어떻게 주님의 뜻을 추구하며 따라야 하는지..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저 잘 먹고 잘 살기를 원합니다. 
유명한 대학에 가고 돈을 많이 벌고 편하게 살고 
자식들이 다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를 원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울고 금식하고 하소연하고, 공격을 받으면 분노합니다. 
자존심이나 기분을 하나님처럼 여깁니다. 
육신의 욕망을 따르며 자기의 고유한 취향이 있고 애정이 있는데, 
그것을 버릴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이들의 관심은 세상입니다. 
아직 영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영원한 세상에 대한 갈망이나 이해도 거의 없습니다. 
이들은 아직 보이는 것에 사로잡혀 있고 환경의 문제에만 관심이 있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강아지가 수학이나 문학에 관심이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의 상태가 어떤 모습인지, 
하나님은 자신을 어디로 이끄시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사랑받기를 원하고 편하게 살기를 원할 뿐입니다. 
이들은 가치관에 있어서 물질관이나 결혼관이나 성공관이나 출세관이나 
이성관이나 가정관이나.. 대부분의 가치관에 있어서 세상 사람과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이란 자기의 소원을 채워주는 존재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기의 기대를 채워줄 때 이들은 간증도 하고 좋아하지만 
하나님이 자기를 실망시킬 때 원망을 하거나 상처를 받거나 실족을 하곤 합니다. 
아직 이들은 육체와 자아가 지옥에 속한 것이며 
그것들이 처리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릅니다. 
자신이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고 그 진정한 고향을 위하여 
준비되어야 하고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들이 애굽을 나오게 되면 가는 곳은 광야입니다. 
이들은 아직 가나안땅을 누릴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그동안 몸에 익었던 것들, 애굽의 냄새, 애굽의 삶, 애굽의 의식을 토해야 합니다. 
애굽의 요소를 모두 지워야 합니다. 
몸이 애굽을 나왔다고 해서 마음까지 나온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애굽을 나온 많은 신자들이 가나안을 향하기는 커녕 애굽이 좋았다고, 
그 때가 좋았다고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곤 합니다. 
이들은 아직 성과 속의 차이를 모릅니다. 지옥과 천국의 차이를 모릅니다. 
자기 안에서 미움과 시기와 분노가 일어나도 그것이 지옥에서 온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전혀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애굽의 의식, 마비된 의식이 처리되고 분리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훈련의 장소가 광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