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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28.

Joyfule 2009. 12. 28. 01:01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28.  
 11월 30일
나는, 나는 아무래도 평정을 되찾을 수가 없네. 
어디를 가나 어퍼구니없는 사건에 맞닥뜨리게 되니 말일세. 
오늘도! 아아, 운명이여! 인간이여!
점심때 강변을 산책했네. 
나는 요즘 입맛을 잃었네. 
그리고 모든 것이 처량하기만 하다네. 
산에서 눅눅하고 차가운 서풍이 불고, 잿빛 비구름이 골짜기로 흘러들고 있었지. 
멀리 초록색의 허름한 옷을 입은 사나이가 바위 사이를 기어 다니는 것이 보였네. 
약초라도 찾고 있는 것 같았네. 
내가 다가가자 발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다 보았는데, 
사람의 마음을 끄는 생김새였네. 
조용한 슬픔이 어리어 있는 얼굴로, 선량하고 정직한 인간미가 엿보였네. 
검은 머리는 두 가닥으로 말아서 핀을 꽂았고, 
나머지 머리는 굵게 땋아 등 뒤로 드리우고 있었네. 
옷차림으로 미루어보아 신분이 낮아 보였으므로, 
그가 하고 있는 일에 내가 관심을 보여도 언짢게 여기지 않을 듯싶어서 
무엇을 찾고 있느냐고 물어 보았지. 
"꽃을 찾고 있습니다."하고 한숨을 후우 내쉬면서 그는 대답했네. 
"그런데 한 송이도 보이지 않는군요." 
"꽃이 있을 철이 아니니까요."나는 웃으면서 말했지.
"꽃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고 그는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내려오면서 말했네.
 "우리 집 뜰에는 장미와 인동덩굴 두 종류가 있답니다. 
그 중 하나는 아버지가 주신 것인데, 잡초처럼 많이 나 있죠. 
벌써 이틀째 그걸 찾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군요. 
이 근처에도 언제나 꽃이 피어 있지요. 
노란 꽃, 파란꽃, 빨간 꽃들이 말입니다. 
수레국화도 예쁜 꽃이지요. 그런데 하나도 안 보이는군요" 
나는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슬쩍 에둘러서 물어 보았네. 
"꽃을 따서 뭘 하려고 그러죠?" 
경련하는 듯한 기묘한 미소로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네. 
"이건 아무에게도 이야기하면 안 되는데" 
하고 그는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고는 말을 이었네.
 "저는 애인한테 꽃다발을 선물하기로 약속했거든요" 
"그거 근사하군요."하고 나는 말했지.
"아아! 제 애인은 다른 물건들은 많이 갖고 있어요. 부자거든요"
"그래도 당신의 꽃다발은 기쁘게 받겠지요"
"그녀는 보석을 갖고 있어요. 왕관도 갖고 있지요"
"그 분의 이름은 뭡니까?"
"네덜란드 정부가 나에게 월급을 주었더라면"하고 그는 엉뚱한 말을 했네.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겁니다. 그래요, 옛날엔 좋았지요. 
저는 행복했습니다.! 이젠 글렀어요. 지금은 저도......" 
하늘을 우러러보며 눈물을 짓는 그의 눈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네.
"그러면 그전에는 행복했었군요?" 하고 나는 물었지.
"아아! 다시 그런 날이 오면 좋겠어요. 
그 무렵엔 행복했었지요. 즐겁고 기뻣어요. 
물 속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처럼!"
"하인리히!"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노파가 우리있는 쪽으로 다가왔네.
 "하인리히, 여기 있었구나. 사방으로 찾아다녔다. 자, 가자, 밥 먹어야지" 
"할머니의 아드님인가요?" 나는 노파에게 다가서며 물었네.
"네, 제 불쌍한 자식이랍니다."하고 할머니는 대답했네.
 "하느님께서 저에게 무거운 십자가를 지우셨어요."
"이렇게 된 지가 얼마나 됐습니까?" 하고 나는 물었지. 
"이렇게 얌전해진 지는 반 년쯤 되었어요. 
그 전에는 꼬박 1년 동안 어찌나 날뛰고 행패를 부렸는지, 
정신병원에서 사슬에 묶여 있었지요. 
지금은 행패는 부리지 않습니다. 
다만 언제나 임금님이 어떠니 황제가 어떠니 하는 소리만 한답니다. 
원래는 온순하고 얌전한 아이였죠. 
집안살림도 도와 주고 글씨도 잘 썼는데, 
갑자기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더니 고열이 나고, 
그러고는 정신이 돌기 시작하더군요. 
그랬다가 지금은 보시는 것처럼 이 모양이랍니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그녀의 말을 가로막고 물었네.
 "그토록 행복했었다, 즐거웠었다 하는 건 언제 얘긴가요?" 
"바보 같은 소릴 또 했군요!" 
노파는 연민의 미소를 머금고 말했네. 
"완전히 정신이 돌았던 때의 얘기를 하고 있는 거랍니다. 
언제나 그걸 자랑삼아 얘기한답니다. 
정신병원에서, 자기 자신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던 때의 이야기지요" 
그 말은 벼락처럼 내 가슴을 때렸네. 
나는 노파의 손에 지폐를 한 장 쥐어 주고 얼른 그 곳을 떠났네. 
'네가 행복했던 때!' 
시내를 향해 황망히 걸음을 재촉하면서 나는 외쳤네.
 '네가 물 속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처럼 행복했었던 때!' 
하늘에 계신 주여! 
당신은 인간의 운명을 이렇게 정하여 놓으셨나이까? 
이성을 지니기 이전과, 이성을 잃어버린 이후를 제외하고는 행복해질 수 없도록! 
가엾은 사나이여! 
그래도 나는 그대의 슬픔과, 그대를 초췌하게 하는 정신착란이 부럽고나! 
그대는 희망에 부풀어 행차한다, 
그대의 여왕을 위하여----한겨울에----꽃을 따려 하다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면서 한탄을 하되, 
어째서 꽃이 보이지 않는지는 모르고 있다. 
그런데 나는 희망도 목적도 없니 나갔다가, 
집을 나섰을 때와 똑같은 기분으로 돌아온다. 
그대는 네덜란드 정부에서 월급만 주었더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몽상하고 있다. 
행복한 사나이여! 
행복해질 수 없는 까닭을 이세상의 현실적인 장애 탓으로 돌릴 수 있다니. 
그대는 모르고 있네, 
그대가 비참하게 된 원인이 산산이 파괴된 그대의 마음 속에 있으며, 
그대를 미치게 한 머릿속에 있음을. 
그리고 지상의 어떤 권력으로도 그대를 거기서 구해 낼 수 없음을. 
신병을 고치기 위하여 약효가 있다는 먼 온천장으로 여행을 갔다가, 
그 때문에 도리어 병이 악화되어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비웃을 수 있는 인간, 
양심의 가책을 면하고 영혼의 고뇌를 없애기 위해 고난을 겪으며 
그리스도의 무덤을 찾아 순례의 길을 떠나는 사람을 
멸시할 수 있는 그런 인간은 윈안도 받지 못한 채 죽을지어다. 
길도 없는 길을 걸어가느라고 발바닥은 상처를 입을지라도, 
그 한발짝 한발짝이 괴로워하는 영혼에게 있어서는 한 방울의 진통제가 되는 걸세. 
고달픈 여행의 하루하루를 참고 견디어 낼 때마다 
가슴 속의 무거운 짐은 그만큼 가벼워지고, 마음은 그만큼 평온해지는 걸세.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공허한 이론을 논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이것을 망상이라 부를 권리가 있는가? 망상! 
아아, 하느님! 
저의 눈물을 보소서! 
인간을 이토록 가난하게 창조하신 당신께서는 
어찌하여 이 얼마 되지 않는 가난한 소유분까지도 
빼앗아 가 버리는 동포를 덤으로 주셨나이까? 
그 동포는 당신께로 향한 얼마 되지 않는 믿음까지도 빼앗아 가 버립니다. 
만물을 사랑하시는 주여! 
약초를 믿으며, 뚝뚝 떨어져 내리는 포도즙을 믿는 그 마음은, 
당신께로 향한 믿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만물 속에, 
우리에게 한시도 없어서는 안 될 
진정제와 치료제의 효력을 간직해 놓으신 것으로 믿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정체를 알 수 없는 하느님 아버지시여! 
전에는 당신께서 제영혼을 구석구석까지 충만케 해 주셨으나, 
지금은 저를 외면해 버리셨습니다. 
부디 저를 당신 곁으로 불러 주십시오. 
이 이상 더 침묵하지 마소서! 
당신의 침묵은 갈망하는 이 영혼에겐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뜻밖에 자기 아들이 돌아와서 매달렸을 때 
화를 낼 수 있는 아버지가 있을까요? 
그 아들은 외칩니다. 
"아버지, 제가 돌아왔습니다. 
노여워하지 말아 주십시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좀더 오래 참고 견디어 계속해야만 할 편력을, 
저는 중도에서 그만두고 돌아왔습니다. 
세상은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입니다. 
고생을 하고 노동을 하면 보수와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저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는 아버지가 계시는 곳이 가장 좋습니다. 
아버지가 보시는 곳에서 괴로움도 즐거움도 맛보고 싶습니다." 
아버지시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는 아버지시여, 
당신께서는 이 아들을 물리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