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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9

Joyfule 2009. 12. 16. 08:33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9.  
만일 내 말이 틀렸다면,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앞으로 10년 동안 
지금 매여 있는 이 노예선 속에서 뼈가 닳도록 일하겠네. 
게다가 이 곳에서 서로 곁눈질을 하면서 눈치를 보고 있는 
비루한 인간들의 한심스러운 그 비참하고 따분함. 
서로 한 발짝이라도 먼저 기어 올라가려고 쉴새없이 눈을 번득이고 있는 출세욕. 
서글픈 집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사람들. 
가령 여기에 한 여인이 있다고 치세. 
그녀는 누구한테나 자기네 가문과 영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녀를 잘 모르는 사람은 그 이야기를 듣고, 어리석은 여자로군, 
대단찮은 가문과 영지를 내 세우고 다니다니,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걸세. 
그러나 사실 그 여인은 이 근처 태생으로 서기의 딸에 지나지 않는다네. 
이렇게 스스로 망신을 자초하는 분별이 없는 족속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네. 
날이 갈수록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는 일이지만, 
친구여, 자신의 척도로 남을 판단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 일세.
 나는 나 자신의 일만으로도 힘에 벅차고 가슴 속에 이토록 
폭풍우가 휘 몰아치고 있으니, 남의 일에는 참견하고 싶지도 않네. 
다만 나로 하여금 나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뿐일세.
무엇보다도 비위에 거슬리는 것은 숙명적인 그 시민근성일세. 
물론 나도 계급의 차별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나 자신이 그것으로 이익을 보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네. 
다만 내가 이 지상에서 지극히 미미한 기쁨이나 또는 행복을 맛볼 수 있게 된 때에 
그런 것이 들어서 방해를 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는 것일세. 
요즘 나는 산책길에서 B라는 아가씨를 만나 서로 알고 지내게 되었네. 
애교있는 아가씨로, 딱딱한 격식을 차리는 생활 속에 묻혀 지내면서도 
선천적인 순박성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네.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우리는 서로 마음이 통해서, 
작별할 때 내가 <댁으로 한 번 찾아가도 괜찮겠습니까?>했더니, 
그녀는 아무 거리낌 없이 승낙을 하는 것이었네. 
나는 그녀를 찾아갈 적당한 때가 오기를 기다리느라고 조바심이 날 지경이었다네. 
그 아가씨는 이 고장 태생이 아니고 아주머니 뻘 되는 친척집에서 묵고 있는 중이라네. 
그 나이 많은 부인은 인상이 그다지 좋지 못했네. 
나는 그 부인에게 신경을 써서 이야기도 주로 그녀와 나누었는데, 
반 시간도 되기 전에 사정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네. 
사정이란 나중에 아가씨가 나에게 털어놓은 것으로, 
그 부인은 그 나이에 만사가 여의치 못하다는 걸세.
이렇다할 만한 재산도 없고 재능도 없으며, 
조상의 족보 이외에는 의지할 만한 것이 없다는 걸세. 
그녀를 보호해 주는 것은 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계급뿐이요, 
낙이라고는 2층 창문으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일 정도라네. 
젊었을 적에는 제법 미인이었던 모양으로 마음내키는 대로 즐기며 지냈다는데, 
변덕스러운 성격 때문에 여러 명의 젊은이들을 괴롭혔다는 걸세. 
한창때를 지난 후에는 어떤 나이 많은 장교와 동거생활을 했는데, 
그의 사랑을 받으며 얌전히 지냈다네. 
그 장교는 상당한 생활비를 제공하며 
그녀의 40대 반려자로 지내다가 얼마 후에 죽었다네. 
지금 그녀는 50대로 의지할 곳도 없는 신세인데, 
마침 상냥한 조카딸이 있어 그녀를 돌보아 주며 여생을 보내는 모양이었네.
1772년 1월 8일
한심한 무리들일세. 
정신은 온통 격식에만 사로잡혀서 자나깨나 머릿속을 꽉 메우고 있는 생각은, 
어떻게 하면 식탁에서 한 자리라도 더 상석에 앉을 수 있을까, 하는 걸세! 
달리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닐세. 
할 일이 없기는커녕 태산같이 쌓여 있는 실정이지.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느라고 중요한 일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는 걸세. 
지난주에는 썰매놀이를 갔었는데, 
거기서 또 말썽이 생겨서 모처럼의 즐거움을 잡쳐 버리고 말았네. 
어리석은 녀석들일세. 
원래 지위 같은 건 문제가 아니고,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가 
최고의 역할을 하게 되는 일은 존처럼 없는 법인데, 그런 것을 알지 못하는 걸세. 
대신들의 뜻에 따라 조종되는 왕이 그 얼마나 많으며, 
또 비서관들의 뜻대로 움직이는 대신들이 그 얼마나 많은가! 
그런 경우, 누가 제일이란 말인가? 나더러 말하라면, 
다른 사람들의 의중을 꿰뚫어보고, 자신의 정열과 능력을, 
자기 계획을 성취하기 위하여 
구사 할 수 있는 역량이나 지략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라 하겠네.
1월 20일
사랑하는 로테, 
당신에게 이 글을 쓰지 않고는 베길 수가 없습니다. 
나는 지금 시골 농가의 조그마한 방에 있습니다. 
휘몰아치는 눈보라 때문에 이리로 피난을 온 것입니다. 
그 서글픈 둥지와도 같은 D시에서 나와 인연이 없는 사람들, 
내 망음에 전혀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들 틈을 돌아다니고 있었을 때에는,
당신에게 편지를 쓸 만한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오두막집에 혼자 적막하게 갇혀 
눈보라가 펑펑 쏟아지며 창문을 세차게 흔드는 속에서, 
내가 무엇보다도 먼저 생각한 것은 당신이었습니다. 
이 집에 들어서는 순간, 당신의 모습, 당신의 추억이, 
아아, 로테! 순결하고 따뜻하게 나를 엄습했습니다. 
행복한 순간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하자면 나는 요지경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난장이와 조랑말들이 내 눈앞에서 
바삐 돌아가며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자신에게 물어 봅니다. 
혹시 착각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나도 글들과 같이 연기를 하고 있으면서, 
아니, 꼭두각시처럼 조종을 당하고 있으면서, 
때때로 곁에 있는 연기자의 나무손을 잡았다가는 소스라치게 놀라곤 합니다. 
밤이 되면, 내일은 해가 뜨는 것을 바라보며 즐기리라 결심하지만, 
막상 아침이 되면 침대에 그대로 누워 있는 것입니다. 
낮에는 또 낮대로, 오늘 저녁이 되면 방 안에 그대로 틀어박혀 있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일어나며, 무엇 때문에 잠자리를 들게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 생명을 발효시켜 주고 있던 효모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전에는 마음을 약동케 하는 것이 있어서 밤이 깊어도 졸음을 느끼지 못했고, 
아침이 되면 퍼뜩 잠에서 깨어나곤 했습니다만 
그런 것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겁니다.
참으로 여성다운 여성을 이 고장에서 한 사람 발견했습니다. 
B라는 아가씨로, 당신을 닮은 여자입니다. 
혹시 누군가가 당신을 닮을 수 있다고 한다면 말입니다.
<어머!> 하고 당신은 말하겠죠.<비행기를 잘도 태우시는군요>. 
아닌게 아니라 그것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얼마 전부터 나는 남의 비위를 꽤 잘 맞추게 되었습니다. 
제담도 곧잘 한답니다. 
그래서 이 곳 부인네들은 나만큼 칭찬을 잘 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거짓말도 잘 한다는 말을 덧붙여야 하겠지요. 
아무래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그렇게 칭찬을 잘 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B양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그 아가씨는 풍요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그녀의 푸른 눈이 그것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아가씨는 자기의 신분이 자신의 소망을 
하나도 이루어 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 신분을 짐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녀는 또 언제나 시끄러운 것으로부터 도피하려 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곧잘 몇 시간씩 순수한 행복에 충만한 
전원생활을 상상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아아, 
그리고 당신에 대한 생각도 물론 빼놓을 수 없지요! 
그녀가 당신에 대하여 충심으로 경의를 표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의무적인 것이 아니라, 자진해서 그렇게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언제나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며,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