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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8.

Joyfule 2009. 12. 15. 09:37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8.  
1771년 10월 20일
우리는 어제 이 곳에 당도했네. 
공사는 몸이 좀 불편해서 2,3일 집 안에 들어앉아 있을 모양일세. 
그 사람이 좀 불편해 까다롭지만 않다면 더 바랄 것이 없으련만, 
나는 알고 있네, 
운명이 나에게 가혹한 시련을 내리려 했다는 것을 
그러나 용기를 내야지! 가벼운 기분을 가지고 있으면 
무슨 일이든지 견디어 낼 수 있는 걸세. 
가벼운 기분? 이런 말을 쓰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우습군. 아아, 좀더 경쾌한 기질을 지니고 있었더라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간이 되었을 텐데. 기가 막히는 일 아닌가! 
다른 녀석들이 보잘것없는 힘과 재능을 갖고 
가슴을 쫙 펴고 보란 듯이 으스대며 내 앞을 활보하고 있는데, 
나는 내 힘과 재능에 절망하고 있으니 말일세! 
저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 주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어찌하여 그 절반을 도로 가져가시고 
그 대신 자신과 만족감을 내리지 않으셨습니까?
참아야지! 그러면 잘 되어 갈 걸세. 
친구여, 자네 말이 맞네. 
세상 사람들 틈에 끼여 날마다 일에 쫓기며, 
딴 사람들이 하는 일이며 그들의 행동을 보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나 자신과 훨씬 더 잘 타협할 수 있게 되었네. 
확실히 우리네 인간은 모든 것을 자기 자신과, 
그리고 자기 자신을 다른 모든 것과 비교하게끔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 불행하다 하는 것은 
우리가 자기 자신과 비교하는 대상에 따라서 결정되는 걸세.
그러므로 고독같이 위험한 건 또 없는 걸세. 
우리의 상상력은 그 본질상 자꾸만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 하며, 
또 문학이나 시 같은 것에 쓰여 있는 내용의 영향을 받아서 인간의 서열을 매기는데, 
그러고 보면 자기 자신은 서열의 가장 아래쪽에 있고 
자기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자기보다 훌륭하고, 
누구나 자기보다는 완전한 것같이 보이는 것같이 생각하게 마련이거든. 
제다가 자기가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첨가하고, 
더 나아가서 일종의 이상적인 생활의 즐거움까지를 덧붙이는 걸세. 
그리하여 완전무결하게 행복한 인간이 만들어지는데, 
알고 보면 그것은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낸 창조물에 지나지 않네. 
그와는 반대로, 힘이 약하면 약한 대로 전력을 다 기울여 오로지 앞을 향해 나아가면, 
설령 속도가 느리고 멀리 돌아가는 일이 거듭된다 하더라도, 
돛을 올리고 노를 저으며 나아가는 다른 자들을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앞지르게 되는 걸세.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아가게 되거나, 
혹은 앞질러 가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진정한 자각과 자신이 생겨나는 것일세.
11월 26일
이 곳에서 그럭저럭 지낼 수 있을 것 같네. 
무엇보다도 다행한 것은 할 일이 많다는 사실일세. 
게다가 갖가지 유형의 새로운 인물들이 
내 마음 속에서 다채로운 연극을 보여 주고 있다네. 
나는 C백작과 알게 되었네. 
그는 날이 갈수록 더욱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으로, 
넓은 식견을 가졌으면서도 인정이 많은 분일세. 
남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는 우정과 사랑이 넘쳐난다네. 
자기가 부탁한 일을 내가 무난히 처리해 준 후로 나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네. 
우리가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나하고 라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나하고 잠깐 얘기를 나누어 보기만 하고 알게 된 것 같네. 
또한 나로서도, 나에게 보여 주는 그의 허물없는 태도를 
뭐라고 칭송해야 좋을지 모를 지경이라네. 
뭐니뭐니해도 크고 넓은 마음의 소유자가 가슴을 탁 터놓고 대해 줄 때 
가장 참되고 따뜻한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걸세.
12월 24일
공사 때문에 이만저만 속이 상하지 않는군. 예상했던 그대로 일세. 
그렇게 고지식한 공생원은 다시없을 걸세. 
일거일동에 꾀 까다롭기가 노처녀나 다를 바가 없고,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는 일이 결코 없으며, 
누가 어떤 일을 해 주어도 감사할 줄 모르는 위인일세. 
나는 일을 간결하게 처리하기를 좋아하고, 
일단 처리한 일은 끝난 것으로 돌리고 다시 더 뒤적거리지 않는 성미지. 
그런데 공사는 내가 써낸 초안을 되돌려 주면서 이렇게 말하는 걸세. 
"이만하면 괜찮지만, 좀더 잘 검토해 보게. 
좀더 좋은 말, 더욱 적합한 접속사를 찾아 내게 될 테니까"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네.
<그리고>라든가 그 밖의 대수롭지 않는 접속사 하나가 빠져도 안 된다는 걸세. 
내 문장에는 때때로 도치법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건 그에게 있어서는 불구대천지 원수라네. 
복합문을 쓸 경우에는 상투적인 틀에 맞추어 쓰지 않으면, 
그는 도무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이런 위인을 상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재난일세.
C백작이 나를 신뢰해 주는 것이 유일한 구원일세. 
최근에 그분은 나에게 매우 솔직하게 
공사의 완고하고 까다로운 태도에 대한 불만을 털어 놓았네.
 그런 사름들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남들까지도 괴롭게 만든다는 거야.
"그러나"하고 백작은 말했네. 
"체념하고 순응할 수밖에 없지. 험한 산을 넘는 나그네와 같은 마음으로 말일세. 
물론 산이 없으면 길을 가기가 훨씬 편하고 거리도 가깝지.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산이 거기 있으니 넘어가지 않을 수 없거든"
공사 영감도 백작이 자기보다는 
나에게 더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있는 모양일세. 
그게 못마땅해서 기회 있을 때마다 나를 상대로 백작의 험담을 늘어놓는다네. 
물론 나는 그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지. 그래서 사태는 점점 더 악화되는 걸세.
어저께는 몹시 분개하였네. 
백작을 헐뜯으면서, 은근히 나까지 휩싸서 빈정거리는 걸세.
"이런 세속적인 사무처리에는 백작도 뙈 유능하지. 
일도 빠르고 문장도 괜찮거든. 그러나 기초적인 학식이 결여되어 있어. 
이건 모든 문장가들에게 공통된 폐단이지"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어때, 좀 뜨끔하지?>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네. 
그러나 나에게 그런 말이 통할리 없지. 
나는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그런 태도를 취하는 인간을 누구보다도 경멸하니까. 
나는 지지 않고 격한 말투로 되받아 주었네.
"백작은 인품으로나 학식으로나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분입니다. 
자기의 정신을 넓게 펼쳐서 수많은 사물에 작용시키며, 
그 위에 이러한 정신활동을 세속적인 생활에 있어도 지속해 나가는 일을 
그 분처럼 성공적으로 이룩하고 있는 예를 저는 일찍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해 주었으나, 이런 말은 공사에게는 우이독경일세. 
나는 더 이상 그의 잠꼬대를 들음으로써 속을 끓이기 싫었으므로, 
그만 그 자리에서 물러나왔네. 
이렇게 된 것도 모두 자네들 책임일세. 
마구 쓰석거려서 나에게 굴레를 씌우고, 
활동의 공덕이라는 것을 입을 모아 찬양하며 나를 부추긴 것은 자네들이니까 말일세. 
활동이 다 뭔가! 
밭에 감자를 심거나, 말을 몰고 도시로 밀을 팔러 가거나 하는 편이 
지금의 나보다 오히려 더 나은 활동을 하고 있는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