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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35.

Joyfule 2010. 1. 5. 09:40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35.  
더욱이 그것은 뜻밖에, 
전혀 걱정조차 하지 않았던 그런 형태로 일어났던 것입니다. 
평소에는 맑게 흐르던 순결한 피가 열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끓어오르고 
갖가지 생각이 아름다운 마음을 어지럽혔습니다. 
그녀가 가슴깊이 느끼고 있었던 것은 
베르테르와의 포옹에서 일어난 불길이었을까요, 
그의 무례에 대한 노여움이었을까요, 
아니면 지금의 자신을 전의 자신과 비교하여 느끼는 불쾌감이었을까요? 
전에는 그토록 아무 거리낌없이 구김없는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신뢰감을 가질 수 있었는데......
남편이 돌아오면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어제 그 일을 어떤식으로 고백해야 할까? 
그대로 고백해도 켕길 것은 없지만, 
그러면서도 어쩐지 고백하기가 망설여지는 그 순간의 일을, 
벌써 오랫동안 두 사람은 베르테르에 대한 이야기를 피해 오고 있지 않았는가, 
그런 판에 이쪽에서 먼저 침묵을 깨고, 
하필이면 이렇게 거북스러운 계제에 
그가 예상조차 하지 않았을 사건을 고백해야만 옳을까?
베르테르가 왔었다는 말만 들어도 남편은 언짢아할 텐데, 
어떻게 그런 뜻밖의 상황을 입밖에 낼 수 있단 말인가! 
또 남편이 공평한 눈으로 아무런 편견없이 
자기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 줄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을 속일수도 없는 일 아닌가. 
자기는 언제나 투명한 수정알처럼 숨김없는 자세로 남편을 대해 오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그녀를 괴롭히고 곤혹에 빠뜨렸습니다.
베르테르는 이미 그녀로서는 잃어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잃는다는 건 가슴아픈 일이었지만 별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녀를 잃으면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그였지만.
뚜렷이 자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부부 사이에 뿌리를 내린 갈등은 지금 로테의 마음을 무척이나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총명하고 선의적인 두 사람이 남모르는 마음의 엇갈림이 원인이 되어 
서로 침묵하기 시작하고, 서로서로 자기가 옳고 상대방이 부당하다고 생각함으로써 
사태는 꾀고 악화되어 마침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중대한 순간에 그 매듭을 푸는 일이 불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되기 전에 두 사람이 원래 너그럽게 이해하는 마음으로 
사랑과 관용을 북돋우고 속마음을 서로 열어 보였더라면, 
우리의 벗은 어쩌면 구원의 여지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거기에 또 한 가지 특별한 사연이 곁들여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편지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베르테르는 이세상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알베르트는 몇 번이나 그에 반론을 제기하였고, 
로테와의 사이에도 때때로 그것이 화제에 올랐습니다. 
알베르트는 자살이라는 행위에 대하여 철두철미 반감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평소의 그에게서는 불 수 없는 신경질적인 태도로 
자살 계획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없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 남편 말은, 한편으로는 로테를 안심시키고, 
그녀가 마음 속으로 끔찍한 광경을 상상할 때의 위안이 되기도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태도 때문에 현실적으로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 걱정을 남편에게 말하기를 꺼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알베르트가 돌아왔습니다. 
로테는 황망하게 그를 맞이했습니다. 
남편은 밝은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일이 완전히 처리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웃마을의 관리라는 사람은 완고하고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길이 나빴던 것도 그를 불쾌하게 했습니다.
별일 없었느냐고 그가 물었을 때 
로테는 얼른, 간밤에 베르테르가 왔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알베르트는 우편물이 온 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편지 한 통과 소포가 몇 개 와서 방에 놓아 두었다는 말을 듣고 
알베르트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로테는 혼자 남았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편이 돌아왔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에 새로운 감명을 주었습니다. 
남편의 관대함과 사랑, 
그리고 어쩐지 남편을 뒤따라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평소에 곧잘 그랬듯이 일거리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남편은 바삐 소포를 끄르기도 하고, 편지를 읽기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사연도 섞여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로테가 두세 마디 물어 보니까, 
남편은 간단하게 대답을 하고 책상에서 뭔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은 이렇게 1시간 정도 함께 있었는데, 로테의 마음은 어두워져 갔습니다. 
자신의 마음 속에 찜찜하게 걸려 있는 일은 
설령 남편의 기분이 아주 좋을 때라 하더라도 
고백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것을 숨기고 눈물을 삼키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한층 괴로워지는 것이었습니다. 
베르테르의 심부름을 온 하인이 나타났을 때 로테의 당혹은 극도에 달했습니다. 
하인은 알베르트에게 쪽지를 전했습니다. 
알베르트는 침착한 태도로 아내를 보고 말했습니다.
 "권총을 빌려 드려요" 그러고는 하인을 향해
 "여행 잘 다녀오시기를 바란다고 전하게"하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벼락처럼 로테의 가슴을 때렸습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는데,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 지조차도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천천히 벽 쪽으로 가서 떨리는 손으로 권총을 내려 먼지를 털고, 그러고는 망설였습니다. 
만일 알베르트가 의아스런 듯한 눈매로 그녀를 재촉하지 않았더라면 
더 오랫동안 머뭇거렸을 것입니다. 
로테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그 불길한 무기를 하인에게 내주었습니다. 
하인이 돌아가자 로테는 일거리를 챙겨 가지고 
형언할 수 없는 불안한 마음으로 자기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끔찍한 사태를 그녀 자신에게 예언하였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발 아래 엎으려 어젯밤에 일어났던 일과 
지금 자신이 예감하고 있는 것을 다 고백해 버릴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 봤자 그 결과가 바람직하게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을 설득하여, 그로 하여금 베르테르를 찾아가도록 한다는 것은 
도저히 가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식사준비가 되었습니다. 
그 때 마침 로테의 허물없는 친구가 물어 볼 것이 있다면서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곧 돌아가려 했으나 그대로 눌러앉아 같이 식탁에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 덕분에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 로테는 애써 
이리저리 화제를 돌리면서 마음의 불안을 잊으려고 했습니다.
하인이 권총을 가지고 돌아와 로테가 내주더라는 말을 하자, 
베르테르는 무척이나 기뻐하며 그 권총을 받았습니다. 
그러고는 하인에게 빵과 포도주를 가져다가 식사를 하라고 이른 다음 
자기는 책상 앞에 앉아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권총은 당신의 손을 거쳐서 내게로 왔습니다. 
먼지를 털어 주셨다구요? 
나는 천 번도 더 권총에 키스를 했습니다. 
당신의 손이 닿았던 것이니까요. 
하늘의 정령인 당신이 나의 결심을 격려해 줍니다! 
당신의 손에서 죽음을 받고 싶었는데, 아아! 지금 그것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하인에게 고치꼬치 물었답니다. 
권총을 내주면서 당신은 떨고 있었다구요. 
작별인사는 하지 않으셨다는데, 유감스럽습니다! 
나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셨습니까? 
나를 영원히 당신과 결합시킨 그 순간 때문에 그러셨나요? 
로테, 설령 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그 순간의 감명은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으로 인하여 이토록 마음을 불태우고 있는 사람을 당신이 미워할 리 없다는 것을.
식사를 마친 뒤 베르테르는 하인을 불러서 짐을 전부 구리라고 이르고
많은 서류를 찢어 버렸습니다. 
그 다음엔 밖으로 나가서 자질구레한 미불금들을 완전히 청산했습니다. 
그리고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밖으로 나갔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교외의 M백작 정원과 그 부근을 서성거리다가, 
어둑어둑해질 무렵에야 돌아와 다시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