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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6.

Joyfule 2009. 12. 12. 09:26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6.  
8월 28일
내 병이 고쳐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고쳐 줄 사람은 틀림없이 이들일 걸세. 
오늘은 내 생일일세.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알베르트로부터 소포가 배달되었다네. 
포장을 끄르자 곧 바로 눈에 띈 것이 분홍색 리본이었네. 
로테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가슴에 달려 있었던 것으로 
그 후에 몇 번인가 그녀에게 졸라서 내가 얻으려 했던 것이지. 
그리고 12절판의 문고본이 2권 들어 있었네. 
베트시타인 판의 호메로스로, 산책을 하면서 
무거운 에르네스티 판을 들고 다니기가 거추장스러워서 벌써부터 갖고 싶었던 책이지. 
이런 식으로 이 사람들은 내 소망을 미리 알고서, 
알뜰한 우정을 나타내는 조그마한 선물을 찾아 내어 준다네. 
이러한 성의는, 보낸 사람의 허영심에 받는 사람이 굴욕감을 느끼게 되는 
그런 값진 선물보다는 천 배나 더 귀중한 것이지. 
나는 그 리본에 수없이 입술을 갖다 대었네. 
그리고 숨을 내쉬고 들이쉴 때마다 그 즐거웠던 날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짧은 그 시절의 행복한 추억들을 되새겼다네. 
빌헬름이여, 그러나 불평은 하지 않겠네. 
인생의 꽃이란 환상에 지나지 않는 거니까. 
얼마나 많은 꽃들이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떨어져 버렸는가. 
열매를 맺는 꽃은 지극히 적고, 열매를 맺어도 온전히 익게 되는 것은 더구나 더 적은 걸세. 
그렇다고 익은 과일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네. 그런데도......아아, 친구여! 
우리가 그 익은 열매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맛도 보지 않은 채 썩여 버려도 괜찮은 걸까? 
잘 있게. 
멋진 여름일세. 나는 곧잘 과일을 따는 긴 장대를 들고 
고테네 과수원 나무에 올라가 높은 가지에 달려 있는 배를 딴다네. 
그러면 로테는, 그 아래에 서 있다가 내가 떨어뜨려 주는 배를 받는다네.
8월 30일
불행한 사나이여! 너는 바보가 아닌가?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게 아닌가?
미칠 것만 같은 이 끝모르는 정열은 도대체 어찌된 것인가?
나는 이제 그녀에 대한 기도밖에는 모르게 되어 버렸네.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녀의 모습뿐이라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공상에 잠겨 있으면 나는 행복한 몇 시간을 누릴수가 있다네. 
그러나 이윽고 나는 그녀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려야만 하는 걸세! 
아아, 빌헬름이여! 내 마음은 나를 어디로 몰아가려 하는 것일까?
----그녀 곁에서 2시간이고 3시간이 흘러가면, 그녀의 모습, 그녀의 거동, 
그리고 그녀의 말의 고상한 표현들에 황홀해져 있다가도 
차차 모든 감각이 긴장되어 눈앞이 캄캄해지고 귀가 먹먹해지며, 
암살자의 손이 목을 조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네. 
그리하여 내 심장은 숨막히는 감각을 완화시키려고 세차게 고동치는데, 
그것이 오히려 감각의 혼란을 더 가중시킬뿐이라네. 
아아, 빌헬름! 
그러면 나는 자신이 이 지상에 있는지 어떤지도 모르게 되어 버리는 걸세. 
때때로 가눌 길 없는 슬픔에 압도되어 있을 때, 
로테가 자기 손에 얼굴을 묻고 실컷 울어서 가슴 속의 괴로움을 풀어 버리라고 
슬픈 위안을 해 주기라도 하면, 나는 그 자리에서 도망쳐 나와 버리지 않을 수 없네. 
그리하여 먼 들길을 헤매고 다닌다네. 길도 없는 숲속을 말일세! 
그러다가 도중에서 피로와 갈증 때문에 몇 번이나 쓰러져 눕곤 한다네. 
보름달이 하늘높이 떠오르면, 상처입은 발바닥을 잠깐이나마 쉬게 하려고 
고요한 숲 속의 구부러진 나무뿌리 위에 앉아 있다가 
정신적인 해이와 피로 때문에 어슴푸레한 달빛 속에서 꾸벅꾸벅 잠들어 버린다네. 
아아, 빌헬름이여! 참회의 수도복에 가시덤불의 띠, 그리고 암자 속에서 혼자 거처하는 일, 
그것이 내가 마음 속으로 동경하며 갈구하고 있는 위안인 것만 같네. 잘 있게! 
이 비참한 상태의 종말은 무덤밖에는 없을 것 같네. 
9월 3일
나는 여기를 떠나겠네! 고맙네. 빌헬름. 
흔들리는 내 결심을 자네가 굳혀 주었으니 말일세. 
벌써 2주일 전부터 그녀 곁에서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줄곧 해 왔으면서도 결단을 못 내렸는데, 
이젠 정말 떠나야겠네. 그녀는 시내의 아는 부인 집에 가 있네. 
그리고 알베르트는......그리고......어쨌든 나는 떠나야겠네. 
9월 10일
안타까운 밤이었네! 
빌헬름, 지금 나는 모든 것을 극복하고 있네.
이제 다시 그녀를 만나는 일은 없을 걸세. 
아아, 자네 목을 끌어안고 실컷 눈물을 흘리며, 
내 가슴 속에서 몰아치는 갖가지 생각을 마음껏 하소연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지금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쓰면서 아침이 되기는 기다리고 있다네. 
아아, 그녀는 편안히 잠들어 있네. 
다시는 나를 만나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은 꿈에도 모르고 있을 걸세. 
2시간 동안이나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는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내 계획을 발설하지 않았네. 
아아, 정말 기막히는 대화였네! 
알베르트는 저녁식사를 마치면 
곧 로테와 함께 정원으로 나오겠노라고 약속을 했었지. 
나는 언덕의 밤나무 아래에 서서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그리운 골짜기, 
조용히 흐르는 강물 저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네. 
지금까지 나는 몇 번이나 
그녀와 함께 이 곳에서 그장엄한 광경을 바라보곤 했었지. 
그러나 지금은......내가 좋아하던 가로수 길을 오락가락해 보았네. 
내 마음을 이끄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정취가 어리어 있어서, 
아직 로테를 알지 못했을 때부터 나는 곧잘 이 곳에서 발길을 멈추곤 했었다네. 
그리고 서로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가 다같이 이 곳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무척이나 기뻐했었지. 
확실히 이 곳은 내가 본 곳 중에서는 가장 낭만적인 장소일세.
우선 밤나무들 사이로 전망이 탁 틔어 있다네. 
여기에 대해서는 자네에게 벌써 꽤 여러 번 이야기한 것 같군. 
너도밤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그에 이어져 있는 우거진 나무들로 가로숫길은 더욱더 어두워지는데, 
그 끄트머리에 아늑한 장소가 있지. 거기엔 섬뜩할 정도의 정적이 깃들여 있다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데, 내가 어느 날 한낮에 처음으로 이 곳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나는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었지. 
그리고 이 곳이 장차 내 행복과 고뇌의 한 무대가 될 것 같은 
예감이 어렴풋이 들었었다네.
내가 약 반 시간쯤 이별과 재회의 애달프고 달콤한 상념에 잠겨 있으려니까, 
두 사람이 언덕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네. 
나는 얼른 달려가서 그들을 맞이하고, 
일종의 전율을 느끼면서 그녀의 손을 잡고 거기에 키스를 했네. 
우리가 언덕 위에 오르자, 때마침 달이 울창한 언덕 너머에서 떠오르기 시작하였네. 
잡담을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어두운 정자에 이르렀네. 
로테는 정자 안으로 들어가 앉았네. 
그러나 나는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서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네. 
나는 일어나서 그녀 앞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다가 다시 앉았네. 
어쩐지 몹시 불안한 기분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