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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 앙드레 지드.3

Joyfule 2010. 2. 13. 09:12
 
 좁은 문 - 앙드레 지드.3   

"제로옴! 왜 그렇게 급히 나가니? 내가 무서우니?"
가슴을 두근거리며 나는 그녀 쪽으로 갔다. 
나는 애써 미소를 짓고 손도 내밀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내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너의 어머니는 어쩌면 이렇게 흉하게 옷을 입히니, 가엾어라!..."
그때 나는 넓은 칼라의 세일러복을 입고 있었는데 
외숙모는 그것을 구기적거리기 시작했다.
"세일러복의 칼라는 훨씬 더 젖혀 입는 거야!"
내 샤쓰 단추를 하나 빼면서 그녀가 말했다.
"자! 봐라, 더 낫지 않는가!"
그러고는 그 작은 거울을 꺼내더니 자기 얼굴에 내 얼굴을 끌어당기고 
드러낸 팔로 내 목을 휘감고 반쯤 벌려진 내 샤쓰 속으로 
자기 손을 집어 넣고 웃으며 간지럽지 않으냐고 물으면서 
자꾸만 더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내가 깜짝 놀라 펄쩍 뛰어 일어나는  바람에 그만 세일러복이 찢어지고 말았다.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
"아유, 이런 바보!" 하고 외숙모가 소리치는 동안 나는 도망쳤다. 
그러고는 정원으로 달려가 거기 채소밭 조그마한 저수통에서 손수건을 추겨 
이마에 대고 뺨과 목 할 것 없이 그녀가 손 댄 곳은 어디나 닦고 문질러 냈다.
때때로 뤼씰르 뷔꼴랭은 '그의 발작'을 일으키곤 했다. 
발작은 불시에 일어나 집안을 뒤엎는 것이었다 
미스 아슈뷔르똥은 부랴부랴 아이들을 데리고 가 돌보아 주었지만 
침실이나 응접실에서 나오는 무서운 고함소리를 들리지 않도록 막을 수는 없었다. 
삼촌이 반미치광이가 되어 
수건이나 화장수나 에테르를 가지러 복도를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때 아직도 외숙모가 나타나지 않은 식탁에서 
삼촌은 근심에 찬 늙은 안색을 하고 있었다.
발작이 거의 지나고 나면 뤼씰르 뷔꼴랭은 자기 아이들을 그의 곁으로 불렀다. 
주로 로베로와 줄리에뜨를 불렀다 알리싸를 부르는 일이란 거의 없었다. 
이러한 슬픈 날이면 그의 아버지가 이따금 그녀를 보러 가곤 했다. 
삼촌은 곧잘 그녀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외숙모의 발작은 하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었다. 
발작이 유난히도 심하던 어느 날 저녁, 응
접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잘 들리지 않는 어머니 방에 
꼼짝 말고 들어가 있으라는 말을 듣고 어머니와 함께 들어가 앉아 있는데,
"주인님 어서 내려오세요, 마님께서 지금 돌아가셔요."하고 
하녀가 소리치면서 복도를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삼촌은 알리싸의 방에 올라가 계셨다 
어머니가 삼촌을 부르러 가셨다. 
15분 후 내가 있던 방의 열려진 창 앞으로 
두 분이 무심히 지나갈 때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똑바로 말해 볼까? 이건 모두 연극이야!"
그리고는 음절을 끊으면서 몇 번이나,
"연...극...이야!"라고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 일은 방학이 끝날 무렵에 생겼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년 후의 일이었다. 
그후로는 오랫동안 외숙모를 만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집안을 뒤엎은 슬픈 사건을 이야기하기 전에 
또한 그 사건의 결말에 조금 앞서 그때까지도 뤼씰르 뷔꼴랭에 대해 
내가 느끼고 있었던 복잡하고도 막연한 감정을 그야말로 
증오심으로 바꾸어 놓은 사정을 이야기하기 전에, 
내 사촌 누이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가 됐다.
알리싸 뷔꼴랭이 예쁘다는 것을 나는 그때까지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이끌렸던 것은 단순한 미의 매력보다는 다른 어떤 매력 때문이다. 
물론 그녀는 자기 어머니를 많이 닮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길이 주는 표정이 그녀의 어머니와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에 
서로가 닮았다는 사실을 훨씬 뒤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그녀의 얼굴을 그리지 못하겠다. 
얼굴의 윤곽 뿐 아니라 눈동자의 빛마저도 이제는 기억에 희미하다. 
단지 지금 생각나는 것은 그 무렵에 벌써 슬픔이 깃든 듯한 미소를 띤 표정과 
커다란 곡선을 그리면서 눈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눈썹의 선뿐이었다.
나는 그러한 눈썹을 어디서고 본 적이 없다. 
오직 단테시대의 피렌체 조상에서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어릴 때의 베아트리체도 
그처럼 높이 곡선을 그린 눈썹이었으리라 상상하고 싶다. 
이 눈썹은 그녀의 눈길에, 그녀의 몸 전체에, 
근심과 신뢰가 동시에 섞인 질문의 표정을, 그렇다, 열정적인 질문의 표정을 주었다. 
그녀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질문이요, 기다림이었다. 
이 질문이 어떻게 나를 사로잡았으며 
나의 생애를 결정짓게 되었는가를 이제부터 이야기하겠다.
그러나 보는 이에 따라서는 줄리에뜨가 더 예뻐 보였을 것이다. 
기쁨과 건강이 그녀에게서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미는 그 언니의 우아한 미와 비교할 때 
어쩐지 외형적이고 누구에게나 단번에 드러나는 것 같았다. 
사촌 동생 로베르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아이였다. 
단지 내 나이 또래의 아이였을 뿐이다. 
나는 줄리에뜨가 로베르하고 같이 놀았고 알리싸와는 같이 이야기를 했다.
알리싸는 우리 장난에 끼는 일이 없었다. 
아무리 먼 과거로 되돌아가도 내 눈에 그려지는 알리싸는 
언제나 진지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명상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이제 나는 곧 그것을 이야기하겠다. 
그러나 그보다도 먼저 다시는 아주머니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아주머니 이야기를 끝맺을 생각이다.