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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27.

Joyfule 2009. 12. 26. 01:37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27.  
 11월 15일
고맙네. 빌헬름이여! 
자네의 그 염려와 친절한 충고에 사의를 표하네. 
그러나 제발 안심하게나, 나는 끝내버티어 낼 테니까.
지치기는 했지만 아직 그만한 힘은 지니고 있다네. 
나는 종교를 숭아하고 있네. 
그건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종교가 지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지팡이가 되어 주며, 
병들어 쇠잔해가는 자들에게 소생의 힘이 되어 준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네. 
그러나 종교는 누구에게나 다 그런 작용을 받지 못했고 
도 앞으로도 받지 못할 사람은 수천 명도 더 될 걸세. 
그런데 나에게 있어서는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께서도
'내 아버지께서 보내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만일 내가 하느님이 보내 주신 그가 아니라면?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나를 자신의 곁에 매어 두시려 한다면? 
부디 이 말을 오해하지는 말아 주게. 
아무런 사심없이 하고 있는 내 말 속에 
조소가 깃들여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말란 말일세. 
내 심경을 그대로 자네에게 내보였을 뿐이니까.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잠자코 있었을 걸세. 
나 자신도, 또 남들도 알지 못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건 간에 나는 말을 낭비하고 싶지않은 터이니까. 
자기에게 이것이 인간의 운명이 아니겠는가? 
이 술잔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하느님의 아들의 입술에도 쓰디쓴 것이었는데, 
내가 어찌 허세를 부리며 그것이 달콤한 체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라는 자체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서 전율하고 
과거가 번갯불처럼 어두운 미래의 심연 위에서 번쩍이며, 
나를 둘러싼 만물이 멸망하고, 이 몸과 더불어 온 세계가 무너져 내리려 하는 
그 무서운 순간에 내 어찌 부끄러워할 필요가 있으랴.
그 부르짖음이야말로, 
자기 자신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까지 몰린 채
 힘이 다하여 걷잡을 수 없이 전락해 가는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한 그 부르짖음 말일세. 
그런데 내가 그런 부르짖음을 부끄러워할 것은 없지. 
또한 그와 같은 순간이 있다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겠지. 
하늘을 한 필의 옷감처럼 두르르 말아서 거둘 수 있는 
하느님의 아들조차도 피할수 없었던 순간이니까. 
11월 21일
로테는 깨닫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고 있다네. 
그녀 스스로가 나와 그녀 자신을 파멸시키는 독약을 조제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입맛을 다시며 그것을 들이마시네. 
내 몸을 파멸시키기 위해 내미는 그 독배를 비우는 걸세. 
다정스러운 그녀의 그 눈매, 
나를 자주, 아니, 자주라고는 할 수 없으나 
어쩌다가 나를 빤히 보는 그 당정스러운 눈매. 
무심결에 나타내는 내 마음을 받아들여 주는 그 호의. 
그리고 나의 인고를 애처로와하는 마음이 그녀의 이마에 새겨지네. 
그것들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어제 내가 돌아오려 할 때, 
그녀는 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네.
"안녕히 가세요, 사랑하는 베르테르 씨". 
사랑하는 베르테르!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을 붙여서 부른 것은 처음일세. 
골수에까지 스며드는 말이었네. 
나는 그 말을 입 속으로 수백 번이나 되풀이했지.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도 중얼중얼 혼잣말을 지껄이고 있던 중에 이런 말이 튀어나왔네.
 "잘 자요, 사랑하는 베르테르 씨"그러고는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지.
11월 22일 
나는 '로테를 저에게 맡겨 주소서!'하고 기도할 수는 없네. 
그러나 가끔 그녀가 내 것인 듯한 생각이 든다네.
 '그녀를 제게 주소서'하고 그도할 수는 없네.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의 것이니까. 
나는 지금 스스로 괴로움을 재료로 이론유희를 하는 걸세. 
이러다간, 명제와 대립명제의 끝없는 기도가 되풀이될 걸세. 
11월 24일 
그녀는 내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는지 알고 있네. 
오늘 그녀의 눈매는 내 마음 속 밑바닥까지 스며들었다네. 
찾아갔더니 그녀는 혼자 있더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그녀는 물끄러미 나를 보았네. 
여느 때와 같은 사랑스러운 아름다움과 뛰어난 정신의 밝은 빛은 보이지 않았네. 
그런 것들은 모두 내 눈앞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었네. 
그런 것보다도 훨씬 더 숭고한 괴로움에 대한 애달픈 공감이 어리어 있었네.
어째서 나는 그 발 아래 굻어 엎드리지 않았을까! 
어째서 그녀의 목을 끌어안고 끝없는 키스로 그에 보답하지 않았을까! 
로테는 몸을 피하여 피아노 앞으로 갔네. 
그런고는 피아노를 치면서 나직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노래를 불렀네. 
로테의 입술이 그 때처럼 매혹적으로 보였던 적은 없었네. 
그 입술은 악기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멜로디를 빨아들여 
그 나직한 반향만을 내보내는 것 같았네. 
그것을 그대로 자네에게 전해 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그만 견딜 수 없는 심정이 되어, 머리를 숙이고 이렇게 맹세했네.
'성스러운 입술이여, 
하늘위 정령이 어려 있는 그 입술에 나는 결코 키스를 강요하지 않으리라'. 
그러면서도 나는 결코 단념할 수가 없었네. 
내 마음 알겠지? 
아아, 그것이 장벽처럼 내 영혼을 가로막고 있네. 
사무치는 행복을 이 몸으로 맛보고, 
그러고 나서 그 죄를 씻기 위하여 파멸해 버리고 싶네 그것이 죄일까? 
11월 26일
때때로 나는 나 자신에게 말한다네. 
'네 운명은 유례가 없을 만큼 비참하다. 
다른 사람들은 행복하다......
이토록 괴로워한 자는 일찍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고 나서 옛시인의 글을 읽으면, 
마치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네. 
나는 수많은 고난을 참고 견디어야 하네! 
아아, 인간이란 내가 있기 이전에도 이토록 비참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