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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21.

Joyfule 2009. 12. 18. 09:25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21.  
나는 안면이 있는 한두 사람에게 말을 건네었는데, 
이상하게도 모두들 말수가 적었네.
왜들 이러는 거지, 하면서 나는 B양 쪽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네. 
그래서 나는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여자들이 홀 한구석에서 수군덕거리고, 
그것이 남자들에게로 전파되었으며, 
이윽고 S부인이 백작에게 이야기를 해서
(이것은 모두 나중에 B양이 나애게 이야기해 줘서 알았지), 
마침내 백작이 나에게로 걸어왔네. 
그리하여 그는 나를 창가로 데리고 가서는,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하고 말문을 열었네. 
"우리네 신분상 관례는 아주 미묘하거든. 
자네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모두를 아무래도 못마땅한 모양일세. 
나야 아무렇지도 않지만......"
"각하" 하고 나는 말을 가로막았네. 
"대단히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벌써 깨달았어야만 할 일입니다. 
각하께서는 저의 이러한 결례를 용서해 주실 줄 믿습니다. 
아까부터 그만 물러가야지 물러가야지 하면서도, 
미련스럽게 어물어물하다가 이렇게 됐습니다".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덧붙이고 나는 절을 하였네.
백작은 어떤 감회가 어린 동작으로 내 손을 잡았는데, 
그것으로 모든 말을 대신하고 싶었던 모양일세 
나는 그 고귀한 무리들 사이를 슬며시 빠져 나와서, 
2륜마차를 타고 M으로 갔네. 
그리하여 그 언덕 위에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호메로스를 펼치고, 
오딧세우스가 돼지치기에게 대접을 받는 감동적인 대목을 읽었지. 흐뭇한 기분이었네.
해가 진 뒤에, 식사를 하러 시내로 돌아왔네.
레스토랑에는 아직 손님이 별로 없었네. 
몇사람의 단골들이 구석자리에서 테이블보를 벗겨 놓고 주사위를 굴리고 있었네. 
거기에 아델린이라는 고지식한 친구가 들어오더니, 
모자를 벗고 나에게로 다가와서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었네. 
"당신 화가 났겠군요?"
"뭐가요?"하고 나는 되물었지. 
"백작이 당신을 파티에서 내쫓았다면서요?" 
"파티 따위가 뭐 말라빠진 거요!" 하고 나는 말했지.
 "밖에 나와서 시원한 바람을 쐬니까 기분이 상쾌해졌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군요"하고 아델린은 말했네. 
"당신이 대수롭쟎게 생각하니까 무엇보다도 다행이에요. 
그런데 아무래도 불쾌한 건 벌써 어디를 가나 그 소문이 퍼져 있다는 사실이오"
그 소리를 들으니까 비로소 오늘 있었던 일이 충격적으로 되살아나더군. 
<그렇다면 식사하러 왔다가 
내 얼굴을 흘끔흘끔 보고 있던 녀석들은 모두 그 때문이었단 말인가!>
그렇게 생가갛니 분노가 치밀더군.
오늘은 어디를 가나 동정을 받는 신세가 되었네. 
더구나 나를 시기하고 있던 녀석들이 의기양양해서, 
<이제 깨달았겠지, 머리가 남보다 좀 뛰어나다고 
신분이나 관례를 초월해도 좋은 것처럼 생각하는 
거만한 사내가 어떤 꼴을 당하게 되는가를>하는 등 
온갖 험담을 늘어놓고 있는 것을 들으면, 내 심장에 칼을 꽂고 싶은 심정일세. 
<남들이 뭐라든 자기는 자기야. 무시해 버리면 그만 아닌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하찮은 건달들이 남의 약점을 잡고 
이러쿵 저러쿵 지껄여 대는 소리를 꾹 참고 얌전히 듣고 있을 수 있는 인간이 있다면, 
그런 사람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싶네. 
아아, 그 험담들이 점혀 근거 없는 소리라면 못 들은 체해 버릴 수도 있으련만.
3월 16일
모든 것이 나를 화나게 하고 있네. 
오늘 가로숫길에서 B양을 만났네. 
우리가 일행에서 조금 떨어지게 되자, 
나는 저번의 그녀의 태도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었네.
"어머나, 베르테르 씨"하고 그녀는 진정어린 목소리로 말했네.
 "제가 불안스러워했던 것을 그런 식으로 해석하셨어요? 
제 성질을 잘 아실 텐데요.
 홀에 들어섰을 때부터 선생님 때문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몰라요.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빤히 알 수 있었거든요. 
선생님께 귀띔을 할까 하고 몇 번이나 망설였는지 모른답니다. 
S부인과 T부인은 선생님과 동석할 바에야 남편과 함께 퇴장하겠다고까지 했거든요. 
그리고 백작으로서도 그 분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지요. 
그래서 일이 그 지경에 이른 거예요"
"그랬었나요?"하고 나는 충격을 감추며 반문했네. 
그저께 아델린이 나에게 한 말이 그 순간에 열탕처럼 내 혈관 속을 소용돌이쳤네.
"저도 그 때부터 얼마나 가슴이 쓰라렸는지 몰라요"하고 
다정스러운 그 여인은 눈물을 글썽거렸네.
나는 자제력을 잃고, 그녀의 발 아래 꿇어 엎드릴 듯이 몸을 구부렸네. 
"분명히 말해 주십시오"하고 나는 외쳤네.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네.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네. 
그녀는 눈물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고, 그것을 닦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네.
 "저의 아주머니를 아시지요? 
그 분도 아세요? 베르테르 씨, 
아주머니는 엊저녁에도 또 오늘 아침에도, 
제가 선생님과 교제를 하는 데 대한 설교를 늘어놓으셨어요.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어요. 
선생님을 변호하려 했지만, 제가 생각한 것의 절반도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아주머니가 말도 못 하게 하는걸요"
그 한마디 한마디가 칼끝처럼 내 가슴을 찔렀네. 
그녀는 그런 소리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은혜로운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거지. 
그래서 그녀는 이야기를 더 계속하여, 이런 소문이 퍼질 것이라느니, 
전부터 나를 비난하고 있던 사람들은 남들을 대할 때의 내 거만한 태도와 
사람을 업신여기는 듯한 거동에 벌이 내렸다면서 
고소하게 여기고 기뻐할 것이라느니 하는 소리들을, 
빌헬름이여, 진심으로 동정어린 목소리로 들려 주었다네. 
그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나는 허탈상태에 빠졌네. 
지금도 미칠 것만 같네. 
차라리 누군가가 면대해 놓고 나를 비난한다면, 
그 놈의 가슴을 단도로 푹 찔러 버릴 수 있으련만. 
피를 보면 얼마쯤 마음이 진정될 거야. 
아아, 나는 백 번도 더 칼을 손에 쥐었네. 
이 답답한 가슴에 바람구멍을 내고 싶었던 걸세. 
좋은 혈통을 이어받은 말은 지나치게 흥분했을 때 
본능적으로 혈관을 물어 뜯어 호흡을 진정시킨다고 하더군.
나도 그러고 싶어지네. 혈관을 절개함으로써 영원한 자유를 얻고 싶은 걸세. 
3월 24일
나는 궁정에 사표를 제출하였네. 
아마도 수리될 걸세. 미리 자네들의 허락을 받지 않은 점은 아무쪼록 용서하게나. 
어차피 나는 이 고장을 떠날 수밖에 없으니까. 
나를 만류하기 위해 자네들이 충고할 말도 알고 있네. 
이 사실을 우리 어머니께 넌지시 좀 전해 주기 바라네. 
나 자신을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으니, 
내가 어머니께 힘이 되어 드리지 못하더라도 양해해 주십사고. 
물론 어머니는 슬퍼하시겠지. 
모처럼 아들이 추밀원 고문관이나 공사가 되기를 지향하며 발걸음을 내디뎠는데, 
이렇게 중도이폐하고, 망아지는 마굿간으로 되돌아가게 된 셈이니까! 
아무튼 이 문제에 대해선 자네들 좋을 대로 생각하게나. 
내가 유임할 수 있었을 것이라든가, 
유임했어야만 할 것이라든가 마음대로 말해도 괜찮지만, 
아무튼 나는 떠나서 어디로 갈 거냐고 묻겠지? 
이 고장에 XX공작이라는 분이 있는데. 
나와 교제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는 모양일세. 
내 결심을 전해 듣고는 함께 자기의 영지로 가서 
거기서 아름다운 봄을 같이 지내지 않겠느냐고 나를 초대해 주었다네. 
나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행동해도 좋다는 약속도 해 주었고, 
어느 정도 서로 이해하고 있는 터이기도 해서, 
운을 하늘에 맡기고 그와 동행할 작정일세. <통지서 대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