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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55과)2.

Joyfule 2010. 11. 15. 01:20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55과)2.

스가랴(2):  악의 제거 (5-8장)

 

 

2장 악의 제거 (5-8장)


1. 날아가는 두루마리의 환상: 일곱 번째 환상(5장)

 
1-2. 에바 안에 앉은 여인의 환상(5-8)

  "내게 말하던 천사가 나아와서 내게 이르되 너는 눈을 들어 나오는 이것이 무엇인가 보라 하기로(5), 내가 묻되 이것이 무엇이니이까? 그가 가로되 나오는 이것이 에바니라. 또 가로되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6). 이 에바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는 동시에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리더라(7). 그가 가로되 이는 악이라 하고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 넣고 납 조각을 에바 아구리 위에 던져 덮더라(8)."

 

  5:5에서 해석하는 천사가 나아온 것은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또 하나의 환상을 보여주실 것이며, 따라서 그에 대한 해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스가랴는 에바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이 스가랴 5장에서 움직임이 몇 번이나 나타나는지를 유의해보라! 세상의 도덕적 세력들은 정지 상태, 또는 정체된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진보를 하든지 아니면 후퇴를 하게 마련이다. 스가랴가 이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불어본 것은 에바의 의미를 물은 것이었다. 그는 에바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 그에게 전해져서 그를 통해 다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하려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기를 원했던 것이다.

 

 에바란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측량 기구 중에서 가장 큰 것으로, 약 1부셀(약 2말 정도)를 담는 것이었다. 천사는 그 에바가 그 땅에 있는 사악한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에바 속에 곡식의 낟알을 담는 것처럼, 그 땅의 죄인들도 모두 모을 것이다. 에바는 무한히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측량하신 죄에 대한 심판을 의미한다. 혹 어떤 사람들은 에바가 교역과 상업의 상징이므로, 에바는 상인들의 죄악을 지적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에 대한 근거를 (약 5장, 계 18장)에 나타난 사악한 상업주의의 심판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에바가 언급하고 있는 것을 이처럼 제한할 필요는 없다. 두루마리 환상에서 위반 사항들이 전체 죄악성을 대표한 것처럼, 여기에서 에바가 상징하는 것도 전반적인 악이다. 여기에서도 땅은 주로 유대 땅을 의미한다.

 스가랴는 주로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그 시대 백성들에 대한 메시지를 받고있다. 그들은 죄의 중함과 비참함을 깨달아야 했다.

 

  스가랴로 하여금 에바 속에 무엇이 있는 지를 보게 하기 위해서 에바의 입구를 덮은 한 달란트 무게가 나가는 납뚜껑이 열려졌다. 달란트는 히브리인들이 사용하는 무게 단위 중에서 가장 무거운 단위이다. 에바의 뚜껑이 열렸을 때에 스가랴는 에바 속에 악을 상징하는 여인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악을 여인에 비유한 것은 (잠 2;16, 5:3-4)에서도 볼 수 있다. 히브리어에서 여성형은 추상적 개념들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문맥상으로 보아 이 여인이 (계 17-18장)에 나오는 큰 음녀라고 할 필요는 없다. 어떤 주석가들은 그것이 우상숭배(인격화한 악)를 언급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시각에서 우상숭배야 말로 가장 증오할만한 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에바가 상징하는 악은 모든 종류의 악을 방라하는 것이며, 물론 우상숭배도 이에 포함된다. 포로기 이후에도 우상숭배가 있었다는 사실은 (에스라 9장, 사 57장, 65:1-7, 66:17)을 통해 알 수 있다. 에스라서에 기록된 내용은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킨 에스라의 종교 개혁 이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이사야에 있는 기록들은 포로기 이후 시대의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그것은 주전 8세기 이사야 시대 사람들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악을 여인의 모습으로 의인화 한 것은, 불법의 사람으로 묘사된 사단이 행하는 악과 비교해 보아야 한다. 스가랴가 보고 있을 때에 천사는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놓고,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에바의 입구 위에 가장 무거운 납뚜껑을 덮어놓았다.


1-3. 에바를 시날 땅으로 옮김(9-11)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두 여인이 나왔는데 학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고 그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 그들이 그 에바를 천지 사이에 들었기로(9),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그들이 에바를 어디로 옮겨 가나이까 하매(10), 내게 이르되 그들이 시날 땅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집을 지으려함이니라. 준공되면 그가 제 처소에 머물게 되리라 하더라(11)."

 

  5:9-11에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관련된 악의 최종적인 처리가 기록되어 있다. 두 여인이 에바와 그에 대한 경고를 옮기기 위해 앞으로 나온다. 사람들은 예언의 미래 시제에 대한 언급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며, 지나치게 상세한 것까지 찾아내려고 하기 때문에, 이 두 여인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제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 앗수르와 바벨론이라는 사실을 간과할 때가 많다.

이 여인들은 환상을 생생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계획의 계시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상징이다. 그것들은 이미 묘사된 이미지와 일관성을 갖고 있다.운반되어야 할 에바의 무게 때문에 두 여인이 필요했다. 바람의 역할은 대단히 빠른 속력으로 그들이 짐을 나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여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학과 같은 날개를 갖고 있었다. 학은 크고 넓은 날개를 가진 철새이다. 이 새의 생태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견해에 의하면, 학은 매년 이동할 때에 유대에서 시날까지의 거리보다 더 멀리 날아간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환상의 모든 특징은 에바를 이스라엘의 한 가운데에서 먼 것으로 옮기는 역할을 한다. 비행의 목적지가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스가랴는 그것에 대해 묻는다(5:10). 그에 대한 대답은 지극히 완전하고 충분한 것이다. 1) 악은 시날 땅으로 옮겨질 것이다. 2) 그 곳에 그녀를 위해 집이 세워질 것이다. 3) 그녀는 자신의 처소에 머물게 될 것이다.

 

  시날 땅은 바벨론을 가리킨다. 이곳은 사람들이 최초로 연합하여 하나님께 반역을 도모했던 곳이다. 성경 전체에서 이 곳은 영적인 문제들에 있어서 혼란, 우상숭배, 영적인 부정을 상징한다. 창 11장에 나타난 것과 동일한 바벨론의 영이 (계 18장)에 기록된 바벨론에도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 곳은 유다가 포로로 잡혀간 땅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바벨론이 기꺼이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기 위해서 일을 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하박국 선지자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고 말한다.

 

바벨론은 자기의 이기적인 목표에 전념하고 있었다. 바벨론에서는 하나님의 그의 의로우신 지상 통치에 반대되는 모든 것들이 절정에 달했다. 이 환상은 바벨론의 최후 멸망과 심판을 말하는 것이다. 시날 땅이 과거 바벨론 포로 기간에 이스라엘이 전 세계에 흩어졌던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이것과 병행하는 구절이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 구절이 이미 포로기에 문자 그대로 이루어진 어떤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이 예언이 가리키는 전체적인 방향은 미래이기 때문이다.

 

  이 환상은 우상숭배의 심각성 이상의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려고 계획되어진 것이다. 70여년의 포로 생활은 하나님의 지도 아래 잘 수행되었다. 하나님은 모든 악이 두렷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서 마침내 하나님께 대한 도전을 상징하는 쪽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밝히고 계신다. 이상하게도 시날 땅의 집에 대한 언급이 그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위풍당당한 신전을 의미한다고 이해되어져 왔다. 영운한 처소는 우상숭배를 위해 건축된 일종의 우상신전(바벨론에서는 지구랏츠라고 불려짐)이라고 해석되어져 왔다. 그들은 (신 4:19, 29:25-26)에 기록된 것처럼, 이방 땅에서는 다른 신을 섬겨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상에 있는 모든 것들의 주이시며, 모든 열방의 신이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을 인정하신 적이 없다. 이는 수많은 성경 구절들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스가랴는 악이 어떤 특정한 장소에서 절정에 달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리고 죄는 그 곳에서 영원한 처소에 머물게 될 것이다. 집을 짓는 것은 장기간의 체류를 의미한다. 이는 집을 짓는 것이 유대인의 장기간의 포로생활을 의미한 것과 같다(렘 25:9). 더욱이 바벨론은 원래 죄악의 처소이기 때문에, 악이 그 곳에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악은 자신이 최초에 발생했던 곳, 자신이 항상 속해있던 곳에 머물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악의 순환이 완성되고, 모든 형태의 불신앙이 발상지로 돌아오게 된다. 이 예언의 환상은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다. 이 예언은 죄가 이스라엘에서 근절되는 때, 즉 백성들이 자기들의 메시야이신 왕께 돌아오는 그 때에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1-4. 소멸하는 죄의 세력

  성경 어디에도 스가랴 5장처럼 충실하게 인간생활에 초래한 무시무시한 파괴를 묘사하는 곳이 없다. 죄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존재, 또는 우리가 존재하기를 원하는 모든 것을 파괴시킨다. 이것은 퇴치 불가능한 해독이다. 그러나 퇴치 불가능하다는 것은 인간적인 차원에서의 일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죄악된 마음에 반드시 필요한 구원과 치료를 영원하고 적절하게 예비해 주실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유효한 약속이며, 소망의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