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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1.

Joyfule 2009. 12. 7. 09:01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1.  

7월 13일
이건 나의 망상이 아닐세! 
나는 그녀의 검은 눈동자 속에 나에 대한 
그리고 나의 운명에 대한 진정한 공감이 어리어 있음을 알 수 있다네.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네. 그녀는, 아아, 천국을 이런 말로 표현해도 괜찮을까.......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일세!
틀림없이 나를 사랑하고 있네! 
그걸 알고부터 내가 나 자신에게 있어서 그지없이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네. 
나는 얼마나 나 자신을...... 
자네에겐 이런 소릴 해도 괜찮을 테지. 자네는 나를 이해하니까. 
존경하게 되었는지 모른다네. 그녀가 나를 사랑하게 된 뒤부터! 
이것은 나의 지나친 자만일가, 혹시 잘못 생각하는 건 아닐까? 
로테의 마음 속에 깊은 인상을 심어 주기라도 할까 봐 걱정스러워지는 그런 인물은 없네. 
그러나 로테가 그녀의 약혼자에 대해 열의와 사랑을 드러내며 이야기할 때,
나는 명예와 지위를 모조리 박탈당하고 대검까지 빼앗겨 버린 사람과 같은 느낌이 든다네. 
7월 16일
어쩌다 내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에 닿거나, 
우리의 발이 테이블 아래에서 맞닿거나 할때면, 
아아, 뜨거운 피가 내 혈관속에서 소용돌이를 치네. 
불에 닿기라도 한 것처럼 얼른 그 손가락이나 발을 움츠렸다가는, 
감각의 신비로운 힘에 이끌리어 또다시 스르르 앞으로 내밀게 된다네. 
모든 감각이 일시에 마비되어 현깃증이 날 지경이라네. 
아아! 그런데도 그녀의 천진난만하고 구김살 없는 영혼은 
자기의 그런 대수롭지 않은 친근감의 표시가 
나를 얼마나 괴롭히는가를 전혀 알지 못한다네.
뿐만아니라, 그녀는 이야기를 한창 하는 도중에 자기 손을 내 손위에 얹기도 하고, 
이야기에 열중해서 나에게 몸을 바싹 대기도 하여 
그녀의 순결한 입김이 내 입술에 와 닿는 일조차 있다네. 
그럴 때면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넋을 잃고 스러질 것만 같다네. 
빌헬름이여, 혹시나 내가 언젠가 감히 이 천국을, 이 신뢰를......! 
내마음 알아 주겠지? 내마음은 그토록 타락하지는 않았네! 
다만 약할 뿐일세! 정말 약하단 말일세! 
그러나 이 약하다는 것이야말로 타락이 아닐까? 
그녀는 나에게 있어서는 신성 불가침의 존재일세. 
그녀 앞에 나서면 일체의 욕망이 잠잠해지네. 
그녀가 곁에 있으면 내 기분이 어떤지조차도 알 수 없어지네. 
영혼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져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걸세 
그녀는 한 멜로디를 천사처럼 소박하고 진지하에 피아노로 연주하네. 
그것은 로테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지. 
그녀가 그 최초의 음을 치는 소리가 울리기만 해도 
나는 고뇌와 혼란, 그리고 우울로부터 해방된다네.
나는 이제 음악의 마력에 대한 옛날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거짓말이 아니라고 여기게금 되었네. 
그 소박한 멜로디가 내 마음을 꼼짝없이 사로잡아 버리는 것을 보면 알 만하지 않은가! 
로테는 내가 자신의 이마에 총알을 한 방 쏘고 싶어지는 
그러한 때에 곧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네. 
그러면 내영혼의 미망과 암흑은 홀연히 사라져 버리고 
나는 다시금 생기를 되찾아 호흡을 할 수 있게 된다네.
7월 18일
빌헬름이여, 사랑이 없는 세계에서 산다면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될까? 
램프 없는 환등이나 다를 바 없는 걸세! 
작은 램프를 끼움과 동시에 갖가지 영상이 흰 스크린에 나타나지. 
그것이 한낱 그림자요, 일시적인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어린애들처럼 그 앞에 서서 신비로운 광경에 가슴 설렌다면 , 
그것은 역시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일세. 
오늘 나는 로테네 지벵 가지 못했네. 
피치 못할 모임이 있었기 때문이지. 나는 하인에게 로테네 집에 갔다오라고 시켰지. 
로테의 곁에 가 있다가 온 인간을 내 몸 가까이에 있도록 하고 싶었던 걸세. 
얼마나 마음을 죄며 그 하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는지 모른다네. 
이윽고 그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나는 가슴 설레도록 반가왔다네. 
체면 때문에 차마 그러지는 못했지만, 그의 목을 껴안고 키스를 해 주고 싶었네.
형광석은 햇빛을 흡수해서, 밤이 되어도 얼마 동안은 빛을 발하다고 하더군. 
그 젊은 하인이 나에게 있어서는 그와 같은 존재였네. 
그녀의 눈길이 그의 얼굴, 그의 뺨, 그의 웃저고리 단추, 
그리고 그의 외투깃에 닿았었다고 생각하니,
 그 모든 것이 나에게 신성하고 소중한 것으로 여겨졌네. 
그 순간, 누가 천 탈레르를 준다고 해도 나는 그 하인을 딴 사람에게 넘겨주지 않았을 걸세.
그가 내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더 할 수 없이 흐뭇했거든. 
제발 비웃지는 말게나. 빌헬름이여,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 그것이 한갓 환영일까?
7월 19일
<그녀를 만나야지!>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외친다네. 
밝은 마음으로 아름다운 태양을 맞이하면서 <그녀를 만나야지!>하는 거야. 
그리고 진종일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네. 
모든 것이 이 소망 속에 잠겨 버리는 걸세. 
7월 20일 
나더러 공사를 수행하여 xx로 가는 게 좋겠다는 것이 자네들의 의견이지만, 
나는 그럴 의향이 없네. 
나는 남에게 애속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거든. 
게다가 모두들 나를 알다시피 그 공사라는 사람은 비위상하는 인물일세.
어머니께서 내가 활동하기를 바라고 계시다는 자네 글을 읽고,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네. 
내가 지금 활동하고 있지 않단 말인가? 
완두콩을 세고 있건 잠두콩을 세고 있건 결국은 그게 그거 아닌가! 
세상만사 따지고 보면 다 하잘것없는 것들일세.
그리고 자기 자신의 정열이나 욕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남이 시키는 대로 허덕지덕 뼈빠지게 일을 하면서 
돈이라든가 명예 따위를 얻으려 하는 자들은 한마디로 말해서 바보일세. 
7월 24일
그림 그리기를 등한히 하지 말라고 자네는 충심으로 충고하고 있지만, 
그 문제는 잊어버리고 싶네. 
바른 대로 말해서, 그 이후로 나는 그림을 거의 그리지 않고 있는 실정일세. 
지금처럼 내가 행복했던 적은 일찍이 없었네. 
돌멩이 하나에서 풀잎에 이르기까지 
자연에 대한 감수성이 내 가슴 속에 지금처럼 충만했던 적은 없다는 걸세.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군. 
나의 표현력은 미약해서, 모든 것이 내 영혼 앞에서 아른거리기만 할 뿐, 
윤곽조차도 포착할 수가 없네. 
그러나 진흙이나 백랍이라도 있으면, 뭔가를 만들어 볼 생각이 들 것 같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진흙을 주물럭거리게 될지도 모르겠네. 
그래서 완성되는 것이 비록 케이크 따위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일세. 
나는 로테의 초상화를 세 번이나 그리기 시작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네. 
전에는 꽤 솜씨있게 그릴 수 있었는데. 그래서 한층 더 울화가 치밀어오르더군, 
그 뒤 나는 그녀의 실루엣을 그렸다네. 그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