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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두 개의 세계 - 2

Joyfule 2008. 9. 13. 02:24
      제 1 장 두 개의 세계 - 2
      
    나의 누나들 역시 밝은 세계에 속해 있었다. 
    누나들은 처음부터 나보다는 훨씬 더 
    부모님께 가까이에 있는 존재처럼 생각되었고 
    나에게 비하면 훨씬 착하고 몸가짐이 바르고 나쁜 점이란 없었다. 
    물론 누나들에게도 다소의 결점이나 나쁜 버릇은 있었지만 
    그렇게 심각한 것 같진 않았고, 무엇보다도 나의 경우와는 다른 것이었다. 
    나의 경우 악마와의 만남은 아주 답답하고 괴로운 것이었으며, 
    나에겐 어두운 세계가 훨씬 가까운 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누나들은 부모님과 같이 칭찬을 받고 공경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누나들과 싸움을 했을 때도 시간이 지나 양심에 비추어보면 
    언제나 내가 나빴고 싸움 건 쪽이었기 때문에 용서를 비는 것도 항상 나여야 했다. 
    누나들을 욕하는 것은 부모님과 선과 도덕을 모욕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누나들과 함께 지낼 수는 없어도 더 할 나위 없이 불량한 
    거리의 부랑아들과 어울릴 수는 있는 비밀을 지니고 있었다. 
    양심에 비추어 거리낌이 없는 밝은 날에 누나들과 함께 노닌다든가 
    훌륭하고 품위있는 빛 속에 있는 자신을 본다든가 할 때는 
    흐뭇한 마음이 되기도 했다. 
    천사라면 마땅히 그러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최고의 것이었고 
    밝은 음악과 향기로운 냄새 속에서 
    크리스마스와 행복에 싸여 있는 천사일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달콤하고 멋진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 그러한 날이 내게 오기란 얼마나 드문 일이었던가. 
    때로 나는 허락되어 있는 어린애다운 좋은 놀이를 하고 있다가도, 
    누나들에게 괴퍅한 성미를 참지 못해 싸움을 걸었고, 
    그러다 보면 스스로 몹시 화가 치밀어 거친 행동을 하고 
    나오는 대로 막말을 하는 가운데 내가 생각하기에도 후회스러운 욕설을 하기도 했다. 
    그런 다음에는 으례 후회로 가득 차 
    초라하고 어두운 심정으로 보내는 몇 시간이 계속되고, 
    용서를 빌어야만 하는 고통스런 순간이 찾아왔다. 
    그 일이 지나면 다시 밝은 빛과 다툴 것 없는 
    조용하고 고마운 행복의 몇 시간이 돌아오곤 했다.
    나는 라틴어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같은 반의 
    시장과 산림관의 아들이 가끔 내게 놀러오곤 했다. 
    둘 다 다소 난폭한 아이들이긴 했지만 선량하고 안정된 세계에 속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들이 늘 경멸해 마지않는 
    국민학교에 다니는 몇몇 이웃 아이들과도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들 중의 한 명에 대해서부터 내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수업이 없던 어느 날 오후 - 아마 내가 열 살쯤 되던 해였던 것 같다 -
    나는 이웃에 사는 두 아이와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러는데 어떤 큰 아이 한 명이 다가왔다. 
    열 세 살쯤 되는 힘이 세고 난폭한 아이로 국민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양복점을 하고 있었지만 
    술주정뱅이였고 가족 모두 평판이 좋지 않은 형편이었다. 
    나는 이 프란츠 크로머를 잘 알고 있었고 내심 그를 두려워했으므로 
    그가 우리들에게 끼어든 것이 꺼림책했다. 
    그는 벌써 어른처럼 행동했는데 
    젊은 직공들의 말투며 걸음걸이를 흉내내고 있었다. 
    그가 시키는 대로 우리는 다리목에서 기슭으로 내려가 바로 앞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이지 않는 다리 기둥 뒤로 돌아갔다. 
    아치 형의 다리 기둥과 천천히 흘러내리는 냇물 사이의 기슭은 
    온통 쓰레기, 유리 조각, 녹슨 철사뭉치, 
    그밖의 잡동사니들로 지저분하게 더럽혀져 있었다. 
    물론 곧잘 쓸 만한 물건들이 발견되기도 했기 때문에 
    우리들은 프란츠 크로머가 시키는 대로 
    주변을 헤집고 다니다 찾아낸 잡동사니들을 그에게 보여야 했다. 
    그러면 크로머는 그중 쓸 만한 것을 골라 
    호주머니에 집어넣거나 물속으로 팽개치거나 했다. 
    그는 납이나 놋쇠, 주석으로 만든 물건이 없는지 조심해서 찾아보라고 했고, 
    그런 것은 모든 호주머니에 집어 넣었는데 뿔로 만든 낡은 빗도 챙겨넣었다.
    나는 그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몹시 마음에 걸렸는데, 
    왜냐하면 아버지가 아신다면 
    그와 노는 것을 말리실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내가 프란츠를 무척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나는 그가 나를 한패로 취급해서 
    다른 아이들에게 하듯이 대해주는 것이 오히려 기쁘기도 했다. 
    그가 명령하면 우리는 복종했는데 그것은 마치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불문율 같은 것이었다. 
    내가 프란츠와 함께 어울린 것이 이번이 처음이긴 했지만 말이다. 
    마침내 우리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쉬었다. 
    프란츠는 물에다 침을 뱉으며 어른처럼 행동했는데 
    그는 이빨 사이로 침을 뱉어서 마음대로 아무것에나 맞출 수가 있었다.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우리들은 우리 또래의 학생답게 여러 가지 허풍을 늘어놓거나 
    나쁜 짓을 한 것을 자랑스럽게 으스대거나 했다. 
    나는 잠자코 있으면서도 내가 그러는 것이 
    크로머의 노여움을 사게 되지나 않을까 몹시 두려웠다. 
    나와 함께 있던 두 아이는 처음부터 내게서 멀어져 아예 크로머에게 붙었고 
    나는 그들 사이에서 외톨이였으며 내가 입고 있는 옷이나 태도가 
    그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라틴어 학교 학생인데다 훌륭한 가문의 아들인 나를 
    프란츠 크로머가 좋아할 리가 없었으며 
    내 친구들도 여차하면 나를 못본 체 할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불안한 나머지 나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꾸며대기 시작했다. 
    나는 대담하게도 도둑 이야기를 꾸며대었고 그 영웅적인 도둑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 
    시내에서 동떨어진 외진 물방앗간 옆 과수원에서 한 친구와 같이 
    밤중에 사과를 한 자루나 훔쳐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그것도 흔해빠진 사과가 아니라 
    래넷 종과 금빛 팔멘 종 좋은 최고급 사과만 훔쳤다고 말이다. 
    어리석게도 나는 잠깐 동안의 어색함을 피해 이런 거짓말 속으로 나를 몰아넣었다. 
    거짓말은 곧잘 그럴 듯하게 할 수가 있었다. 
    금방 이야기를 끝내면 혹시나 더 난처해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으로 나는 더욱 솜씨를 부렸다. 
    한 사람이 밑에서 망을 보는 동안 
    한 사람은 나무 위에 올라가 사과를 따서 아래로 던졌다. 
    결국엔 자루가 너무 무거워 둘이서 들고 올 수가 없어서 
    반쯤은 남겨놓고 갔다가 반 시간쯤 뒤에 다시 가서 가져왔다는 말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