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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두 개의 세계 - 1

Joyfule 2008. 9. 12. 00:20
       제 1 장 두 개의 세계 - 1  
    내가 열 살 때, 
    우리가 살던 아담한 도시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던 무렵의
     체험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 시절의 갖가지 일들이 내게 향기로이 밀려오고, 
    어두운 골목길이며 밝은 집과 탑, 시계 소리와 사람들의 얼굴, 
    아늑하고도 따뜻한 느낌이 가득 찬 방, 
    비밀과 유령에 대한 공포가 가득 찬 방들의 추억이 
    슬픔과 쾌적한 전율로 내 마음을 뒤흔든다. 
    따뜻한 좁은 방, 집토끼, 가정부, 가정 상비약, 말린 과일의 향기가 풍겨온다. 
    거기에는 두 개의 세계가 서로 엇갈리고 있었고 
    두 개의 극단으로부터 낮과 밤이 밀려왔다. 
    그 하나의 세계는 아버지의 집이었다. 
    하지만 그 세계는 아주 좁은 것이었으며 
    사실은 아버지 어머니만을 포함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세계의 대부분은 내게 아주 친숙한 것이었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과 근엄함, 
    모범, 엄격한 가르침이라고 불리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세계에는 부드러운 빛, 밝음과 맑음이 함께 하고 있었으며 
    온화하고 다정스런 말씨, 깨끗한 손, 말쑥한 옷차림, 
    훌륭한 예절이 깃들어 있었다. 
    이 세계에서는 아침마다 찬송가가 불려졌고, 크리스마스를 축하했다. 
    이 세계에는 미래에까지 이르는 선함과 곧은 길이 있었다. 
    이 세계에는 의무와 책임, 양심의 가책과 참회, 관용과 선의, 
    사랑과 존경,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가 있었다. 
    밝고 맑고 아름다우며 안정된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이 세계의 편이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다른 세계가 우리들의 집 한가운데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고, 
    그것은 전혀 다른 세계였으며, 
    다른 냄새를 풍기고 다른 말씨를 쓰며 다른 약속을 하고 다른 요구를 했다. 
    이 두 번째의 세계에는 가정부라든가 직공들이 속해 있었다. 
    귀신 이야기며 추한 소문이 있었다. 
    거기에는 당치도 않은 일, 요사스러운 일, 
    끔찍스런 수수께끼와도 같은 일들이 흘러넘쳤고 
    도살장과 형무소, 주정뱅이와 싸우는 여자들, 
    새끼 낳는 암소, 쓰러진 말, 강도, 살인, 자살과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이러한 모든 아름답고도 무서운 일들이, 
    거칠고 어둠침침한 일들이 바로 주위에서, 옆 골목과 이웃집에서 일어났고, 
    경찰이나 불량배가 거리를 휩쓸고, 주정뱅이가 자기 여편네를 두들겨 팼으며 
    저녁이면 젊은 처녀들이 공장에서 쏟아져나오고 
    노파들이 사람에게 마술을 걸어 아프게 만들기도 했으며 
    강도들이 숲속에서 살았고 방화범이 경찰에게 붙잡히기도 했다 
    도처에서 이 또 하나의 격정적인 세계가 넘쳐흐르고 악취가 풍겼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시는 우리 집을 제외한 도처에서. 
    그것은 참으로 황홀한 일이었다. 
    우리들이 속한 세계에 평화와 질서, 안정, 의무와 책임, 
    용서와 사랑이 함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여러 가지의 일들, 
    소란스럽고도 황홀하고 어둡고 파괴적인 일들이 가득한 세계에서 
    한달음에 어머니의 품으로 달아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이 두 개의 세계가 그토록 가까운 이웃에 있고 
    그토록 가깝게 맞붙어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이었다! 
    이를테면 우리 집 가정부인 리나는 저녁 기도를 올릴 때, 
    안방 문가에 앉아 깨끗이 씻은 손을 빳빳하게 다름질한 앞치마에 단정히 모으고 
    맑은 목소리로 우리와 함께 찬송가를 부를 때는 틀림없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세계이며 우리들의 세계인 밝고 올바른 세계에 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엌에서, 또는 장작을 쌓아둔 광에서 
    머리가 없는 난장이 이야기를 내게 들려줄 때라든가, 
    혹은 작은 구멍가게에 있는 푸줏간에서 이웃집 여자들과 말다툼을 하고 있을 때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이 되어버리고 다른 세계에 속했으며 비밀에 둘러싸여 있었다. 
    모든 일들이 바로 그러했다. 내 자신조차도 그러했다. 
    분명히 나는 밝고 바른 세계에 속해 있었으며 내 부모님의 아들이었다. 
    그렇지만 눈과 귀를 어떤 쪽으로 돌려도 거기에는 다른 세계가 있었다.
    나는 다른 세계 속에서도 살고 있었다. 
    설사 그런 사실이 내겐 낯설고 언짢은 일이라 해도, 
    그래서 그 세계에서는 보통 꺼림칙한 양심의 가책과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하더라도, 
    나는 이따금 무엇보다 즐겨 금지된 세계에서 살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밝은 세계로 돌아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옳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이 없는, 지루하고 무미건조한 세계로 돌아오는 것처럼 여겨진 적도 흔히 있었다. 
    물론 내 자신의 삶의 목표가 부모님처럼 되는 일이며 
    비할데 없이 밝고 맑은 훌륭한 절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잘 의식하고 있었지만 거기에 이르는 길은 너무나 멀었다. 
    거기에까지 이르자면 학교를 졸업하고도 
    또 학업을 계속하고 시험을 치러야 했지만 
    길은 한사코 다른 캄캄한 세계의 옆이 아니면 그 한가운데를 통해 갔고 
    그 세계에 아주 머물거나 어쩌면 그 속에 빠져버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운명에 빠져버린 방탕한 자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는 무척 열중해서 읽었다. 
    거기에서는 아버지와 선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언제나 구원이며 
    옳은 일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옳고 바람직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믿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편으론 
    악한이나 방탕아들에 관한 대목에 나는 더 흥미를 느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방탕아가 회개를 하고 다시 
    밝은 생활로 돌아오는 것이 불만스럽게 여겨질 지경이었다. 
    물론 그런 생각을 입 밖에 낸 적은 없었고 
    되도록이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긴 했었다. 
    어쨌든 그런 종류의 생각이란 단지 희미한 공상으로나 
    어쩌면 있을 수도 있는 일의 하나로 마음의 맨 밑바닥에 깔려 있을 뿐이었다. 
    악마를 생각할 때도, 그것이 변장하고 있건 
    아니면 본래의 모습으로 있건 언제나 저 아래에 있는 거리나 
    혹은 시장통이나 요리집 따위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마련이었고 
    결코 우리들의 세계 속에 있으리라는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