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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4.

Joyfule 2009. 12. 10. 09:21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4.  
"아아, 당신네 이성적인 사람들이여!"
하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외쳤네
."걱정! 술취한 사람! 미친 사람! 
당신들은 그렇게 말하며 마치 남의 일처럼 태연하군요. 
훌륭한 도덕군자들입니다. 
술취한 사람을 나무라고, 정신착란자를 외면하며, 
성직자들처럼 그 옆을 지나서는, 바리세인들처럼 
자기가 그러한 인간 가운데 하나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하느님께 감사하겠지요. 
나는 술취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격정에 사로잡혀 거의 제정신을 잃은 적도 있었지요. 
그러나 나는 어느 경우에 있어서나 후회하지 않습니다. 
위대한 업적,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일을 성취할 비범한 인간들은 
옛날부터 모두 주정뱅이라느니 미치광이라느니 하는 
지탄을 받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자유롭고 고결하며 남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을 어떤 사람이 할라치면, 
그 일하고 있는 도중에 거의 예외없이, 
저 놈은 미쳤어, 저 놈은 바보야, 하고 매도를 하니, 
이건 정말 참기 어려운 일입니다. 
부끄러운 줄을 아시오. 
정신이 말짱한 당신네 들! 부끄러운 줄을 아시오, 
당신네 현명한 사람들이여!" 
"그것 역시 당신의 편력된 생각에서 나오는 말이지요"하고 알베르트는 말했네. 
"당신은 무엇이나 지나치게 과장을 합니다. 
적어도 이번의 경우, 당신의 논리는 부당해요.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건 자살인데, 
그것을 당신은 위대한 행위에 비하고 있으니 당치않은 일이지요. 
자살은 아무래도 의지가 박약한 행위로 밖에는 볼 수 없어요. 
왜냐하면, 고통스러운 인생을 꿋꿋이 견디며 살아 나가기보다는 
죽어 버리는 편이 편하다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나는 그만 논쟁을 끝맺으려 했네. 
남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데 시덥쟎은 상투적인 문구를 들고 나오니, 
그것처럼 못 견딜 노릇이 없거든. 
그런데 그의 이런 말은 전에도 여러 차례 들었고, 
나도 몇 번 화를 낸 일이 있으므로,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약간 쾌활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네. 
"의지가 박약한 행위라뇨, 제발 겉만을 보고 오판하지 마세요. 
폭군의 지독한 압정에 시달리고 있던 민족이 
침내 궐기하여 그 압정의 쇠사슬을 끊었을 때, 
그것을 당신은 의지가 박약한 행위라 할 수 있나요? 
집에 불이 난 것을 보고 놀라서 온몸에 힘이 불끈 솟고, 
여느 때에는 움직일 수조차 없는 무거운 물건을 번쩍 드는 사람이라든가, 
또는 모욕을 당하고 격분해서 여섯 사람을 상대로 맞싸워 그들을 때려눕히는 사람, 
그러한 사람들을 의지가 박약한 인간이라고 해야만 옳단 말입니까? 
그리고 또 긴장하고 노력하는 것이 꿋꿋한 행위라면 
지나친 긴장이 어째서 그 반대가 되어야만 한단 말입니까?"
알베르트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말했네.
 "기분 나빠하지 말아요. 
방금 당신이 든 예는 이 경우에는 전혀 합당치 않은 것으로 생각되는군요"
"그럴지도 모르지요"하고 나는 말했네. 
"나는 여러 차례 비난을 받은 바 있어요, 
나의 연상이 때때로 엉뚱한 곳으로 뻗어 나간다고 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논법으로 내 의견을 말해 보겠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즐거워야 할 인생을 
포기해 버리려고 결심하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그것을 다른 방법으로 상상할 수가 없는지, 우리 한번 시도해 봅시다. 
요컨대, 우리는 공감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어떤 사항에 대한 이야기를 할 만한 자격이 있는 것이니까요. 
인간의 본성에는 어떤 하계가 있는 겁니다. 
기쁨이나 슬픔, 고통 등도 어느 일정한 한도까지는 견뎌 낼 수가 있지만, 
그 한도를 넘어서면 파멸하고 맙니다.
이건 사람이 약하다든가 굳세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어느 한도까지 견뎌 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지요. 
정신적인 면에서나 육체적인 면에서나 말입니다. 
그런데 나로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게 있어요. 
당한 것은, 악성 열병으로 죽는 인간을 
비겁한 자라 함이 부당한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냐 이겁니다" 
"그건 궤변입니다! 말도 안 되는 궤변입니다! 
알베르트가 외쳤네. 
"당신이 생각하듯이 그런 궤변은 아닙니다"하고 나는 응수를 했지.
 "이런 것은 당신도 시인하리라 믿어요. 
가령 육체가 몹시 병들고, 기력도 기능도 쇠약해져 버려서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도 정상적인 삶의 영위가 불가능할 때, 
우리는 그걸 죽을 병이라 함이 마땅하겠지요. 
그런데 이것을 정신에 적용해 봅시다. 
생각을 외곬으로만 모이며 끙끙 앓는 인간을 잘 관찰해 보세요. 
갖가지 인상이 그에게 작용하여 관념이 고정되고, 
마침내 격정이 더욱 항진되어서 냉철한 사고능력이 상실된 끝에 그는 파멸하고 마는 겁니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인간이 이 불행한 인간의 상태를 위에서 내려다 보며, 
이래라저래라 말을 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거예요. 
건강한 인간이 환자의 병상 곁에 서 있다 하더라도, 
자기 힘을 그 만분의 일도 환자에게 주입시켜 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내 말은 알베르트에게는 너무나 일반적인 것이었네. 
그래서 나는 얼마 전에 연못에 투신자살한 한 소녀의 일을 그에게 일깨워 준 다음, 
그 이야기를 그에게 되풀이해 주었지.
"착한 아가씨였지요. 
일정한 집안 일을 돌보며, 지극히 좁은 세계에서 자라났답니다. 
낙이라고는 조금씩 저축해서 장만한 나들이옷을 입고 
일요일이면 같은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려 교외로 산책을 나간다거나, 
큰 축제일에 무도회에 참석한다거나, 
남들의 평판이며 뒷 소문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웃집 처녀들과 하염없이 수다를 떤다거나 하는 따위가 고작 이었죠. 
그런데 이 아가씨의 열정적인 성질이 마침내 좀더 깊은 요구를 품기 시작하였는데, 
남자들이 치켜 주는 바람에 그런 요구가 더욱 부풀어올라 
여태까지 낙으로 여겨 왔던 일들이 차츰 시들해졌던 겁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지요. 
여태껏 알지 못했던 감정에 정신없이 끌려들어서, 
자기의 모든 희망을 그 남자에게 걸고 주위의 세계를 잊어버렸지요. 
자기에게 유일한 존재인 그 남자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 것도 느끼지 않게 된 상태로, 
오로지 유일한 존재인 그 남자만을 그리워하게 된 것입니다. 
일찌기 바람이 나서 부질없는 쾌락을 즐기는 따위의 해독에 물든 적이 없는 아가씨였으므로, 
그녀의 소망은 오직 그의 아내가 되는 것이었지요. 
지금까지 누려 보지 못했던 모든 행복을 동경해 오던 일체의 기쁨을 
그와의 영원한 결합 속에서 찾아 내려 한 것입니다. 
희망의 실현을 보증하는 거듭된 약속, 
그녀의 욕정을 더욱더 향진시키는 그의 대담한 애무, 
이러한 것들이 그녀의 영혼을 송두리째 사로잡아 버렸지요. 
황홀경 속에서 그녀는 온갖 기쁨을 예감하며, 
극도로 긴장된 심경으로 마침내 자기의 소망을 품에 안으려고 두 팔을 벌렸답니다. 
그때 애인은 그녀를 버린 것입니다. 
그녀는 넋을 잃고 깊은 연못 앞에 멈춰 섭니다. 
사방은 온통 암흑이요, 
아무런 목적도, 아무런 위안도,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 
오직 그 남자 속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는데, 
그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으니까요. 자기 눈앞에 있는 넓은 세계도 보이지 않고, 
잃어버린 보물을 보상해 줄는지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도 눈앞에 들어오지 않는 겁니다. 
전세계로부터 버림을 받고, 혼자 외토리가 된 자신을 느낍니다. 
그리하여 눈앞이 캄캄해지고, 
견디기 어려운 마음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연못에 몸을 내던집니다. 
자기를 감싸줄 죽음 속에서 모든 고뇌를 잔재워 버리려고 말입니다.
알베르트 씨, 이것이 많은 사람들의 운명입니다. 
아까 말한 병자의 경우와 이치는 마찬가지가 아니겠어요? 
서로 얽히며 싸우는 갖가지 힘의 미궁 속에서 
생명의 탈출구를 찾아 내지 못하여 결국 그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곁에서 보고, 
<소견없는 여자로군! 기다리고 있으면 될 텐데. 시간이 흐르면 절망도 진정될 것이요, 
그녀를 위로해 줄 다른 남자도 나타날 텐데 말이야> 
이런 소리를 하는 자는 저주를 받아 마땅할 거요. 그것은 
<저 녀석은 바보야, 열병으로 죽다니! 
체력이 회복되고 정력이 되살아나서, 
광란하는 치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될 텐데. 
그러면 만사가 다 호전되고 지금까지도 살아 있을 텐데 말야>하는 것이나 다름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