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관 자료 ━━/인터넷성경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152과)1.

Joyfule 2010. 11. 1. 08:41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152과)1.

학개(1):  일어나 건축하라! (1장)


1. 일어나 건축하라!(1장)

 

1-1. 인물과 시대적 배경(1:1)

  
"다리오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1:1)."

 

  이 선지자는 구약 성경에서 "학개"라는 이름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다. 학개라는 이름은 "절기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가 어느 절기 때에 태어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학개 역시 개인적인 경력이 알려지지 않은 선지자들 중의 하나이다. 그에 대해서는 (스 5:1, 6:14)에 언급되어 있다. 그는 바벨론 포로 이후에 활동한 최초의 선지자로서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후에 활동했다. 학개, 스가랴, 말라기를 연구하는 데에는 에스라, 느헤미야, 그리고 에스더를 읽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책들은 이스라엘 역사 중에서 동일한 시대를 다루고 있다. 학개는 주전 520년 다리오 히스타페스 왕 시대에 예언 활동을 했다.

 

  이 예언은 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선포되었다. (학 2:3)이 반드시 학개가 첫 성전이 있던 시기에 살았음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그는 바벨론 포로 기간에 태어났을 것이다.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은 편의상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남은 자들은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하여 다시 절기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성전의 기초는 놓였지만, 적대적인 주변 국가들의 반대와 백성들의 무관심 때문에 성전 재건의 작업은 중단되고 말았다. 다리오 히스타페스 왕은 바사 제국의 왕좌에 오르면서 이 일에 호의를 보였다. 학개와 스기랴는 예언의 메시지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성전 재건 작업에 참여하라고 촉구했다. 하나님께서 학개에게 주신 사명은 백성들을 격려하여 주전 586년 느부갓네살이 파괴한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다. 그는 성전 제건으로부터 시작하여 만국들의 진동, 하나님의 임재 및 하나님께서 다스리실 천년 왕국의 영광에 대해 선포한다.

 

  이 예언 안에 네 개의 설교가 기록되어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고, 다섯 개의 설교가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 네 개의 설교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설교는 (1:1-15), (2:1-9), (2:9-13), (2:20-23)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예언서의 주요 부분에는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학개는 스가랴보다 약 2개월 정도 일찍 활동하였다. 학개는 그의 메시지를 책망과 경고로 시작하여, 이 재건 작업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실 것이라는 약속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다음으로 그는 장차 있을 성전의 영광을 간략히 언급한다. 그는 죄와 거룩에 대한 원칙을 명백히 제시한 후에,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계속된 보로와 축복을 예고한다. 학개서의 문체는 산문이며, 질문 형식을 자주 취함으로써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1-2. 책망(1:1-4)

 
 "다리오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1).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2).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3),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4)"

  학개는 자기의 모든 메시지에 날짜를 명기했다. 그의 첫 예언은 다리오 왕 통치 2년 6월 1일에 행해졌다. 매월 1일은 새 달이 시작되어 백성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모이는 월삭이었으며, 이때는 학개가 백성들에게 메시지를 선포하기에 적절한 때였다. 6월은 엘룰달로 대략 우리의 9월에 해당된다. 다리오 왕은 주전 521년부터 통치하기 시작하였고, 이 예언은 그의 통치 2년째이 되는 해에 선포되었다. 이 예언의 날짜를 이방 왕의 통치에 맞추어 기록한 것은(스가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당시에 페르시아(바사)가 번영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1:1)의 날짜는 (에스라 4:24)과 일치한다. 하나님의 집을 재건하는 일은 적들의 방해 때문에 바사 왕 다리오 2년까지 중단되어 있었다.

이 예언은 당시의 세속 지도자인 스룹바벨과 종교적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행해졌지만,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백성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스룹바벨이란 이름은 "바벨론에서 얻은(테어난)"이란 뜻을 가진 이름이다. 그는 (에스라 1:8, 5:14,16)에서 세스바살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그는 여호야긴의 손자로서 고레스에 의해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여호수아는 바벨론이 침공했을 때에 대제사장이었던 여호사닥의 아들이다(1).

 

  학개는 백성들의 무관심을 책망하기 시작한다. 그는 성전을 재건을 미루고 있는 백성들을 책망하고 있다. 그들은 아직 성전을 제건할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은 성전을 재건할 적당한 때가 아니라고 불평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들 안에 자리잡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여러 가지 상태를 핑계대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이 정말 믿음이 있었다면 아닥사스다의 포고는 성전 재건에 장애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보다 바사를 더 크게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들의 모든 사역은 바사의 왕의 명령에 의해 좌우되었다. 하나님은 불쾌감에서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 백성"이라고 부르셨다. 그들은 성전 건축을 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아직 그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합리화했다. 이로 인해 성전 건축 사역은 15년이나 지연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15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해서 성전 건축을 할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다(2).

 

  하나님은 학개를 통해서 이러한 백성들의 태도를 책망하셨다. 하나님은 "성전이 황폐하게 되어 버려져 있는데, 너희가 판으로 벽을 두른 집에 사는 것이 합당하냐?"고 질문하셨다(3-4). 판벽한 집은 천장뿐 아니라 벽까지도 널판이나 판을 붙여서 화려하게 꾸민 집을 말한다. 당시 왕들의 집은 보통 삼목으로 실내의 벽판을 대어 화려하게 꾸몄다. 하나님은 이 질문을 통해서 그들의 이기심과 무관심, 그리고 배은망덕함을 분명하게 드러내셨다.

 

그들의 행위는 오직 이기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의 순서를 바꿔버렸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먼저 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구조물이 아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다윗은 자기의 궁전을 지은 후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실 장소가 없는 것에 가책을 느꼈다. 그러므로 그는 즉시 성전을 건축하겠다고 나단에게 말했다. 그러나 학개 시대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화려한 집에 거하면서 황무해진 성전에는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이러한 일은 우선 순위가 전도된 것으로 옳지 않은 일이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보다 자기의 집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우선 순위가 바로 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지적하셨다.


1-3. 재난(1:5-6)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찌니라(5). 너희가 많이 뿌릴찌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찌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6)."

 

  하나님은 죄 속에 있는 이스라엘에 대해 그들의 행위를 살피라고(마음에 두라고) 권면하신다. 학개에서의 이 권면은 호의적이다. 그는 (1:7)과 (2:18)에서 이 말을 반복한다. 이것은 스스로를 심판하라는 명령이다. 그들은 자신의 행위(또는 변명)의 본질에 다르는 결과에 의거하여 심판해야만 했었다. 그들은 많이 심었지만 조금 밖에 거두지 못했다. 그들은 먹어도 배부르지 못했으며, 마셔도 흡족하지 못했다. 옷을 입어도 따뜻하지 않았으며, 수입이 생기면 즉시 소비되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기대를 실망시켰다. 그들의 태만함이 지속되는 한 재앙도 계속될 것이다. 그들은 줄곧 이 재앙에 포함되어 있는 문제들과 하나님의 응징의 손을 보지 못했다. 그들의 이기주의는 아무 효과도 없었고, 이익이 아니라 손해를 가져왔다. 생필품이 비싸서 그들의 삯을 받아도 남는 것이 없었다.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백성들은 하나님의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이 그들 자신의 물질적인 일에 얼마나 손해를 가져오는 지 알 필요가 있었다. (1:4)에서는 판벽을 댄 집을 묘사하고서 1:6에서는 가난한 상대를 묘사한 것은 모순이 아니다. 그 백성 중에는 가난한 계층 뿐만 아니라, 부유한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마 6:33)의 원칙은 어느 시대에나 적용된다. 하나님 없이 일하는 사람에게는 은혜나 이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