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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23.

Joyfule 2009. 12. 21. 05:07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23.  
 6월 11일
자네가 뭐라고 하든 난 이 이상 더 이 곳에 머무를 수가 없네. 
공작은 나를 한껏 극진히 대접해 주고 있으나 여긴 정주할곳이 못 되네. 
우리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공통되는 점이 없어. 
공작은 극히 세속적인 지성인일세. 
그와의 교제는 나에게 재치있게 쓰여진 책을 읽는 것 이상의 즐거움을 주지는 못하네. 
1주일간 이 곳에 더 있다가 그 뒤엔 다시 정처없는 여행을 떠나야겠네. 
여기서 내가 한 일 가운데 최상의 것은 스케치일세.
공작은 예술에 대해 어느 정도의 센스는 갖고 있네. 
만일 역겨운 학문적인 취향이나 틀에 박힌 상투적인 술어에 얽매이지 않았다면, 
더욱 날카로운 감수성을 지닐 수 있었을 걸세. 
내가 상상력을 동원하여 자연과 예술의 세계에 대해 여러 가지로 설명해 줄 때, 
그는 진부한 용어를 들고 나와 그 한 마디로 문제가 해결된 듯이 여긴다네. 
그럴 때 나는 몹시 안타깝다네. 
6월 16일
그렇다네. 
나는 다만 한 사람의 나그네. 
이 지상의 한 순례자일세. 
자네들은 그 이상의 존재일까? 
6월 18일
어디로 갈 작정이냐구? 
자네에게만 살짝 알려 주지. 
앞으로 2주일 동안은 이 곳에 있어야만 하네. 
그 뒤엔 XX광산을 찾아가야지, 
하고 나 자신을 속이고 있었는데 사실인즉 그건 구실에 지나지 않네. 
나는 다만 로테 곁으로 다시 가고 싶은 걸세. 
그게 내 마음의 전부야. 나는 그런 나 자신의 마음을 맘껏 비웃고 있네. 
그러나 결국은 내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 줄 수밖에 없네.
7월 29일
모든 것이 그것으로 족할 텐데, 내가 그녀의 남편이라면! 
아, 저를 만드신 하느님, 
당신께서 그런 기쁨을 제게 내려 주셨더라면 저는 평생토록 끊임없이 기도를 올렸을 것입니다. 
당신께 항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이 눈물을 용서하소서. 이 덧없는 소망을 용서하소서.
그녀가 내 아내라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그녀를 내 품에 껴안을 수 있다면. 
아아, 빌헬름이여, 
알베르트와 결혼하기보다는 나와 결혼하는 것이 더 행복해질 수 있었던 걸세. 
알베르트는 그녀의 마음 속의 소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인물이 못 되네. 
사물에 대한 감각에 모종의 결함이-이건 자네 좋을 대로 해석하게나-있네.
예를 들면, 마음에 드는 책을 같이 읽고 있다가 내 마음과 로테의 마음이 
서로 공감하여 하나로 합쳐지는 그런 대목에서 그의 심장은 끄떡도 하지 않네. 
로테와 내가 약속이라도 한 듯 절로 감탄의 소리를 내는 경우에도 역시 마찬가지라네. 
사랑하는 빌헬름! 
그러나 그는 로테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네. 
그만한 사랑이라면 어떠한 보답이라도 받을 만한 가치가 있지! 
반갑지 않은 손님이 와서 방해를 당했네. 
눈물은 말라 버리고 마음이 몹시 산란하네. 잘 있게나, 빌헬름. 
8월 4일
이런 꼴을 당하는 것은 나만이 아닐세. 
인간은 누구나 희망에 속고 기대에 배반당하는 거지. 
보리수 아래에 살고 있는 그 마음씨 고운 부인을 찾아가 보았네. 
큰아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나왔네. 
그 소리에 이끌리어 그 아이의 어머니도 나왔는데, 전과는 달리 기운이 없어 보였네. 
그녀가 한 첫마디는 이랬다네. 
"아이구, 선생님이시군요. 우리 한스가 죽었어요" 
그 막내동이 얘기였네.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혔네. 
"그리고 바깥양반도" 하고 그녀는 말했네.
 "스위스에서 돌아오긴 했지만, 빈털터리였어요.오는 도중에 열병에 걸려, 
친절하신 분들이 돌봐 주지 않았더라면 구걸을 하며 올 뻔했답니다" 
나는 할말을 잃고 아이의 손에 돈 몇 푼을 쥐어 주었을 뿐일세. 
그 어머니가 사과 몇 알을 주기에 그것을 받아들고, 나는 슬픈 추억의 장소를 떠났네. 
8월 21일 
내 마음은 손바닥을 뒤집듯이 잘도 변한다네. 
어떤 때는 날이 밝아 오는 것같이, 인생의 즐거움이 다시 찾아올 것 같은 마음이 든다네, 
아아! 그러나 그것은 다만 한 순간에 지나지 않네.
아련한 꿈속 같은 기분에 잠겨 있을 때 
<만일 알베르트가 죽는다면?>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다네. 
그렇게 되면 아마도 내가......그리고 고녀가......그리고......
이런 공상을 끝없이 추적해 나가다가 마침내 심연의 일보 직전까지 가는 걸세. 
그랬다가는 몸서리를 치고 뒤로 몰러선다네.
성문을 지나 로테를 무도회에 데리고 가기 위하여 
처음으로 마차로 지나간 그길을 걸어가 보니, 
참으로 많아 변했더군! 모든 것이 다 사라져 버렸어! 
지난날의 그 모습은 흔적도 없고, 그 때의 그 감정은 자취조차 없네. 
일찍이 전성기를 자랑한 영주가 임종하면서 사랑하는 아들에게 물려주었던 
견고하고 호화로운 성곽이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 버린 
폐허에서 망령이 되어 돌아 다니는 기분일세.
9월 3일
가끔 가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지네. 
내가 그녀를 이토록 깊이, 이토록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그녀를 사랑할 수가 있으며, 
그 사랑이 용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말일세, 
나에게는 그녀 이외의 세계는 없네. 
그녀 이외에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단 말일세.
자연의 계절이 가을로 접어드는 데 따라서 
내 마음도, 또 내 주변도 가을이 되어 가네. 
나라는 나무의 잎은 누렇게 물들고,
 내 주변의 나뭇잎들은 벌써 떨어져 버렸네. 
언젠가 어느 농가에서 머슴살이하던 집에서 쫓겨났다고들 하는데, 
그 이상의 소식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네. 
그런데 어제 다른 마을로 가는 도중에 우연히 그 청년을 만났네. 
말을 걸었더니 청년은 사정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그것을 듣고 나는 거듭거듭 감동하였네. 
자네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 자네도 곧, 과연 그럴 만하구나 싶어질 것일세. 
그러나 내가 무엇 때문에 그러한 이야기를 자네에게 하려는 거지? 
어째서 나는 나를 불안하게 하고 슬프게 하는 일을
 내 가슴 속에만 간직해 두지 못하는 걸까? 
어째서 자네 마음까지 어둡게 만드는 걸까? 
어째서 언제나 자네가 나를 측은해 하고 책망할 기회를 주는 걸까? 
아마 이것도 내가 타고난 운명인가 봐! 
처음에 그는 잔잔한 슬픔을 드러내 보이며 내 물음에 대답했네. 
얼마간 머뭇거리는 기색이 엿보였지. 
그러나 그것도 처음에만 잠깐 그랬을 뿐, 
이윽고 자기와 나와의 관계를 새삼스레 깨닫기라도 한 것처럼, 
탁 터놓고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고는 불행한 신세를 하소연하는 것이었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그대로 자네에게 들려 주고, 자네의 판단을 들었으면 싶네. 
그는 고백하였네. 아니, 고백하였다기 보다는 
추억에 따르는 행복감과 쾌감에 젖은 듯한 어조로 이야기를 하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