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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9.

Joyfule 2009. 12. 4. 09:12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9.  
7월 1일
로테가 곁에 있다는 것이 환자에게 있어서 얼마나 기쁜 일인지, 
나 자신의 경우에 비추어서 잘 알 수 있네. 
내 불행한 마음은 병상에서 쇠약해져 가고 있는 사람들보다 더 비참한 용태라네. 
로테는 시내의 어떤 신실한 부인 집에 가서 며칠을 지내게 되었네. 
그 부인인, 의사의 진단에 의하면 임종이 멀지 않았는데, 
그 최후의 며칠 동안 로테의 간호를 받고 싶어하고 있다는 걸세.
지난주에 나는 로테와 함께 성......라는 마을의 목사를 찾아갔었네. 
산 속으로 1시간 정도 들어간 곳에 있는 작은 마을인데, 우리는 4시경에 그 곳에 당도했네. 
로테는 둘째 여동생을 데리고 갔었지. 
두 그루의 커다란 호두나무 그늘에 덮여 있는 목사 관의 안뜰에 들어섰을 때. 
그 선량한 노목사는 문간 앞의 벤치에 앉아 있었네.
로테를 보더니 노인의 얼굴에 생기가 돌더군. 
마디투성이인 지팡이를 짚는 것도 잊어버리고, 로테를 맞이하기 위해 일어서려 하였네. 
로테는 얼른 달려가서 노인을 앉히고 자기도 그 곁에 앉아 아버지의 안부를 전한 다음, 
목사가 늘그막에 얻은 막내동이라는 못생기고 더러운 아이를 끌어안는 것이었네. 
로테가 그 노인을 대하는 모습을 자네에게도 한번 보여 주고 싶을 정도였네! 
그녀는 반쯤 안 들리게 된 노인의 귀에 잘 들리도록 목소리를 높이고, 
뙭?튼튼하면서도 갑자기 죽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며, 
카를스바트 온천물이 좋다는 이야기, 
그리고 노인이 이번 여름에 그 곳에 가기로 결심한 것을 칭찬해 드리고 
지난번에 뵈었을 때보다 훨씬 건강이 좋아 보인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하였네. 
나는 그 동안에 목사 부인에게 인사를 하고, 그녀와 이야기를 했지.
노목사는 그새 기운을 많이 되찾았네. 
그래서 내가 시원스러운 그늘을 드리워 주고 있는 커다란 호두나무를 칭찬하자 
얼마간 더듬더듬하면서도 그 나무의 내력을 이야기해 주었네 
"오래된 쪽 나무는 누가 심었는지 몰라요. 
이 목사가 심었다고도 하고, 저 목사가 심었다고도 하거든요. 
그런데 저 안쪽에 있는 나무는 우리 집사람과 동갑으로, 오는 10월로 50살이 됩니다. 
집사람의 아버지, 곧 내 장인이 아침에 저 나무를 심었는데, 
그 날 저녁에 집사람이 태어났다는 거예요. 
장인은 나의 선임목사였는데. 이루 말할 수 없이 저 나무를 애지중지했답니다. 
저도 역시 마찬가지지요. 지금부터 27년 전의 일입니다만, 
내가 가난한 대학생으로서 처음 이 안뜰에 들어섰을 때, 
집사람은 저 나무 아래 있는 재목더미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었답니다" 
따님은 어디 갔느냐고 로테가 물으니까, 
시미트 씨와 같이 목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갔다더군. 
그러고 나서 노인은 그 선임목사가 자기를 무척 아껴 주었고, 
그의 딸도 자기를 사랑해 주었으며, 
처음에는 부목사가 되었다가 얼마 후에 후계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네. 
이야기가 막 끝났을 무렵, 그 목사의 따님이, 
조금 전에 이야기가 나왔던 그 시미트라는 사람과 같이 채소밭 쪽에서 들어왔네. 
그녀는 진심으로 로테를 환영하더군. 솔직히 말해서, 그녀는 꽤 매력이 있었네. 
갈색 머리에 몸매가 좋고 발랄한 아가씨로, 
얼마 동안이라면 시골에서 이야기 상대가 될 만한 여인이었네. 
그녀의 애인(시미트 씨가 곧 그런 관계라는 것을 나타내는 태도를 취했거든)은 
괜찮게 생겼으나 말이 없는 남자로, 
로테가 아무리 말을 걸어도 우리의 이야기에 어울리려 하지 않았네. 
내 마음이 서글퍼진 것은 그가 우리와 어울리려 하지 않는 것이 
식견의 부족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고집과 심술 때문이라는 것을 그의 표정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일세. 
그 사실은 유감스럽게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의심할 여지가 없어졌네. 
우리가 다같이 산책을 나갔을 때 프리데리케는 로테와 짝이 되기도 하고 
어쩌다가 나와 나란히 걷기도 했는데, 
그런 때면 그렇쟎아도 가무잡잡한 그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지는 걸세. 
그래서 로테는 기회를 보아 내 소매를 잡아당김으로써, 
프리데리테에게 지나치게 친근하게 굴지 말라고 일깨워 주었다네. 
아무튼 뭔가 못마땅한 일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서로 상대방에게 괴로움을 끼치는 일,
특히 인생의 한 창때로서 모든 기쁨에 대하여 
가슴을 활짝 열어 젖힐 수 있는 젊은이들이 얼굴을 찌푸리고, 
서로의 얼마 되지 않는 행복한 날들을 망쳐 버리는 것처럼 불쾌한 일은 없네. 
그들은 훗날에 가서야 비로소 자기들이 낭비해 버린 세월을 
보상받을 길이 없음을 깨닫게 되지만, 그 땐 이미 늦은 거지. 
이런 생각으로 울화가 치민 나머지, 
나는 저녁 무렵 목사관 안뜰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우유를 마실 때, 
화제가 이 세상의 고락에 미치자 실마리를 잡고 
변덕스러운 불쾌감이란 것에 대해 마구 공격을 해대지 않을 수 없었네 
"우리 인간들은 곧잘 푸념하기를, 복된 날은 적고 언짢은 날은 많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인 것 같습니다. 
하느님이 날마다 내려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항상 마음을 활짝 열고 즐기려 한다면, 
언짢은 일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거뜬히 견뎌 낼 만한 힘이 날 것입니다." 
"하지만"하고 목사 부인이 응수하였네.
 "자신의 감정도 자기 뜻대로는 잘 안 되거든요. 
신체의 상태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거예요. 
몸이 좋지 않을 때에는 뭘 봐도 마음에 들지 않는 걸요" 
나는 일단 그 말을 시인하고 말을 이었네.
 "그렇다면 그것을 병이라 간주하고, 그 병을 치료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 봅시다." 
"좋은 말씀이군요"하고 로테가 말했네.
"그건 자기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제 경우에 비추어서 알 수 있어요. 뭔가 속상하는 일이 있어서 불쾌한 기분이 들면, 
저는 벌떡 일어나 나가서 정원을 왔다갔다하며 대무곡을 두어 곡조 노래합니다. 
그러면 곧 기분이 가라앉거든요" 
"그게 바로 제가 말하고자 했던 겁니다"하고 나는 말했네. 
"불쾌한 감정은 게으름과 같다고 할 수 있죠. 아니, 게으름의 일종이지요. 
우리는 선천적으로 게으름에 젖기 쉬운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분발하면 일은 척척 진척되게 마련이요, 
활동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프리데리케는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네. 
그러나 시미트라는 그 청년은 이론을 제기하고, 
인간이 자기 자신을 지배할 수는 없다, 
더구나 자신의 감정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네.
"지금 문제삼고 있는 건 불쾌감으로"하고 나는 말했지.
 "그건 누구나 회피하고자 하는 감정입니다.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시험해 보지 않고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겁니다. 
병이 나면 누구든지 이 의사 저 의사를 찾아다니고,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괴롭더라도 절제하고, 
아무리 쓴 약이라도 거부하지 않을 겁니다" 
그 성실한 노목사가 우리의 토론에 참여하고 싶어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을 눈치챈 나는,
 목소리를 높여 노인 쪽을 보고 말했지.
 "죄악에 대한 설교는 허다하게 들었습니다만,
 불쾌감을 훈계하는 설교는 아직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 설교는 도회지 목사나 해야겠지요"하고 목사는 말했네. 
"농부에겐 불쾌감이란 없어요. 
하긴 때로 그런 설교를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적어도 목사 부인이라든가 법무관 님께는 약이 되기도 할 테니까"
그 말에 모두들 웃었네. 노목사 자신도 유쾌하게 웃어젖혔는데. 
밭은기침을 쿨룩거리는 바람에 토론은 잠시 중단되었네. 
이윽고 그 청년이 다시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네.
 "당신은 불쾌감을 죄악이라고 하셨는데, 
그건 좀 지나친 말씀인 것 같이 생각되는군요"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하고 나는 말했지. 
"자기 자신과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두루 괴로움을 끼치는 일이 죄악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서로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한다는 그것만으로도 죄악이라 하기에 충분한데, 
우리 각자에게 허용된 기쁨까지 서로 빼앗아야만 할 까닭이 뭡니까? 
자기 자신은 불쾌하지만 혼자 견디어 내며 남들에게는 그것을 나타내지 않고, 
주위 사람들의 즐거운 기분을 망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 분이 누군지 알고 싶습니다. 불쾌감이란 오히려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마음속의 울분, 자신에 대한 불만, 
그리고 그것들과 결부된 어리석은 허영심에 의하여 북돋워진 질투가 아닐까요? 
행복한 사람을 보고서도, 그 사람이 자기로 인해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불쾌해 하고, 그것을 용납 못할 일로 생각한단 말입니다" 
로테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네. 
프리데리커의 눈에는 눈물이 어리어 있었네. 
거기에 용기를 얻어 나는 말을 계속했지. 
"어떤 사람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 처지에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단순한 기쁨의 한 순간이 
그런 폭군의 질투 섞인 불쾌감으로 인하여 망쳐진 것을 보상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 순간, 나는 가슴이 꽉 메는 기분이었네. 
지난날의 갖가지 추억들이 되살아나면서 눈물이 핑 돌았네. 
"우리가 날마다 자신에 대하여 이렇게 타이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고 나는 큰 소리로 말을 이었네. 
"너는 네 친구들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어. 
다만 그 친구의 기쁨을 방해하지 않고 즐거움을 함께 나눔으로써 
그 행복을 더욱 북돋우어 주는 일 이외에는......
네 친구의 영혼이 타는 듯한 정열로 인해 시달리며 고민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너는 한 방울의 완화제나마 그 친구에게 줄 수가 있는가? 
그리고 또, 한창때의 꽃다운 시절을 너로 인해 
허망하게 보내 버린 한 소녀가 중병이 들어 
가슴아플 정도로 수척해진 채 드러누워 있다고 치자. 
소녀의 눈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임종의 진땀이 창백한 이마에 자꾸만 번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너는 저주받은 자같이 그 병상 곁에 서서, 자신의 능력을 다 짜내어도 
그녀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죽어 가는 사람의 기운을 돋우는 한 방울의 약, 용기를 되살려 줄 수 있는 
한 가닥의 불꽃이라도 주입해 줄 수 있다면 모든 것은 다 바쳐도 좋겠노라고, 
애끓는 슬픔에 잠겨 있다. 그러면서도 너는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는 거야......"
이렇게 말하고 있는 사이에, 내가 일찍이 당면한 적이 있었던 
그와 같은 광경이 무서운 기세로 나를 엄습해 왔네. 
나는 손수건을 눈에 갖다 대고는 자리에서 앉아 있었네. 
"그만 돌아가요"하는 로테의 목소리에 나는 겨우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네. 
돌아오는 길에 로테는, 내가 모든 일에 지나치게 열중하는 것 같은데,
 좀 자중하라고 간곡히 충고하는 것이었네.
 "선생님은 그 때문에 몸을 망치게 될지도 몰라요! 자기 몸은 자기가 돌보지 않으면 안 돼요!" 
아아, 나의 천사여! 나는 오직 당신을 위해 살아가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