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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25.

Joyfule 2009. 12. 23. 01:52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25.  
 9월 15일
빌헬름이여, 이 지상에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귀중한 사물에 대하여 
이해심도 없고 감정도 없는 인간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미칠 것만 같네. 
성XX의 충직한 목사를 찾아갔을 때,
로테와 함께 내가 그 그늘에 앉았던 
호두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자네도 기억하고 있겠지? 
그것은 참으로 근사한 나무였네! 
그 이후로 언제나 내 마음을 그지없는 기쁨으로 충만케 해 주고 있었다네! 
그 나무가 있음으로 해서 목사관이 얼마나 친근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네! 
그 시원스러운 나무 그늘! 그 무성하고 멋들어진 가지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먼 옛날에 
나무를 심었던 성실한 목사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네.
학교 선생님은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다면서 그 목사의 이름을 말해 주었지. 
훌륭한 분이었다고 하는데,그 나무 아래에서 
그 사람의 이름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성스러운 기분이 들곤 했었네. 
어제 그 호두나무가 잘렸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학교 선생님의 눈에는 눈물이 그득하였네. 
베어 버리다니! 나는 미칠 것만 같네. 
맨 처음에 도끼로 내려 찍은 녀석을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야. 
가령 그런 나무가 늙어서 말라죽었을 경우라도 
슬픔으로 몸이 까칠재질 지경인 내가, 
이 일을 잠자코 보고 있어야만 하다니. 
친구여,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이 있다네! 
인간의 감정이란 참 묘한 걸세. 
온 마을사람들이 투덜거리기 시작한 거야. 
목사 부인은, 버터며 달걀이며 그 밖의 선사품이 들어오는 양이 줄어드는 것을 보고, 
자기가 마을사람들에게 얼마나 인심을 잃었는지 깨닫게 될 걸세. 
나무를 베게 한 장본인은 바로 그 여자거든. 
새로 부임한 목사 부인은(전의 노목사는 돌아가셨네)마르고 병약한 여잔데, 
그녀가 세상사에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네.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가져 주지 않기 때문이지. 
학자들 틈에 끼여서 성서 연구에 골몰하고, 
한창 유행하는 도덕적 비판적 그리스도교 개혁에 참여하였으며, 
라바테르의 광적인 신앙에 어깨를 으쓱거리던 끝에 건강이 몹시 나빠졌는데, 
그렇게 되고 보니까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대지에선 
아무런 기쁨도 느낄 수 없게 되어 버린 어리석은 여잘세. 
그런 여자니까 그 호두나무를 베어 버리게 할 수 있었던 거지. 
그녀의 구실인즉 이렇다네. 
낙엽이 지면 뜰이 지저분해지고 잎이 무성할 때는 햇빛을 가리고 
호두가 열리면 아이들이 돌을 던지니 신경에 거슬려서, 
케니코트와 제믈러, 그리고 미야엘리스의 비교연구를 할 수가 없다는 걸세. 
마을 사람들, 그 중에서도 특히 노인들이 무척 불만스러운 듯하기에 나는 물어 보았네. 
"여러분들은 어째서 보고만 계셨나요?"
 "이 고장에선 촌장이 일단 작정을 하면 우리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거든요"
하는 대답이었네. 
그런데 한 가지 고소한 일이 생겼다네. 
촌장과 목사는 그 나무를 판 돈을 둘이서 반반씩 나누어 갖기로 합의를 보았다네. 
목사는 평소에 늘 묽은 수프만 끓여 주는 그 부인에게 넌더리가 날 지경이었는데, 
이번 그녀의 변덕스러운 신경질의 덕을 좀 볼까 했던 거지. 
그런데 그런 내막이 소득 관리소에 알려져서, 
나무값은 관리소에 납입하라는 통고가 내려오게 된 걸세. 
목사관의 대지 가운데 그 나무가 서 있던 땅은 
아직도 관리소가 그 소유권을 보유하고 있었던 걸세. 
결국 그 호두나무는 관리소에 의하여 경매에 부쳐지고 말았다네. 
어쨌든 호두나무는 땅바닥에 쓰러져 있네. 
아아, 내가 영주라면 목사 부인이며 촌장이며 관리소를 모조리......
영주라! 영주라면 영내의 나무 따위에 신경을 쓰고 있을 턱이 없지! 
10월 10일
로테의 검은 눈을 보기만 해도 나는 행복해지네! 그런데 못 마땅한 것은, 
알베르트가 별로 행복해 뵈지 않은 일일세
---만일---나라며---이러하리라---생각했던 만큼은 말일세---
이런 줄표가 좋아서 긋고 있는 것은 아니라네.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서일세.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히 알아볼 수 있겠지. 
10월 12일 
오시안이 내 마음 속에서 호메로스를 밀어 내었네. 
이 위대한 시인이 나를 끌어들이는 세계는 그야말로 기막힌 세계일세. 
나는 피어나는 안개에 싸여 희뿌연 달빛 속에 
조상들의 영혼을 꾀어 내는 비바람에 시달리며 황야를 방황한다네. 
줄지어 있는 산들의 저 너머에서, 
골짜기의 요란스러운 시냇물 소리와 더불어 
동굴 속 망령들의신음소리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들려 오네. 
소녀의 통곡소리도 들려 오네. 
그녀는 싸움터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쓰러져 간 애인의 무덤, 
잡초로 덮이고 이끼가 낀 네 개의 묘석 언저리에서 
숨이 끊어질 듯이 탄식하고 있는 걸세. 
이윽고 유랑하는 백발의 음유시인이 나타나네. 
광막한 황야에 조상들의 발자취를 찾아 헤매다가, 
아아, 마침내 이 곳에서 그 묘석을 찾아 낸 걸세. 
그는 비탄에 잠긴 채 사납게 물결치는 바다 저 너머로 빠져 들어가는 저녁별을 바라보네. 
그의 가슴 속에는 지나간 시대가 생생하게 되살아나네. 
용사들의 고난에의 길을 축복해 주듯이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죄고 
개선하고 돌아오는 화환으로 장식된 배에 달빛이 내리비쳤던 그 옛날의 일이 말일세! 
노인의 이마에는 깊은 고뇌의 자국이 새겨져 있네. 
최후에 혼자 남은 이 용사도, 지금은 기진맥진 무덤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가네. 
그러나 가 버린 사람들의 방황하는 망령들을 눈앞에 대하자 
벅찬 기쁨이 새로이 샘솟아 올랐네. 
그는 흔들거리는 풀숲, 차가운 땅을 내려다보며 절규하고 있다네. 
"아름다왔던 날의 나를 아는 나그네들은 와서 물으리라, 
<그 명창, 핑갈의 그 뛰어난 아
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하고, 나그네들은 내 무덤을 밟고 넘어가서, 
나를 찾아 헛되이 이 지상을 헤매어 다니리라" 
아아, 친구여! 
나도 충성스러운 무사와 같이 칼을 빼어들고 
서서히 숨이 끊어져 가는 단말마의 고통에 시달리는 
나의 영주 오시안을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싶네. 
그리하여 해방된 그 반신의 뒤를 따라 나도 가고 싶네! 
10월 19일
아아, 이 공허! 무서운 공허, 그것을 나는 이 가슴 속에 느끼고 있네. 
나는 자꾸만 생각한다네, 
딱 한 번, 딱 한 번만이라도 그녀를 이 가슴에 껴안을 수가 있다면 
이 공허는 완전히 메꿔질 텐데, 하고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