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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2

Joyfule 2009. 12. 8. 09:23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2.  

7월 26일
잘 알았소, 사랑하는 로테여. 
만사 잘 알아서 처리할 테니, 부디 일을 많이 맡겨 주시오. 
될수록 자주 일을 시켜 주기 바라오.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소. 
내게 서 보내는 편지에는 잉크를 말리는 모래를 뿌리지 말아 주시오. 
오늘은 편지를 입술에 갖다 대었더니, 입술이 깔깔합디다.
7월 26일
로테를 너무 자주 찾아가지 말자, 하고 몇 번이나 결심을 했는지 모른다네. 
그러나 그게 지켜질 리 없지. 
매일 스스로 유혹에 넘어가 버리고 나서는, 나는 또 엄숙히 맹세를 하는 걸세. 
내일은 찾아가지 말아야지, 하고 말일세. 
그랬다가 그 내일이 되면, 나는 또다시 
그러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찾아 내고는 어느새 벌써 그녀 곁에 가 있게 되는 걸세. 
가령 전날 밤에 로테가 <내일도 오시겠어요?>하고 말했다면, 
그 누가 가지 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 
그녀가 어떤 일을 부탁했을 경우도 있지. 
그러면 내가 직접 가서 그녀에게 그 결과를 알려 주는 것이 예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걸세. 
또 어떤 때는 날씨가 하도 좋아서 발하임으로 산책을 나간다네. 
거기가지 가고 보면 로테네 집가지는 불과 반 시간이면 갈 수 있거든. 
거기서부터 벌써 그 분위기에 젖어드는 걸세. 
우리 할머니는 곧잘 자석산 이야기를 해 주셨지. 
배가 그 산 가까이 다가가면, 별안간 배 안의 쇠붙이란 쇠붙이는 
모두 그 산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뱃사람 들은 가엾게도 
산산이 흩어진 널빤지를 잡고 버둥거리다 죽는다는 내용이었지. 
7월 30일
알베르트가 돌아왔네. 이제 나는 이 곳을 떠나야만 하겠지. 
비록 그가 기품있고 훌륭한 인물로서, 
모든 점에서 내가 그보다 한 수 처진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토록 아름답고 완벽한 여성을 소유하고 있는 그를 
눈앞에 두고 본다는 것은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노릇일세. 
소유! 그렇다네, 빌헬름. 
어쨌든 그녀의 약혼자가 돌아온 걸세. 
그는 훌륭한 청년신사로, 누구나 호감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세. 
다행히 나는 그가 돌아올 때 마중하는 자리에는 있지 않았네. 
만일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을 걸세. 
그는 사려 깊은 사람이라, 내가 보는 앞에서는 
아직 한 번도 로테에게 키스를 한 적이 없다네. 
하느님, 사려깊은 그의 행동에 상을 내리소서! 그
가 로테를 존경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서 나는 그를 경애하지 않을 수가 없네. 
그도 나에게 호의를 보이고 있으나, 짐작컨대 
그것은 마음에서 우러났다기보다는 로테가 그렇게 유도했기 때문인 듯하네. 
그렇나 점에서는 여자란 빈틈이 없으니 말일세. 
한 여자가 자기를 좋아하는 두 남자들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도록 할 수가 있다면, 
덕보는 것은 언제나 여자 쪽이거든. 하긴 언제나 그렇게 잘 되어 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알베르트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네. 
그의 의젓함은 두드러지게 침착성이 결여된 내 성격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네. 
그는 감수성도 풍부하며, 로테의 가치도 잘 알고 있네.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는 일도 별로 없는 듯하네.
불쾌한 감정이야말로 내가 무엇보다도 증오하는 죄악이라는 것은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알베르트는 나를 사려깊은 인간으로 여기고 있는 모양일세.
로테에 대한 나의 애모,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한 나의 열렬한 기쁨, 
그러한 것으로 인해 그가 느끼는 승리감은 더욱 커지고
 따라서 그는 더 한층 로테에게 사랑을 쏟게 되는 걸세. 
그가 때때로 사소한 질투로 로테를 괴롭히는 이리 있지나 않은지, 
그런 것은 덮어 두기로 하겠네. 
내가 알베르트의 처지라도 질투라는 악마의 손아귀에서 
깨끗이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 것은 어찌되었든, 로테 곁에 있을 수 있는 나의 기쁨은 이제 사라져 버렸네. 
내가 어리석었다고 함이 옳을 것인가, 
눈이 멀었다고 함이 옳을 것인가? 뭐라고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랴. 
사실 그 자체가 웅변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을!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알베르트가 돌아오기 전부터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일세. 
로테에 대하여 그 어떤 요구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또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지. 왜냐하면 이토록 사랑스러운 존재를 보면서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한도 안에서의 사랑이었던 것일세. 
그런데 마침내는 그 약혼자가 나타나서 그녀를 빼앗아 가 버리자, 
이 바보 같은 인간은 눈이 휘둥그래져 있다네. 
나는 이를 악물고 나 자신의 비참한 몰골을 비웃는다네. 
그러나 만일 나더러, 단념해라, 어쩔 도리가 없지 않느냐, 라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나는 그자를 몇 배나 더 비웃어 주겠네. 그런 정신을 가진 인간은 없어져 버려라! 
나는 숲속을 걸어 돌아다니다가 로테네 집으로 간다네. 
그러면 알베르트가 정원의 정자에 그녀와 함께 앉아 있다네. 
그것을 보면 나는 그만 더 이상 자중할 수가 없어져서, 
마음껏 장난기를 발동시켜 어릿광대 같은 짓을 하곤 하는 걸세. 
"제발"하고 오늘 로테는 나에게 말했네. 
"어저께와 같은 그런 행동은 하지 말아 주세요. 
그런 식으로 지나치게 쾌활하게 구시면 어쩐지 무서워져요" 
자네에게만 고백하지만,
 나는 알베르트가 일이 바쁜 때를 노리고 있다가 그 틈을 타서 얼른 찾아간다네. 
그래서 로테가 혼자 있으면 좋아하곤 한다네. 
8월 8일
용서하게나, 빌헬름이여. 
어쩔 도리가 없는 운명에는 얌전히 순종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하는 
그런 인간은 딱 질색이라고 내가 매도했던 것은, 자네를 두고 한 말은 결코 아니었네. 
자네도 그러한 의견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었지. 
그런데 근본적으로는 자네 말이 옳아. 
그러나 친구여, 내 한마디만 더 함게. 세상 일이란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딱 부러지게 결말이 나는 경우는 극히 드문 법일세. 
인간의 감정과 행동에는 실로 다양한 변화와 차이가 있는 걸세. 
마치 매부리코와 사자코의 중간에 무수한 변화의 단계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지. 
그러니 자네 의견이 전적으로 옳다고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내가<이것 아니면 저것>의 중간노선을 헤엄쳐 나가려 하더라도 
제발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아 주게나. 
자네는 어느 쪽이든 결단을 내리라고 말하는 거지? 
로테에게 희망이 있는가 없는가? 
희망이 있다면 끝까지 밀고 나가서 소망을 성취하도록 하라. 
그러나 희망이 없다면 용단을 내려서, 
온 정력을 좀먹는 불행한 감정으로부터 탈피하도록 노력하라, 이 말이지? 
친구여! 그 말인즉 지당하네. 
그러나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네. 
서서히 악화되어 가는 질병으로 인해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와져 가고 있는 
불행한 인간을 보고, 단도로 푹 찔러서 
단박에 그 병고에 종지부를 찍어라, 하고 권유할 수 있겠는가? 
환자의 정력을 좀먹는 질병은 또한 그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려는 용기마저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닐까?
자네는 다른 비유를 끌어다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 
즉, 우물쭈물하다가 생명을 위태롭게 하기보다는 
상처난 팔을 끊어버리는 편이 낫지 않느냐고 말일세. 
나는 모르겠네! 
비유를 끌어다 대면서 논쟁을 벌이는 짓은 그만두기로 하게. 
아뭏든 빌헬름, 
때때로 나는 모든 고뇌를 털어 버리고 
뛰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치솟을 때가 있다네. 
그래서......만일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딘지를 알게 되기만 하면,
나는 그 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할 걸세.
8월 8일 저녁
얼마 동안 팽개쳐 두었던 일기장을 오늘 무심코 펼쳐보고 놀랐네. 
나는 번연히 알면서도 현재의 이런 사태 속으로 한걸음 한걸음 빠져 들어오고 있었던 걸세! 
자신의 입장을 언제나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어린애같이 처신해 왔네. 
지금도 나는 그걸 분명히 알고 있네. 
그러면서도 여기서 헤어나게 되지를 않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