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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3.

Joyfule 2009. 12. 9. 10:59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3.  
8월 10일
어리석지만 않다면 나는 최고로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을텐데......
한 인간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하여, 
지금 내가 처해 있는 환경만큼 갖가지 조건이 결합되어 있는 일은 별로 없을 걸세. 
정녕 우리의 마음만이 우리의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일세. 
나는 지금 단란한 가정의 한 식구가 되다시피 해서, 
노인들로부터는 친아들처럼 사랑을 받고, 
아이들로부터는 아버지처럼 흠모를 받으며, 또 로테로부터도! 
그리고 성실한 알베르트, 
그도 또한 변덕이나 무례한 언동으로 내 행복을 손상시키는 일은 결코 없다네. 
그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우정으로 나를 감싸 주고 있네. 
그는 이 세상에서 로테 다음으로 나를 사랑해 주고 있다네! 
빌헬름이여, 우리가 함께 산책을 하면서 로테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누가 옆에서 듣는다면 재미있을 걸세. 
세상에서 우리 두 사람의 관계처럼 우스꽝스러운 것이 또 어디 있을까. 
그걸 생각하면 나는 때때로 눈물이 핑 들곤 한다네. 
어느 날, 알베르트는 로테의 훌륭하였셨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해 주었네.
그 임종의 병상에서 로테의 어머니는 
집안 일과 아이들을 로테에게 맡긴다고 말했다는 걸세. 
그 이후로 로테는 딴 사람이 된 것 같은 정신적인 자세로 살아 나갔으며, 
집안 일에 대한 배려라든가 그 진지성은 진짜 어머니를 방불케 했고, 
한순간도 쉬지 않고 바지런히 일하며 동생들을 보살폈는데, 
그러면서도 언제나 쾌활하고 상냥한 성품을 그대로 유지해 왔다는 걸세. 
그와 나란히 걸어가면서, 길가의 꽃을 꺾어 공들여 꽃다발을 만든 다음, 
흘러가는 개울물에 그 꽃다발을 던지고 그것이 천천히 떠내려가는 것을 바라보았다네.
자네에게 이미 알렸는지 어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알베르트는 이 곳에 정주하여 궁정으로부터 
상당한 급여가 지급되는 어떤 관직에 앉게 될 모양일세. 
그는 궁정에서 꽤 호감을 사고 있는 더이거든, 
일을 착실히 하고 부지런히 해 낸다는 점에서 그와 비견할 만한 자를 나는 본 적이 없네. 
8월 12일
분명히 알베르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선량한 인간일세. 
그런데 나는 어제 그와 더불어 한바탕 기묘한 논쟁을 벌렸네. 
나는 작별인사를 하러 그의 집에 찾아갔었던 걸세. 
말을 타고 산으로 여행을 하고 싶어졌었거든. 
지금 이 편지도 여행지에서 쓰고 있는 것이라네. 
그의 방 안을 이리저리 거닐고 있으려니까, 권총이 눈에 띄더군. 
"저 권총을 좀 빌려 주시겠습니까? 여행중의 호신용으로 휴대하고 싶은데"
하고 나는 말했지 
"좋도록 하세요"하고 그는 대답하였네. 
"다만 총알을 장전하는 수고는 당신이 해야만 합니다. 
우리 집에서는 그저 장신용으로 걸어 놓았을 뿐이니까요"
나는 권총 한 자루를 집어 내렸지. 알베르트는 말을 계속하였다네. 
"지나치게 경계를 하다가 엉뚱한 사건이 벌어진 뒤로는, 
이런 총기를 만지지 않기로 했지요" 
내가 그 사연을 묻자
 "시골에 있는 어느 친구 집에"하고 
알베르트는 이야기를 시작하였네. 
"석 달 정도 머물렀던 적이 있었지요, 
나는 한 쌍의 소형 권총을 장전도 하지 않은 채 갖고 있었는데, 
그래도 밤에는 아무 걱정없이 잘 잤답니다. 
그런데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오후, 
무심히 앉아 있노라니까 어찌된 영문인지,문득 강도가 언제 덮칠지도 모른다. 
그러면 권총이 필요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기분, 당신도 이해하겠지요? 
그래서 나는 하인에게 권총을 내주며, 
손질을 좀 하고 총알을 장전하라고 일렀어요. 
그런데 그 하인이 하녀들과 장난을 치느라고 권총으로 위협하는 시늉을 하고 있는 중에 
어쩌다가 그만 권총이 발사되었지 뭡니까. 
총구 청소용 꽂을대가 꽃힌채 발사되었는데, 
그 꽃을대가 하녀의 오른손 엄지 손가락에 발혀 엄지손가락이 박살이 나 버렸지요. 
울고불고 소동이 벌어진데다가 나는 치료비까지 물어 줘야 했답니다. 
그러뒤로 나는 총기에는 일제 총알을 장전하지 않고 놓아 두기로 했어요. 
아무리 조심해 봤자 소용이 없어요.
위험이란 예측할 수 없는 것이거든요. 하긴......" 
그러데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알베르트란 인물을 무척 좋아하지만, 
그건<하긴......> 이런 말을 꺼내기 이전의 그에 한정되는 걸세. 
어떤 일반적인 명제라 하더라도 예외가 있는 것은 뻔한 일 아닌가. 
그러데 이 인물은 자기 말이 꼭 정론이 되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걸세. 
약간 경솔한 말을 했다거나, 일반적인 말, 
혹은 불확실한 발언을 했다 싶으면, 
그는 먼저 한 말을 새로이 한정하기도 하고, 
수정하기도 하며 한없이 늘어놓아서, 
나중에는 어떤것이 본론인지 모르게 되어 버리곤 하는 걸세. 
이번에도 그는 장황하게 파고들며 변론을 벌이는 것이었네. 
결국 나는 그의 말에는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고, 
엉뚱한 환상에 빠져 권총 부리를 내 오른쪽 눈 위의 이마에다 갖다 대었다네. 
"저런!" 하면서 알베르트는 내 손에서 권총을 빼앗았네.
 "이게 무슨 짓이오?"
"총알도 없는데 뭘 그러십니까!"하고 나는 말했지.
"총알이 들어 있지 않더라도, 이게 무슨 짓입니까.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 인간이 자신을 쏠 정도로 어리석을 수가 있는지......
생각만 해도 불쾌해요"
"당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하고 나는 외쳤네. 
"어떤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은 어리석다, 
그것은 현명하다, 그것은 좋다, 그것은 나쁘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모양인데, 
그렇게 말함으로서 어떤 행위의 내면적인 사정을 다 헤아릴 수 있나요? 
어째서 그러한 행위가 행하여졌겠는가, 
어째서 행하여지지 않을 수 없었는가, 
그 원인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나요?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당신들도 그렇게 성급한 판단은 내리지 않을 겁니다" 
"당신도 시인하겠지요"하고 알베르트는 말했네.
 "어떤 종류의 행위는, 그것이 어떤 동기에서 행하여지든간에
 죄악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나는 어깨를 움츠리며 그의 말에 동의했네. 
"그렇지만 말입니다"하고 나는 응수했지. 
"거기에도 약간의 예의는 있어요. 
도둑질이 죄악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그러나 자기 자신과 가족들이 당장 굶어 죽게 되었을 때, 
아사를 면하기 위하여 도둑직을 했다면, 그자는 동정을 받아야 할까요? 
아니면 벌을 받아야 할까요? 
정당한 분노가 치받치어 부정한 아내와 그녀의 비열한 유혹자를 살해한 남편, 
환희의 한때에 이성을 잃고 억누를 길 없는 사랑의 환락에 몸을 내맡긴 소녀, 
이들을 향해 누가 냉혈적인 기준마저도 감동하여 형벌을 유보하지 않습니까?"
"그건 별문제지요"하고 알베르트는 대답하였네.
 "걱정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는 인간은 사려분별이 전혀 없어져 있기 때문에, 
술취한 사람이나 미친 사람과 같이 간주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