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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20

Joyfule 2009. 12. 17. 04:06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20.  
 아아, 그 그리운, 그 정다운 방에서 당신 발 아래 앉아 있을 수 있다면 
우리의 그 아이들이 모두 내 주위를 깡총거리며 돌아다녀 주었으면. 
아이들이 너무 떠들어서 당신을 귀찮게 하면, 
나는 무서운 옛날 이야기를 꺼내 애들을 내 주위에 모을 텐데. 
태양은 찬연한 설경 저 너머로 장려하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눈보라도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돌아가서 우리 속에 감금되어야만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알베르트 씨는 당신 댁에 있는지요?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주여, 이런 질문을 용서하옵소서! 
2월 8일
1주일 내내 아주 고약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네. 
그러나 나로서는 오히려 고마운 기분일세. 
왜냐하면 내가 이 곳에 온 이후로 아무리 날씨가 좋은 날이라도, 
딴 사람으로 인해 그런 날씨를 잡쳐 버리거나 
기분이 언짢아지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일세. 
그래서 비가 내리거나 눈보라가 치거나, 
아니면 길바닥이 얼어붙거나 눈이 녹아서 진흙탕이 되거나 하면 나는 한시름 놓는다네. 
<집에 있는 게 바깥 세계에 나가는 것보다 오히려 낫지.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으련만. 아무튼 잘 된 거야>하고 말일세. 
아침에 해가 떠오르고 날씨가 좋을 듯하면, 
나는 언제나 이렇게 외치지 않을 수 없네.
<자, 오늘도 녀석들은 
또 하늘이 내리신 은총을 저희들끼리 서로 빼앗으려고 악다구니들을 하겠군!> 
무릇 그들이 서로 빼앗으려고 악다구니를 하지 않고 지낼 수 있을 만한 사물은 하나도 없지. 
건강도 명성도 기쁨도 휴양도. 
그것은 대체로 어리석음이나 무지, 좁은 도량 등이 그 원인인데, 
그런 주제에 그들의 말에 의하면, 최선의 호의로써 남을 위해 그런다는 걸세. 
때때로 나는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부탁하고 싶어진다네. 
제발 그렇게 미치광이들처럼 자신의 창자를 마구 휘젓는 짓은 하지 말아 달라고 말일세. 
2월 17일
공사와 나는 더 이상 타협해 나갈 수 없을 것 같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람일세. 
그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참으로 가소로와서, 나는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내 나름대로의 판단에 따라 적당히 처리해 버리기도 한다네. 
그것이 그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당연하지. 
그런 일로 해서 그는 최근에 나에 대한 불만을 궁정에 보고한 모양일세. 
그 결과, 나는 장관으로부터 가볍긴 하지만 아무튼 질책을 받았네. 
그래서 사표를 낼 결심을 했지. 
그런 참에 장관으로부터 사신이 왔다네. 
그 편지를 읽고 나는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그 고결하고 깊은 사려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네. 
장관은 내가 너무나 감각적인 경향이 있음을 훈계한 다음, 
활동성이라든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영향, 
일을 하는 데 있어서의 철저성 등에 대하여 내가 지니고 있는 
패기만만한 생각을 청년다운 기개로 높이 평가하고 
그것인 참되게 활용되어 유효한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라고 궈고해 주었네. 
덕택에 1주일쯤은 용기를 얻고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네. 
마음의 평화라는 것은 값진 걸세. 
그것 자체가 하나의 기쁨이라고 할 수 있지. 
친구여, 다만 이 아름답고 귀중한 보석이 쉬 부서지지만 않으면 좋으련만. 
2월 20일
내 사랑하는 분들이여, 하느님이 당신들을 축복하고, 
나에게는 내려질 수 없는 좋은 날들을 모두 당신들에게 베풀어 주기를 빕니다.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알베르트 씨, 
당신이 나를 속인 것에 대하여. 
나는 당신들이 결혼날짜를 알려 줄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날 나는 엄숙히 로테의 실루엣을 벽에서 떼어 내어, 
그것을 다른 서류들 속에 넣어 둘 생각이었지요. 
지금 당신들은 하나로 맺어졌고, 실루엣은 여전히 벽에 걸려 있습니다. 
이제 그냥 놓아 두렵니다. 
이대로 두어서 안 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렇습니다, 
나는 당신들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누를 끼치는 일 없이, 로테의 마음 속에 있는 것입니다. 
나는 그 자리를 유지해 나갈 것이며, 그러지 않고는 베길 수가 없습니다. 
만일 로테가 나를 잊어버린다면 나는 미치고 말 것입니다. 
알베르트 씨, 이 생각 속에는 지옥이 숨어 있습니다. 
알베르트 씨,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 그대 천사여, 안녕! 
3월 15일
불쾌한 일을 당했네. 
이제 더 이상 이 곳에 있을 수 없네. 제기랄! 
이 불쾌감은 보상할 길이 없네. 
이렇게 된 것도 모두 자네들 책임일세. 
나를 부추기고, 재촉하고, 졸라서,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이 자리에 앉힌 것은 바로 자네들이니까 말일세. 
이런 파국을 초래한 근원은 모두 나의 극단적인 사고방식에 있다고, 
자네들은 이번에도 그렇게 말할 테니까, 
나는 여기에 사건의 자초지총을 있는 그대로 간명하게 적겠네. 
연대기의 기록자와 같은 필치로 말일세. 
C백작이 나를 아껴 주고 돌보아 주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고, 
자네에게도 벌써 몇 번인가 이야기했었지. 
어제는 식사에 초대를 받아서 그 C백작 댁에 갔었다네. 
저녁에는 그 집에서 상류사회 신사 숙녀들의 파티가 열리기로 되어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고, 나와 같은 졸때기가 
그런 모임에 동석할 수 없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었네. 
아무튼 나는 백작과 식사를 같이 하였고, 
식 후에 홀 안을 왔다갔다 하면서 백작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마침 들어온 B대령과도 대화를 나누었네. 
그러는 사이에 파티 시간이 다가왔네. 
그러나 나는 그걸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네.
근엄한 S부인이 남편과 더불어 들어왔네. 
그들은 거위 같은 딸을 데리고 왔었는데, 
그녀는 납작한 가슴에 근사한 코르셋으로 허리를 꽉 죄어붙인 아가씨일세. 
이 세 사람은 걸어 들어가면서,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거만한 귀족적인 눈매와 콧구멍을 보여 주었네. 
이런 족속들을 보면 그야말로 속이 메스꺼워지는터라, 
나는 이를 계기로 그만 물러나와야겠다고 생각하고, 
C백작이 그들과의 시시한 잡담에서 빠져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마침 그 때 그 B양이 들어왔네. 
이 아가씨를 만나면 언제나 조금은 기분이 밝아지므로, 
나는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그녀의 의자 뒤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지. 
그러데 조금 지난 연후에야 비로소 깨달았는데, 
B양은 나하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여느 때와는 달리 
뭔가 서먹서먹하고 난처한 듯한 태도더라 이 말일세. 
나로서는 참으로 뜻밖이었네. 
<이 여자도 다른 무리들과 마찬가진가>, 
이런 생각을 하니 속이 터질 것 같아서 그만 물러나오려 했네. 
그러나 나는 한동안 거기에 눌러 있었네. 
그녀의 그런 태도가 나의 잘못된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고, 
또 조금 있으면 그녀가 다정한 말 한마디쯤은 해주리라는 기대를 했기 때문이었다네. 
그럭저럭하는 사이에 손님들이 그득히 모여들었네. 
프란츠 1세의 대관식 무렵의 예복을 입은 F남작, 
직책 관계상 귀족 칭호를 받고 있는 궁중 고문관 R과 귀가 어두운 그의 부인. 
시대에 뒤떨어진 의상의 해진 부분을 
요즘 유행하는 천으로 기운 초라한 옷차림의 J씨도 빠드릴 수 없지. 
이러한 무리들이 줄을 이어 들이닥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