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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26.

Joyfule 2009. 12. 24. 06:46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26.  
 10월26일
그렇다네, 나는 점점 더 확실히 느끼게 되네. 
친구여, 한 인간의 존재 같은 건 대수로운 게 아닐세. 
전혀 대수롭지 않은거야. 
로테네 집에 그녀의 여자친구가 한 사람 찾아왔었네. 
나는 그 옆방으로 책을 가지러 갔었는데, 
책읽기가 시들해져서 펜을 들고 긁적거리기 시작했네. 
두 사람이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 들렸네. 
아무개가 결혼을 한다느니 아무개는 병이 들었는데 심상치 않다느니 
하는 따위의 자질구레한 시중의 소문이었지. 
"마른기침을 하고 볼이 홀쪽해졌는데, 때때로 까무러치기도 한 대요. 
거의 가망이 없는 모양이에요"친구가 말했네. 
"N씨도 많이 아프다면서요?"로테도 말했네. 
"부종이 심하다나 봐요"하고 친구가 말하는 소리. 
나의 상상력은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여, 
그 불행한 사람들의 병상을 머릿속에 그렸네. 
나는 생생하게 볼 수가 있었네. 
그들은 삶을 등지기를 얼마나 싫어하고 있는지 모른다네. 
그들은 얼마나......빌헬름이여, 
그러나 여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세. 
마치 전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죽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그런 어조로 말일세.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네. 
로테의 의복, 알베르트의 서류, 그리고 가구류를 보았네. 
그것들은 모두가 나에게는 정든 물건들일세. 
잉크병까지도......나는 생각에 잠겼네.
 <잘 생각해 보아라. 이 집에 있어서 도대체 너는 뭔가? 
두 사람 다 너의 친구요, 너를 존경하고 있어. 
너는 때때로 그들에게 기쁨을 주는 근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너는 마음 속으로 그들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것같이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네가 그들 곁에서 사라져 버린다면 
그들은 네가 없어짐으로 해서 자기네 운명에 생겨난 공허를 언제까지 느낄 것인가? 
얼마나 오래 그것을 느끼겠느냔 말일세>.
아아, 인간은 그지없이 덧없는 것이라네. 
자기의 존재가 정말 확고한 것으로 여겨지는 곳, 
자기의 존재를 정말 확고하게 인상지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일 수 있는 애인의 추억이나 그 영혼 속에서조차도, 
인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게 마련인거야, 
그것도 눈 깜짝할 사이에!
10월 27일
이 가슴을 찢어 버리고 머리통을 부수어 버리고 싶어지네. 
어째서 사람들이 서로 이토록 냉랭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말일세. 
아아, 사랑도 기쁨도 우정도 즐거움도, 
내가 남들에게 제공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에게 주지를 않네. 
그리고 진심을 다 기울여서 남을 행복하게 해 주려 해도, 
눈앞에 그림자처럼 차갑게 서 있는 인간에게는 아무런 효능이 없네. 
10월 27일 저녁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은 많으나, 
그녀를 생각하는 마음이 모든 것을 집어삼켜 버리네. 
아무리 가진 것이 많더라도 그녀 없이는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는 걸세. 
10월 30일
나는 벌써 수백 번 그녀의 목을 와락 끌어안으려 했었네! 
이토록 사랑스러운 존재가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는데 
손을 뻗쳐 잡아서는 안 된다니, 이 안타까운 심정은 하느님만이 아실걸세. 
그것은 인간의 가장 자연적인 충동일세. 
아이들은 갖고 싶은 제 눈에 띄면 얼른 붙잡으려 하지 않는가. 
그런데 나는? 
11월 3일
정말이지 다시는 깨어나지 않게 되기를 바라면서, 
아니, 때로는 그렇게 되리라 믿으면서 잠자리에 들기 그 몇 번이었던가! 
그러나 아침이 되면 나는 다시 눈을 뜨고, 태양을 보고, 그리고 비참한 심경이 된다네, 
아아, 차라리 모든 것을 날씨 탓으로 돌린다든가, 
누군가 다른 사람, 또는 잘못된 계획 탓으로 돌릴 수 있다면, 
이 견딜 수 없는 울분의 짐이 절반은 줄어 들련만! 
그러나 슬프게도 나는 너무나 똑똑히 알고 있네, 
모든 죄가 나 혼자에게만 있다는 것을. 
아니, 그건 죄라고 할 수 없지. 
하지만 모든 불행의 근원이 내 마음 속에 숨어 있는 것은 사실일세. 
전에 모든 행복의 원천이 내 마음 속에 있었던 것처럼 말일세. 
충만한 감정 속을 떠돌아다니면서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낙원이 뒤따르던 그 무렵의 나나 지금의 내가 다를 바 없으련만, 
그 무렵의 나는 온 세계를 넘치는 사랑으로 포옹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 마음이 죽어 없어져 버렸네. 
이제 내 마음에서는 어떤 감동도 솟아나지를 않는 걸세. 
상쾌한 눈물이 오관을 소생시키는 일도 없며, 
불안으로 말미암아 이마에는 나날이 주름살이 늘어 간다네. 
이 괴로움, 이것은 내 삶의 유일한 환희를 잃었기 때문일세. 
성스러운 소생력, 내가 내 주위의 온갖 세계를 창조해 내었던 그 힘, 
그것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일세! 창문 밖으로 멀리 언덕을 바라보면, 
아침 햇살이 언덕 위로부터 안개 속을 뚫고 초원을 비추고 있네. 
강물은 잎이 다 져 버린 버드나무 사이를 구불구불 조용히 흐르고 있네. 
마치 니스를 칠한 유화처럼 딱딱해져 버렸네. 
당연히 환희를 느껴야 할 이러한 광경도 
이제 내 심장으로부터 한 방울의 행복감조차도 뇌수로 빨아올려 주지 못하네. 
사내 대장부가 말라 버림 샘, 
물이 없는 물통처럼 하느님 앞에 서 있을 따름일세. 
나는 몇 번이나 땅바닥에 엎드려 제게 눈물을 내려 주십사고 하느님께 빌었네. 
마치 하늘이 황동처럼 머리 위에서 빛나고, 
대지가 말라 터져 버렸을 때에 농부들이 비를 갈구하듯이.
그러나 아아, 나는 알고 있네, 
우리들이 애타게 탄훤하다고해서 하느님이 비나 햇빛을 내려 주시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되돌아보면 괴롭기만 한 그 시절이 어째서 그토록 행복했던 것일까! 
그것은 내가 참을성 있게 하느님이 내려 주시는 환희를 
충심으로 감사하며 받아들였기 때문이지. 
11월 8일
로테가 나의 무절제를 충고해 주었네. 
아아, 그것도 지극히 다정스럽게! 
포도주 한 잔에서 시작하여 한 병을 몽땅 비워 버리는 그런 나의 무절제를.
"그러면 안 돼요"하고 그녀는 말했네.
 "제 생각도 좀 해 주세요!" 
"당신을 생각하다뇨?"하고 나는 말했네. 
"그런 말은 하실 필요 없어요. 생각하다뿐이겠습니까! 
아니,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있으니까요. 
오늘도 나는 며칠 전에 당신이 마차에서 내렸던 바로 그곳에 앉아 있었답니다" 
로테는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려서, 내가 더 이상 그런 소리를 하지 못하게 해 버렸네. 
친구여! 이제 나는 내가 이닌 것이나 다름없네. 
그녀는 나를 마음대로 할 수가 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